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알파고vs알파고 50개 기보 공개…김성룡 “30년대 신포석 이래 가장 의미 있어”
하지만 알파고는 그냥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다. 바로 알파고끼리 둔 바둑 가운데 50개의 기보를 구글 측이 공개한 것이다. 프로 기사들은 이를 ‘절세의 무공비급’이라 부르며 받아들였는데 이 50개의 기보는 향후 바둑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프로기사로는 유일하게 구글의 초청으로 중국 현지를 다녀온 김성룡 9단을 만나 ‘50개의 비급’을 둘러싼 알파고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알파고가 커제와의 3번기(사진)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절세의 무공비급’ 50개 기보를 남겼다.
―현지를 다녀온 소감을 말해 달라.
“알파고-커제의 승부는 예상했던 대로이고 구글이 공개한 50개의 기보가 궁금했다. 그런데 살펴보니 평생 바둑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벅차다. 솔직히 말해 이런 바둑이 있나 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1930년대 오청원 선생과 기타니 미노루 9단이 공동 발표한 ‘신 포석’ 이래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본다. 오청원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한번 의견을 여쭤보고 싶을 정도다. 기보 50개를 눈 앞에 두고 일부러 다른 기사들의 평을 보지 않았다. 오로지 내 눈과 가슴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50개의 기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알파고가 인간과 총 69국을 뒀는데 그중 단 한판도 100수 전까지 인간이 유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알파고가 우세를 잡으면 속칭 닦는 달까, 매번 안전 위주 운행으로 미세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마치 전성기 이창호 9단이 여러 집 이겨 있는 바둑도 안전운행으로 딱 반집만 이기듯 말이다. 우리는 알파고가 불리하면 승부수도 던지고, 옥쇄를 각오하며 무리하는 장면도 보고 싶은데 그걸 볼 수 없었던 거다. 그런데 이 50개의 기보는 동등한 수준의 알파고가 자기들끼리 이겼다졌다 하는 모습을 담았으니 얼마나 큰 공부가 되겠는가. 마치 외계인이 나타나 기보 50개를 지구에 던져주고 자기 별로 돌아간 느낌이다. 알파고는 그동안의 바둑 격언이 얼마나 사람들을 구속했는지 알게 했고, 사람의 생각에 자유를 주었다.”
―기보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실전에서 즉시 써먹을 수 있는 수법 30퍼센트, 연구해야 할 수법 30퍼센트, 도저히 알 수 없는 수법 30퍼센트라 보면 된다. 마지막 30퍼센트는 솔직히 따라갈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이다. 감각 자체도 따라가기 어렵고 이후의 진행이 전혀 예측이 안 된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라 말하면 설명이 쉬울까. 알파고의 바둑은 해설이라고 하면 안 되고 감상이라 해야 한다. 처음 한두 수 흉내 내는 것과 완벽히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난 차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알파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집에 가면 보관하고 있던 바둑책부터 내다버릴 작정이다.”
1도
―현장에서 알파고-커제의 대결을 지켜본 소감은.
“알파고가 1월에 인터넷 대국실에 나타나고 4개월 만에 재등장한 것인데 커제가 준비를 잘했다. 거기에 추측이지만 내부에서 누가 알파고의 수법을 커제에게 미리 알려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1국에서 커제는 세 번째 수로 3·三을 선택했는데 이는 알파고가 초반 3·三 파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는 증거다. 이 중요한 대국 첫 판에 안 두던 3·三을 갑자기 들고 나온다? 알파고 수법을 미리 알고 대비를 했다고 본다. 대국 중간 허사비스가 ‘마치 커제가 알파고 같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까지 바꿀 수는 없었던 거고. 승부는 1국이 내용적으로 굉장했다.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2국에서 알파고의 흑119, 그러니까 <1도> 흑1은 진짜 묘수라 부를 만하다 좌하귀 패싸움, 우하 백과의 수상전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 알파고는 그 시점에서 자신이 이기는 길을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감동받았다.”
2도
―더 이상 알파고의 수법은 볼 수 없게 됐지만 남긴 기보는 프로기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비록 패하고 눈물까지 보였지만 세 판을 진하게 겨뤄본 커제는 큰 진보가 있을 것 같다. 그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LG배 16강전 강동윤과의 대국에서 나타나지 않는가. 기보를 보면 알겠지만 커제가 중반 하변에 마늘모로 뛰어든 수는 <2도> 자신이 알파고에게 당한 수법과 흡사하다. 백이 우변 마늘모로 들어간 수는 옛날 같으면 두는 순간 10급 이하라는 판정을 받을 만한 수. 하지만 백6까지 되고 보니 거의 훌륭히 타개된 모습이 아닌가. 벌써 알파고 수법이 프로들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향후 기존의 바둑 이론이 상당 부분 재정립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기사들은 알파고가 남긴 ‘비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기사들은 마치 신문물을 처음 접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송태곤 9단은 “구글이 처음 공개한 1국부터 10국까지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2차로 공개한 11국부터는 좀 겁이 났다. 수준이 너무 높아서 내가 그것들을 차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뭐랄까, 무협지에서 절세 은둔고수의 비급을 얻긴 했는데 도와주는 이 없이 따라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리는 느낌? 그래서 지금은 포기했다. 나중에 찬찬히 볼 생각이다.”
또 목진석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해에 비해 실수가 줄었다. 작년에는 화려한 수법이라든지 깜짝 놀랄 만한 수가 있었다. 이번 알파고는 화려하지 않지만 쉽게 두면서도 상대로 하여금 힘을 못 쓰게 하는 수법이 돋보였다”라고 말하면서 “이젠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알파고가 남긴 기보를 통해 보다 높은 레벨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느낀다. 승부 차원에서 본다면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바둑 수법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소개하는 기보들은 공개 첫날, 바둑판도 없는 중국 호텔방에서 하루 밤을 꼴딱 새우고 지켜본 김성룡 9단의 알파고 vs 알파고 기보의 하이라이트다. 같이 감상해보자.
3도
<3도> 마치 바둑은 이렇게도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1·3은 그야말로 파격.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두었으면 “지금 장난치냐”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겠다.
4도
<4도> 백이 파격을 들고 나왔지만 상대편 알파고는 당연하게도 흥분하지 않는다. 기계니까. 흑1, 3은 침착하고 5도 마찬가지. 백6까지 누가 좋다고 보기 어려운 초반이다.
5도
<5도> 커제가 1국에서 초반 3·三을 바로 파자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좋아하는 수를 커제가 두었다고 놀라워했는데 왜인지 알겠다. 알파고의 ‘묻지마 3·三’
6도
<6도> 알파고의 3·三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백1에 흑을 든 알파고도 8의 침입으로 대응한다.
7도
<7도> 인간들의 세상에 흑6은 없었다. 그동안은 A와 B가 보통. 백7도 처음 보는 수. 김성룡은 이를 두고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생각의 자유’를 줬다고 표현한다.
8도
9도
10도
<8도~10도>는 그냥 눈으로 감상하자. 하지만 기분 내키는 대로 둔 것은 아니다. 알파고는 이후의 수순도 훤히 꿰뚫고 있을 것이다. 무서운 알파고.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