문 ‘적폐 청산’ 대신 ‘통합’ 내걸어 외연확대 vs 안 ‘합종연횡’ 승부수 띄울 수도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선거 전략의 승리다.” 공식 선거운동 첫 주를 보낸 문재인 캠프 전략 담당자의 말이다. 적중했다. 핵심은 ‘이원화’다. 문 후보는 적폐 청산 대신 ‘통합 프레임’을 전면에 내걸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4월 17일 대구·경북(TK)으로 향했다. 민주당 역사상 TK에서 대선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지지도가 낮은 지역에서 선거 레이스를 시작한 셈이다. 자신의 10대 공약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국회 비준과 순환출자 해소 내용은 뺐다. 보수층을 끌어안으려는 시도다. 둘째 날(4월 18일)에는 통합 깃발을 들고 제주와 호남을 순회하는 1300km(첫째 날 700km 포함) 대장정에 나섰다.
셋째 날에는 상도동계 좌장 김덕룡(DR)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를 영입했다. 1990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이후 각자도생했던 영·호남 민주화 세력이 27년 만에 손을 맞잡은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투표 이틀 전 발표했던 50대 공약은 대선을 20여 일 앞둔 4월 19일 공개했다.
문 후보 1차 선거전략 키워드는 ‘통합·우클릭·동서화합’이다. 얻은 것은 두 가지다. 문 후보 아들 특혜 의혹 등 네거티브 공세의 시선 돌리기에 성공했다. 캠프 전략 담당자는 “경선 때 핵심 프레임은 적폐 청산이었다”라며 “본선 때 ‘적폐 연대’, ‘적폐 세력’ 등이 후보의 고립, 즉 외연 축소로 이어지면서 적폐를 버렸다. 꼭 필요할 땐 ‘적폐 구조’로 표현하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관성을 버리자, 외연은 확대됐다.
반면, 안풍은 주춤했다. 안 후보의 유치원 공약 논란 직후 열린 4월 13일 첫 TV토론회의 충격파는 컸다. 안 후보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토론회 초반부터 경직된 모습으로 나선 안 후보는 보수진영과 문 후보 측 좌우협공에 녹다운됐다. 캠프 내부에서도 “밀렸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정치 근육은 키웠을지 몰라도, 내공은 바닥을 드러냈다”며 “TK와 호남, 보수와 진보 등 이질적인 유권자를 잡으려다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라고 꼬집었다.
안철수 선대위는 화력에서도 뒤처졌다. 문재인 선대위는 안랩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의혹을 비롯해 부인 김미경 씨의 서울대 교수 특혜 채용, 포스코 사외이사(2005∼2011년, 2010∼2011년 이사회 의장) 시절 부실기업인 성진지오텍 인수 묵인설 등을 고리로 파상 공세를 폈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특권의 인생을 걸었다”고 비판했다. 다른 주자들의 때리기도 본격화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얼치기 좌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안철수의 최순실은 박지원”이라고 날을 세웠다.
반전이 절실했다. 안 후보는 약점으로 지적된 2030세대에 대한 소구력 강화 카드를 꺼냈다. 첫 번째 카드는 파격적인 벽보와 고 신해철 씨의 ‘그대에게’ 로고송이다. 벽보에선 당명을 뺐다. ‘안철수’ 이름 하나로 대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어게인 2012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식 선거운동 첫날 0시 인천항 해상교통관제센터를 찾은 뒤 호남 집중 유세전을 펼쳤다. 안 후보의 1차 선거전략 키워드는 ‘2030·안정·호남’이었다. 보완재 찾기와 대체재 극대화 전략이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세력 끌어안기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마지막 승부처 전략은 ‘약점 최소화·강점 극대화’ 등의 위기관리 능력밖에 없다. 문 후보의 최대 과제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문 후보 고립은 2차 TV토론회에서 현실화됐다. 사실상 ‘문재인 청문회’였던 2차 토론회에서 문 후보는 ‘주적·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대세론은 깨지지 않았지만, 제한된 대세론이다. 여전히 그를 둘러싼 패권주의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인자 이미지는 넘어야 할 산이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도 극복 대상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체제 이후 계속된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사실상 없어진 선거다. 호남은 이미 안 후보와 양분한 상태다. 양측 모두 선거 막판 “70∼80%의 득표율은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내지만, ‘55 vs 45’ 구도에서 호남 승부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남은 것은 세대별 투표다. ‘2040세대 vs 5060 세대’의 투표율이 핵심 변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층에 전방위로 퍼진 반문(반문재인) 정서 돌파는 9부 능선을 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후보와 앞다투는 비호감도 역시 중·장년층의 낮은 지지도와 무관치 않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문 후보가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5060세대 공약을 발표한 것도 지난 대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의 2차 전략 키워드는 ‘비욘드(beyond) 노무현·돌아와요 호남·5060’이다. 이질적인 세력과의 동질성 확보를 위한 ‘문재인 시프트’가 마지막 승부처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안 후보는 약한 고리를 드러낸 TV토론회와 네거티브 검증의 산부터 넘어야 한다. 2차 토론회가 ‘문재인 청문회’가 된 것도 딜레마다. 실점은 적었지만, 득점도 없었다. 안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40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이 갖는 세력상 한계도 극복 대상이다. ‘샤이 보수’(정치적 속내를 감추는 보수층) 등 부유층 유권자를 묶을 수 있는 전략·전술도 필요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 지지도는 이미 두 자릿수를 돌파했다.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등 영남권에선 20%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또 하나, ‘문재인 봉쇄전략’이다. 문 후보 최대 아킬레스건인 패권주의 논란에 기름을 부어 ‘반문 정서’를 극대화해야 한다. ‘당 대 당’ 통합은 물 건너갔다. 비패권지대의 ‘안철수 지지’는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끝났다. 세력 키우기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안 후보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국민적 연대’다. 여기엔 ‘문재인만은 안 돼’라는 비토 심리가 깔렸다. 안 후보가 연일 문 후보의 적폐 연대 주장을 향해 “국민 모독”이라며 ‘두 국민 프레임’을 까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거 막판 ‘문재인 vs 국민’ 프레임을 통해 갈라치기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변수는 있다. 대선 막판 합종연횡이다. 시나리오는 ▲유승민 완주 고수 속 바른정당 의원들의 안철수 지지 ▲유승민+안철수 연대 ▲유승민+홍준표 연대 등 3가지다. 바른정당 내 ‘유승민 불가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불씨는 살아있다. 이종구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은 4월 16일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당 차원에서 사퇴를 건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대주주 격인 김무성 의원이 ‘유승민 불가론’ 파동에서 유 후보 힘 실어주기에 나섰지만, ‘김종인·정운찬·홍석현’ 비패권지대 정계개편 당시 김 의원이 유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패권지대 정계개편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김 의원이 유 후보에게 강하게 단일화를 요구했었다”라며 “유 후보가 선거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냐. 유 후보도 (선거자금 부족 등 약한 고리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지지 형식의 소극적 단일화로 반문 표 결집을 꾀할지는 미지수다.
양자구도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안 후보가 유 후보에게 손을 내미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 경우 70석(국민의당 40석+바른정당 30석)의 제3당이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 3% 안팎의 지지율에 그치는 유 후보와의 단일화 시너지효과는 물음표다. 반대로 ‘안철수 고립’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대선 후 보수정당 통합을 매개로 홍 후보와 유 후보가 연대하는 시나리오다. 현실화된다면, 대선은 ‘문재인 vs 안철수 vs 홍준표’의 실질적인 3자 구도다. 합종연횡 시나리오가 모두 무산되면 5자 구도다. 3자 및 5자 구도의 최대 수혜자는 문 후보다. 안 후보의 마지막 전략 키워드는 ‘타이밍’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 측 모두 “4월 마지막 주가 대선 최대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