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주 녹록잖고 주가 헐값인데...한 방 있나
산업은행이 8월부터 대우건설 매각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016년 11월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진행 상황 및 향후 계획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건설이 지난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64% 증가한 221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도시정비사업에 참여해 1조 9000억 원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은은 KDB밸류제6호 사모투자펀드를 통해 대우건설의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다. 산은은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오는 10월 전 서둘러 매각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산은이 2010년 금호아시아나로부터 주당 1만 8000원에 대우건설을 사들이며 대우건설에 투입한 돈은 3조 원이 넘는다. 이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도 주가가 1만 3000원 수준까지는 올라와야 산은이 손실을 면할 수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역시 지난 2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건설 적정 매각 가격은 1만 3000원 수준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최근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에 대해 미묘하게 입장을 바꿨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이 나오고 난 뒤 시장 기대에 부응하면 주가가 1만 3000원 수준이 되지 않아도 매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의 매각 의지가 커지면서 지난해 빅배스(과거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것)를 통해 잠재 부실을 털어내고 1분기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 대우건설의 매각 전제조건이 마련됐다는 시장 평가가 나왔다. 또 최근 산은이 글로벌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 대우건설 경영컨설팅을 의뢰한 것이 매각 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 힘을 실었다.
박창민 사장은 지난해 8월 대우건설 사장에 취임한 이후 공격적 경영활동을 해왔다.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구원투수’라는 평가를 받은 박 사장은 실적 개선과 수주 증가를 꾀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1만 3000원에는 아직 턱없이 모자란다.
대우건설 매각에 가장 걸림돌은 매각 가격이다. 산은으로서는 대우건설을 최대한 비싼 가격에 팔아야 한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기업 규모에 비해 주택 사업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가치 반등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해외사업에서 발생했던 손실 프로젝트가 정상화되는 동안 기업 가치가 새삼 크게 상승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우건설의 현재 주가가 7430원(지난 7일 종가 기준)임을 감안하면 2분기 실적에 따라 주가가 반등할 여력은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산은이 기대하는 수준인 1만 3000원까지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대우건설 주가 수준에서 매각이 이뤄지면 산은이 배임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주가 반등이 전제되지 않은 대우건설 매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와 증권업계는 대우건설 매각이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대우건설 사옥. 연합뉴스
건설업계에서도 펀드 만기일인 10월 전에는 대우건설 매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내외 건설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 국내 주택사업에서 수익을 많이 올렸는데 올해부터는 녹록지 않다”며 “해외사업도 전망이 좋지 않아 건설사들의 보수적 경영활동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가뜩이나 나쁜 경기에 대우건설을 사려는 회사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건설사들이 사업 포트폴리오와 경쟁력이 비슷한 대우건설을 굳이 살 이유도 없다는 것이 건설업계 견해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거의 대우건설과 사업영역이 겹친다”며 “게다가 대우건설 덩치(기업규모)가 커 인수 여력이 있는 회사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아람코를 통해 대우건설을 인수할 가능성과 아람코의 직접적인 인수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국내 기업이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다면 아람코의 손자회사인 S-Oil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은은 정권 초기에 대우건설을 저가에 매각할 경우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금융위원장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매각을 진행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산은이 대우건설 매각에 시동을 거는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산은이 비전문 분야인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또 다시 경영관리부실 논란으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 서둘러 대우건설을 매각하려 한다는 풀이다.
지난 5월 31일 이한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장은 산업은행 업무보고에서 “구조조정과 관련해 미진한 부분이 있었고 이런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대현 산업은행 전무는 “대우조선 사태를 계기로 여러 쇄신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팔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실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때 얼른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산은 심정이다”며 “컨설팅 결과가 나오는 7월 말부터 산은은 어떻게든 매각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정해진 바는 없으며 분기보고서가 나와 실적을 보고 난 후 그 다음 절차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