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문 잇는 대중적 인물 없어…지자체장 3인방은 친문과 결 다르고…
반면 지난 5·9 대선 경선 때 친문과 결을 달리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은 내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플랜B 가동에 나선 모양새다. 친문계 운명이 ‘문재인으로 시작해서 문재인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선 직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광화문인사에 참석해 추미애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김부겸 의원 등과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정치권 2인자는 계파의 뒤를 잇는 ‘보스형’과 정권 재창출 역할을 맡는 ‘대중형’으로 나뉜다. 호위무사형이기도 한 보스형 2인자의 삶은 가혹했다. 정권교체 이후 백의종군하거나, 정권의 짐을 짊어진 채 옥고를 치렀다. 계파정치의 양대 산맥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2인자들도 그랬다.
‘정치인 양성 사관학교’로 불린 상도동계 핵심은 ‘좌동영 우형우’였다. 문민정부 시절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최형우는 1997년 대선 직전 중풍으로 쓰러졌다. 통일민주당 부총재까지 오른 김동영은 김영삼(YS) 전 대통령 당선을 1년 앞두고 암으로 사망했다.
이들과 어깨를 견줬던 서석재는 1997년 대선 당시 ‘제3후보 돌풍’을 일으킨 이인제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따라 탈당했지만, 대선 패배에 이어 2000년 총선 때 민주국민당(민국당) 깃발 꽂기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YS 재임 때 치른 1997년 대선 당시 여당 후보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대쪽’으로 불린 이 전 총재는 국무총리 시절 YS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2인자 잔혹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냈던 홍인길은 1997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었던 한보사태에 연루,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권 의원실 한 보좌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돈 필요할 때 찾았던 이가 홍인길”이라고 말했다. 상도동계 핵심 중 현재까지 활동하는 이는 김덕룡(DR)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도다. 5·9 대선 때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도 마찬가지였다. 좌장인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은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권좌에서 비켜서 있었다. 백의종군의 표본을 보여준 셈이다. 권 고문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퇴임 직전까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며 동교동계 인사들과도 연락을 끊은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2002년 대선 때 여당 후보는 동교동계가 아닌 ‘노란 풍선’ 열풍을 일으킨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영원한 전두환맨 장세동은 정치 공작 등의 혐의로 세 차례 옥고를 지냈고 차지철은 10·26 총탄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광재 우희정’도 수감 생활을 면치 못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2인자 이재오 전 의원은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권력 밖으로 밀려났다. 2012년 대선 경선 땐 친이(친이명박)계의 정적이었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86.3%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MB의 호위무사는 있었지만 대중형 2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돌고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후계자를 허용하지 않는 리더십 탓에 촛불정국 속에서 치러진 5·9 대선에서 친박(친박근혜)계 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친박 청산’이 자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7·3 전당대회의 핵심 프레임으로 관통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87년 체제 전후 역사를 보면, 대중형 2인자가 없을 땐 ‘최대’ 정권 재창출 실패, ‘최소’ 같은 당 반대 정파에 권력을 이양했다.
친문계 고민도 이 지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류는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9년 ‘노무현 서거’ 이후 정치권에서 폐족으로 몰린 친노(친노무현) 부활 움직임이 일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를 내지 못했다. 원로급인 이해찬 민주당 의원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2% 부족했다. 오히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국민참여당이 급부상했다. 하지만 국민참여당의 잇따른 선거 패배로 기회는 다시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친노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친노계 주류가 군불을 때고 문 대통령이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노무현 후계자’ 구도가 형성됐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에게 2012년 대선 당시 ‘준비가 안 된 채’로 후보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토론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전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은 급조된 후보였다는 말이다. ‘이해찬·한명숙’ 등 대중성을 겸비한 친노계 인사들이 있었지만, 뚜렷하지 않은 후계자 구도 탓에 보수정권 9년 2개월이 지나서야 정권 재창출의 길이 열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친문계 중 대중성이 있는 의원은 사실상 없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인 추미애 의원은 인지도는 높지만 대중성은 2% 부족하다. 최근엔 당·청 갈등설의 진원지로 지목받기도 했다. ‘김병관 김해영 박주민 손혜원 표창원’ 의원 등 친문계는 다수가 초선이다. 친문계에 속하는 친노계 ‘김태년 윤곽선 윤호중 이학영 전해철’ 의원 등은 전국적 대중성이 없다.
민주당을 통틀어 전국적 인지도를 지닌 인사는 5·9 대선 경선(예선 포함) 때 출마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박영선 의원 정도밖에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 대통령 후계자 부재에 대해 “친문계의 운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승자독식 구조에 의한 패권적 정당 운영 등에 매몰되면서 문재인 정신을 이을 만한 사람을 키울 여력이 없었다”라며 “문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질수록 친문계도 각자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자체장 3인방이 친문과 결이 다르다는 점도 주류의 고민을 깊게 한다.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안 지사만이 향후 당 주류와의 관계 설정에 따라 후계자로 거듭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지난 대선에서 중도 외연 확장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들은 이미 플랜 B에 시동을 걸었다.
박 시장은 ‘3선이냐, 원내 도전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애초 원내 진입에 무게를 뒀던 박 시장이 3선 도전으로 틀었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시장 12년의 평가를 통해 대선 후보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여당 한 의원은 3선 도전설에 대해 “높다고 본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보선이나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안 지사는 5·9 대선 이후 측근들에게 ‘재보선 출마→당권 도전→내각 참여→대선 직행’의 로드맵을 제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보선의 경우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병’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 지역구 ‘서울 송파을’ 등이 거론된다. 핵심 측근들 사이에선 충남에 깃발을 꽂아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자리를 노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차기 대선 후보는 친문계보다 안 지사나 박원순·이재명 시장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선택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1순위는 서울시장이다. 그는 6월 2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기 진로에 대해 “박 시장의 3선 도전 여부에 따라 내 선택도 연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시장이 사실상 박 시장의 불출마를 압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시장 측근들은 최근 차기 서울시장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얼미터>가 6월 20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6월 17~18일 이틀간 서울시민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 시장은 여당 후보 적합도에서 40.4%로, 박영선 의원(16.4%)을 두 배 이상 앞섰다. ‘친문’ 추 대표와 ‘86그룹’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각각 9.5%와 6.0%에 그쳤다. 박 시장이 3선에 도전했을 때도 이 시장은 22.9%로, 1위인 박 시장(29.8%)을 바짝 뒤쫓았다. 여야 후보군 적합도에서는 박 시장 25.3%, 이 시장 19.0%, 황교안 전 국무총리 13.9% 순으로 나타났다. 친문계는 비문계의 대세와 86그룹의 약진 사이에 낀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친문계의 운명이 ‘문재인’으로 끝날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