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자 거쳐 4선 의원·5선 대변인…100원 택시 도입 ‘막걸리 도지사’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운데)가 지난 12일 전남도청 왕인홀에서 열린 지사직 퇴임식에 참석하며 공무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자는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10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두 형과 누나를 잃고 7남매 중 장남이 됐다.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채소 장사를 하며 이 후보자를 뒷바라지한 덕분에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 후보자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21년간 재직했다.
이 후보자는 정치부 기자 시절 민주당을 출입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 후보자를 눈여겨본 김 전 대통령이 1989년부터 총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계속 거절하다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내리 4선을 했다.
이 후보자는 정계 입문 후 15년 넘게 같은 보좌관과 일할 정도로 의리파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가 1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보자와 함께 일했던 한 전직 보좌진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래 전에 그만뒀지만 이 후보자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익명을 전제로 이야기해도 욕할 부분은 없었다. 이 후보자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물어봐도 항상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자를 온건한 합리주의자로 평가한다. 이 후보자는 미술교사 출신인 김숙희 씨와 결혼해 1남을 낳았다. 아들은 정신과 의사다. 이 후보자는 노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맡았지만 친문(친문재인)은 아니다. 2002년 대선 직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분당할 때 이 후보자는 민주당에 남았다. 이후 친노(친노무현) 인사들과 여러 번 정치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손학규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민주당 대표를 지낼 때 사무총장을 맡아 ‘손학규계’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계파색이 옅은 인물로 꼽힌다. 이 후보자는 “(친문이 아니라고 해서) 대통령과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 차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문 대통령이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 했을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이 후보자는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그는 18대 국회의원 시절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만들어 개헌 논의에 앞장섰다. 이 후보자가 국무총리로 지명되면서 문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또 이 후보자는 지일(知日)파 정치인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도쿄특파원을 지냈고 국회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총리 지명 직후 “지일파 인사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면서 환영했다.
# 명 대변인으로 유명
이 후보자는 정계 입문 후 승승장구했다. 16대부터 19대까지 한 번도 낙선하지 않았다. 19대 국회의원 임기 중 전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역시 승리했다.
초선 시절 두 차례 대변인을 역임했고, 2002년 대선 때 선대위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도 맡았다. 이 후보자는 대변인 시절 날카로운 분석력과 깔끔한 문장력으로 명 대변인이란 평가를 받았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문 작성에도 참여하곤 했다.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등 당 요직도 두루 거쳤다.
이 후보자는 5번이나 대변인을 지내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다. 다음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소개한 내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을 앞두고 취임사 준비위원회에서 만든 취임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취임식을 이틀 앞두고 당선인 대변인이었던 이 후보자에게 취임사를 손보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후보자가 쓴 취임사를 극찬하며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강 전 비서관은 “이 후보자는 글쓰기에 있어선 피곤할 정도의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이 후보자가 2002년 쓴 손기정 선생에 대한 추도 성명은 아직까지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42.195㎞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린 사나이가 이제 저희에게 한 걸음도 오시지 못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추도 성명은 다른 정당의 천편일률적인 성명과 달리 참신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후보자의 언론계 후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낙연 선배는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청국장은 아무렇지 않게 먹어도 군더더기가 들어 있는 글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다.
의정 활동도 성실했다는 평가다. NGO 국정감사 모니터단으로부터 10차례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18대 국회에서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장을 지낼 때는 여야 간 이견을 원만하게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남지사가 된 이후엔 생활밀착형 정책을 펼쳤다. 대표적인 정책인 100원 택시는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택시를 부르면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100원을 받고 운행한 뒤 차액을 도에서 지불하는 방식이다. 100원 택시는 버스정류장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예산이 절약이 돼 농어촌 교통복지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후보자는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종합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기 중 전남도 내 제조업 종사자가 10만 명을 넘어섰고 기업 157곳으로부터 2조 3955억 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이 후보자는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전남 여수시 교동 수산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발빠르게 ‘임시 판매장’을 설치했다. 대목을 앞두고 화재를 당해 어려움을 겪던 상인들은 이 후보자의 신속한 조치로 위기를 넘겼다.
# 막걸리 마시며 소통
이 후보자는 업무적으로 매우 깐깐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지만 일과 후엔 직원이나 기자들과 격의 없이 막걸리를 마시며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직원들 사이에서 이 후보자의 별명은 ‘막걸리 도지사’다.
이 후보자는 전남도청 공무원노조 지도부와도 종종 도지사 공관에서 막걸리 간담회를 가졌다. 이 후보자는 막걸리 예찬론자다. 술자리에서 막걸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쌀 소비 증대’를 위해서다. 전남은 농업 종사자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후보 지명 이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정책의 접점은 찾아서 키우고 의견 차가 있는 것은 뒤로 미루는 지혜를 발휘하겠다”면서 “야당과는 막걸리라도 마셔가며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총리가 되면) 막걸리 같이 먹을 상대가 늘어나서 걱정이다”라면서 “그래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저수지 몇 개(양 만큼) 마셔야지”라고 말했다.
# 인사검증 넘을까
정치권에선 이 후보자가 무난하게 인사검증을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혹도 나온다. 우선 아들이 어깨 탈골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이 후보자 측은 불법적인 요소는 없었다면서 병무청에 보냈던 입대희망 탄원서와 답변서를 공개했다.
이 후보자 동생인 이계연 전 전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의 아들도 병역의무를 회피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이 전 이사장 아들은 캐나다로 유학을 간 후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전 이사장 측은 “아들이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살았고 개인의 선택이었다”면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 취임 후 전남도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것도 문제다. 전남도는 지난해 국민권익위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국 꼴찌를 했다. 그동안 타 지자체들은 단 한 번만 비리에 연루돼도 공직에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하는 등 부패방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에 반해 이 후보자의 대응은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후보자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살고 나온 측근을 챙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이 아무개 전 보좌관을 지난해 1월 정무특보로 임명했다. 이 전 보좌관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권리당원 당비를 대납한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후보자는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이 전 보좌관을 정무특보로 임명하면서 이 후보자도 당비대납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전남도 측은 “전과가 있는 사람을 정무특보로 임명한 것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