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 아니면 주적…“할리우드가 부럽다”
할리우드는 다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톱스타들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이 흔하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톱스타 메릴 스트립은 세계에 생중계된 올해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고 맹비난했다.
# 전인권 향한 비난여론
가수 전인권은 지난해 광화문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해 애국가를 부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 그의 대표곡 <걱정 말아요 그대>는 촛불집회에 모인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크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최근 전인권은 ‘적폐가수’라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지지한 그가 문재인 후보로 결정된 직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 문재인 후보 지지자 가운데 일부는 그런 전인권을 비난하며 이른바 ‘문자 폭탄’을 보내기까지 했다.
제4차 촛불집회(민중총궐기) 당시 국민 위로 공연에 동참한 전인권. 사진공동취재단
비난이 극에 달한 시기에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독일의 한 밴드가 40여 년 전 발표한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에까지 휩싸였다. 국민 위로 곡으로 인정받은 노래가 하루아침에 ‘표절시비’에 휘말렸고, 이로 인해 전인권은 이미지는 물론 명예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전인권을 향한 비난 여론은 정치 성향을 공개한 연예인이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철저히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다를 수 있음을 드러낸다. 더욱이 전인권이 가진 파급력으로 탓인지 그의 안철수 후보 지지는 ‘순수한 개인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연예인들의 특정 정당 및 후보 지지 선언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과 비교해 봐도 확실히 달라진 모습. 당시만 해도 가수 김흥국과 설운도 등 인지도 높은 가수들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고 직접 선거 유세도 도왔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대중이 알 만한 연예인 가운데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전인권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작가나 감독들 등 문화예술인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를 비롯해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웹툰 <미생>을 쓴 윤태호 작가 등은 일제히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감독과 제작자 등 영화인 486명 역시 공동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박찬욱, 임순례 감독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스타들이 특정 정당 및 정치인 지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차별’을 의식한 탓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치성향에 따라 차별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박근혜 정권 아래서 이뤄진 블랙리스트로 드러났기 때문. 물론 블랙리스트는 사라져야 할 폐해이지만 한편에서는 그 여파로 인해 연예인이 공개적으로 정치색을 밝히기를 더욱 꺼리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신의 정치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활동하는 방송인 김제동. 사진출처= 주진우 페이스북
연예계 한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가 마땅히 보장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함에도 유독 연예인을 향해서는 혹독한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많다”며 “가수 전인권처럼 후보 지지 선언 이후 갑작스럽게 공연 티켓 예약이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나는 현실을 보면 아직도 국내에서 연예인의 정치인 지지는 선뜻 나설 수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 ‘우리도 할리우드처럼…’
연예인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파급력에 기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길 원하는 사람은 있다. 이 같은 뜻을 가진 연예인이 이구동성 내놓는 발언은 “우리도 할리우드처럼”이라는 말. 이는 곧 철저한 표현의 자유 보장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풍토가 확보돼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와 배우 스칼렛 요한슨, 메릴 스트립, 로버트 드니로 같은 스타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할리우드에는 블랙리스트 따위도 없다. 그만큼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창작자에게 부여돼야 할 표현의 자유도 철저하게 인정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에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노련한 정치인을 연기한 최민식은 작품의 영향으로 인해 이번 대선 과정을 더욱 주의 깊게 대하고 있다. 영화를 알리는 과정에서 선거와 관련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는 할리우드를 지목하며 “우리도 오픈하고 자유롭게 지지했으면 좋겠다”며 “할리우드처럼 의사를 표현하고, 어떤 의견을 내도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