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도 회사에서도 로봇과 일자리 경쟁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행보에 재계 이목이 집중된다. 문재인 대통령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 발표. 연합뉴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벤처업계와 학계는 물론 재벌과 정치권까지 앞다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어젠다’를 쏟아냈다. ICT(정보통신기술)와 연관성이 희박한 기업들까지 기술혁명의 ‘신봉자’를 자처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4차 산업혁명을 기회로 삼자”라고 했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아예 경영방침으로 ‘4차 산업사회 선도’를 주문했다.
지난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공약 가운데도 ‘4차 산업혁명 육성’이 포함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설치를 약속했고, 민·관 협력 방식으로 인공지능, 3D 프린팅, 로봇공학 등 첨단기술 연구를 지원할 방침을 세워놨다.
이전 박근혜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유관 부처를 중심으로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정밀의료, 바이오신약,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분야 연구에 대한 지원 전략을 세웠다. 2016년 12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글로벌 수준의 지능정보기술 기반 확보 ▲전 산업의 지능정보화 촉진 ▲사회정책 개선을 통한 선제적 대응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당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그동안 정부는 ‘도전과 창업 정신’을 사회에 뿌리내리고, ‘좋은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등 4차 산업혁명을 착실히 준비해왔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국가 기술 수준, 인프라 수준 등을 종합해 평가한 ‘4차 산업혁명 대응수준 순위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25위를 기록해 상위권인 미국(5위), 일본(12위), 독일(13위) 등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의 발달, 사물인터넷의 상용화, 빅데이터 활용이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변화시킬 것이란 믿음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출현 전후의 인간 행동과 문화가 엄연히 다르듯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기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신봉자’들은 주장한다. 글로벌 컨설팅펌인 맥킨지는 2030년 ICT 기술 혁명에 따른 경제효과가 최대 460조 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우리는 자동차에 비치된 내비게이션을 통해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경로를 안내받고 있다. 나아가 자율주행차는 이 내비게이션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또 기존 절삭기인 밀링머신을 대체할 후보군으로 떠오른 디지털 제조장비 3D 프린터는 조립 공정을 단순화시켜 시간 대비 생산량과 질을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한마디로 인간의 지적·육체적 노동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1차 산업혁명 이전의 인간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했지만 증기기관이 개발되면서 노동의 기계화를 경험했다. 2차 산업혁명 때는 전기 등 에너지의 이용으로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3차 산업혁명 때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전에 없던 ‘온라인 세계’가 생겨났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아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을 지향한다.
극단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세계에서 인간은 공장에서 일할 이유가 없다. 공산품의 생산과 유통은 모두 로봇이 대신한다. 인간은 전자기기를 활용해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이용만 하면 된다. 나아가 주문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주인’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배송하도록 각 공장에 요청한다. 인간의 몸에는 센서가 달려 있어 건강이 악화될 경우 인공지능이 이를 탐지해 보고하고, 신체와 관련한 모든 정보는 클라우드 시스템에 자동 저장된다. 또 모든 금융거래는 온라인을 통해 안전하게 이뤄지며, 회사 업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진원지로 불리는 미국은 구글과 아마존 등 ICT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선도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구글은 이미 인공지능 분야에 280억 달러(한화 31조 5000억 원)를 투자하고 독자적인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프로기사인 이세돌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낸 한 예다.
4차 산업혁명의 신사업으로 자율주행차가 부상했다. 자율주행차의 투명 디스플레이 모습. 연합뉴스
인공지능은 ‘딥러닝’(빅데이터를 활용한 반복 학습)을 통해 장기적으로 사람의 두뇌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감정 표현 등 인간 고유의 사회성까지 학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산이나 일기예보, 주가전망과 같은 ‘확률’이 포함된 문제에선 사람보다 더 나은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증권업계의 ‘블루칩’으로 부상한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금융서비스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공지능이 기존 전문가집단을 대신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자산관리 시장은 ‘로봇 대 인간’의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
아마존이 선보여 온 기술과 아이디어는 국내 재벌들도 관심을 보일 만큼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무인계산기 ‘아마존 고’는 고객이 매장 내에서 상품을 사면 자동으로 결제가 진행되고, 결제내역이 공용클라우드 AWS(Amazon Web Services, 아마존웹서비스)에 저장된다. AWS는 다시 구매예측시스템을 통해 소비자가 원할 것 같은 상품을 미리 가까운 물류센터에 입고시킨다.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를 통해 상품을 주문할 수 있다.
나아가 아마존은 전 세계 상공에 우주정거장과 같은 물류센터를 띄우고 드론을 통해 고객에게 물건을 배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물류센터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일하며, 모든 배송 업무는 자동화된 방식으로 처리한다. 구글과 아마존은 그동안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들로 여겼던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들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국내 사정은 다르다. 재벌과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국내 산업구조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미국과 비교해 4차 산업혁명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ICT 기반 벤처업체 우버는 차량 공유 사업 등에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80조 원으로 끌어올렸다. 우버의 기업가치는 GM이나 포드 등 전통 자동차 업체보다 높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비슷한 사업 모델이 없을 뿐 아니라 신생 스타트업이 현대자동차의 기업 가치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낮다. UBS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과 함께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에 대한 특허권 인정 등 법적 보호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극단적인 자동화와 융합을 특성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저급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감소시킨다. 즉 단순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중단기적으로 로봇에 일자리를 뺏길 가능성이 높다. 다보스포럼이 작성한 ‘미래고용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까지 선진국 및 신흥시장 15개국에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반복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 일자리도 475만 개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이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210만 개에 불과했다. 이 같은 일자리 감소는 노동자 간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 간 빈부격차도 심화시킨다. 아직 4차 산업혁명 대비가 미진한 우리나라로서는 국가적인 부(富)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과 관련해 학계 일각에선 인공지능 등 기술 혁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혁명’이란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열망하는 글로벌 리더들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으며 전 세계가 변화할 것으로 믿고 있다. 융합연구정책센터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인프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신산업 발굴과 관련해서는 당분간 ‘패스트 팔로’(선발주자들이 만든 신제품을 빨리 따라가는 것) 전략에 의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4차 산업혁명이 국가 전략의 주요정책으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점차 실효적인 정책적 지원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금재은 기자 angeli@ilyo.co.kr
‘글로벌 선도’ 아닌 ‘트렌드 편승’ 왜?…대기업들 혁신과 거리 먼 행보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앞에 놓인 지금 국내 대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목소리만 높일 뿐 실제 투자와 사업 진출에서는 혁신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내 대표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 먹을거리로 삼고 있는 것은 자율주행차와 자동차 전장사업 등 자동차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전장사업부를 신설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이 이미 2010년대 초반 관련 사업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꽤 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만큼 삼성은 선두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단번에 경쟁력을 갖추는 공격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세계 카오디오 선두기업인 하만을 9조 원에 인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계열사를 통해 전장사업에 힘 쓰고 있다. 국내 전자업계에서 가장 먼저 전장사업을 시작한 LG전자는 2013년 VC(Vehicle Components) 사업본부를 출범시킨 후 2016년 자율주행연구소를 만드는 등 핵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K·LG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은 전장사업 외에도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분야를 신사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대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비슷한 사업에 뛰어든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신사업에 뛰어든다고는 하지만 막상 보면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 대기업들이 구글·애플·아마존 등과 같이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지 못한 채 ‘패스트 팔로’에 머물기 일쑤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까닭은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와 기업환경에 기인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계서열이 강하고 보고체계가 복잡해 신사업이나 혁신적 아이디어를 최종 사업 단계까지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기 성과를 중요시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리스크가 큰 사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앞의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진이 트렌드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 시류에 편승하는 경향이 짙다”며 “아무도 하지 않은 사업보다 타사도 하고 유행에 맞는 사업에 진출하는 보여주기식 경영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비난에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결코 리스크가 없는 사업에만 편히 진출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물인터넷이나 전장사업 등은 워낙 범위가 넓은 데다 경쟁력을 가진 IT기술로 다각화할 수 있는 사업을 찾다보니 다들 비슷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장윤종 한국산업연구원 4차산업혁명연구부 연구원은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에 누구보다 기업들이 신사업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클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주요 기술력을 확보하더라도 기술을 사업의 어떤 영역에 적용할지 모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또 “국내 기업들이 경쟁만 하지 않고 기술협력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 |
미래에 뜰 직업은? 예술가 대체 불가, 로봇 전문가 탄생 기술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업도 수없이 사라지고 생겨난다. 수십 년 전 흔히 볼 수 있었던 얼음장수, 전화 교환원, 버스 안내양 등을 지금은 볼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30 미래 직업세계 개발>에 따르면 신기술 발달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직업 1위는 ‘콘크리트공’이다. 정육도축원,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조립원, 청원경찰, 조세행정사무원 등 단순 노동이나 행정 관련 직무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보다 로봇이 대신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 1위는 ‘화가 및 조각가’가 꼽혔다. 이밖에 사진작가, 작가, 연주가, 만화가 등 주로 문화·예술 분야 직종이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직업이 로봇과 인종지능으로 대체되며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직업과 직종도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탄생할 직업으로 로봇판매원, 로봇수리원, 폐로봇처리전문가, 로봇강사 등을 꼽는다. 로봇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로봇 관련 직업과 직종이 생겨날 것이라는 얘기다. 같은 맥락으로 3D프린팅 기술이 발달하면 바이오 인공장기제작사, 맞춤형 개인소품제작자, 3D프린터 예술가 등의 직업도 기대된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