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금지 해제 동시 일본·중국 광폭 행보 시동···재계 순위 지각변동 전망도
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전 美日 다국적 컨소시엄 가동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 18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법무부의 출국금지 대상에서 해제됐다. 최 회장은 지난 5개월 동안 중단됐던 글로벌 행보를 재개하며 그룹 현안 챙기기에 나서게 됐다. 우선 최 회장과 SK의 시급한 현안은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다.
최 회장은 24일 일본으로 직접 넘어가 일본 도시바 경영진과 만나는 등 SK그룹의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에서는 도시바 반도체 매각 가격이 20조 원을 넘길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10여개의 기업이 참여한 도시바 1차 인수전 입찰 결과 대만의 폭스콘이 3조엔(약31조 5000억 원)으로 가장 큰 금액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폭스콘보다 적은 2조엔(약21조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금 진행되는 도시바 입찰은 바인딩(binding,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이 아니라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며 “바인딩 입찰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입찰 우려를 일축했다.
재계에 따르면, 도시바 반도체 인수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SK하이닉스의 단독인수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최 회장은 일본계 재무적 투자자를 추가로 끌어들여 다국적 컨소시엄을 구성할 계획이다. 또한 해외 인맥을 총동원해 도시바 인수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가능성도 관측된다.
일본 정부는 도시바의 반도체 기술이 안전보장과 관련된 핵심기술로 판단하고 중국 및 대만기업의 도시바 인수는 외국무역법 등을 앞세워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정부 주도로 자국 대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공동출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 SK하이닉스의 인수 역시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 무혐의를 받았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사활을 건 이유는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약 18%의 점유율(지난해 기준)을 확보해 SK하이닉스를 단숨에 글로벌 2위 업체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를 턱 끝까지 추격하게 된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20조 원 가량의 사내유보금을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전에 적극 활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사내유보금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외에 재고자산, 유·무형자산 등 여러 가지 자산 형태로 존재하므로 ‘곳간에 쌓아둔 돈’이라고 볼 순 없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사내유보금을 재원삼아 9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기업이 유보금을 활용할 방법은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 역시 인수에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했지만, SK그룹의 중추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만들어낸 것은 누가 뭐래도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며 “비록 한중일미 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M&A 귀재로 불리는 최 회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더구나 뇌물혐의 등의 족쇄가 풀린 최 회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업계 전체가 최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 회장은 일본에 이어 곧바로 중국을 방문한다. 지난 1월 SK이노베이션의 중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 가동 중단과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소유한 중국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 지연 등 최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복으로 SK그룹 계열사들이 중국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내달 하순 중국에서 열리는 상하이포럼 등에 참석해 중국 정·관계 인사들과 연이어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부터 ‘책임경영’을 1차 목적으로 강조하고, 올해 첫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권한 강화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SK그룹의 주력계열사는 지난 3월 24일 일제히 정기 주총을 열고 재무제표 승인과 정관 일부 변경과 이사 선임, 감사위원 선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부여, 이사보수 한도 승인 등 주요 안건을 다뤘다.
주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이사회의 권한 강화’다. 지주회사인 SK㈜는 물론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 주총을 연 주요 계열사는 10억 원 이상 후원금 또는 기부금을 집행할 때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아울러 SK텔레콤(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총장)과 SK케미칼(오영호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석좌교수), SK가스(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는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에 선임하면서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
SK그룹의 이같은 행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기업과 재벌총수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이미지를 최소화하려는 실천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SK그룹은 지난 3월 올 한해에만 17조 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4조 원과 비교해 20%가량 늘어난 수치로 채용 인력도 8700명으로 전년 대비 그 규모를 축소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 ‘최순실 게이트’ 사태와 관련, 재계를 상대로 한 사정 당국의 수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자국 보호 무역주의 등 국내외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다수 대기업에서 이렇다 할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과 SK의 투자 계획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과 삼성 미전실 해체 등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삼성과 뚜렷한 차별을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대외협력비용이 크게 줄어든 부분을 SK그룹이 대신할 것을 자처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SK의 재계 입지와 순위 변동까지 예측하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라고 밝혔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