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 맞춰 순항…재벌개혁 파고 넘을까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일요신문DB
SK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압도적인 표차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여의도 회동’에 동석한 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 또 이형희 사장은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 기조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가장 먼저 실행에 옮겼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5월 21일 민간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하청 대리점 직원 52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지난해까지 총괄부사장을 역임한 SK텔레콤도 정부 서민 공약에 협조하기로 뜻을 모았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5월 24일 문재인 정부 주요 공약인 ‘가계 통신비 인하’에 대해 “경제 활성화가 중요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맞다고 본다”며 “정부 기조에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 달 뒤인 6월 22일 ▲취약계층 요금 감면 확대 ▲선택약정 할인율 5% 인상 ▲월 2만 원 ‘보편요금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통신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공약 후퇴’라며 반발했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선 일부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SK가) 정치권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부 정책에 협력하려하는 것은 맞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6월 23일 발표된 ‘대통령 미국 방문 동행 경제인 명단’에 포함됐다. 재계 서열 1~5위 기업 가운데 문 대통령과 동행한 오너 총수는 최 회장이 유일하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 중이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신 이름을 올렸고, 현대차와 LG는 각각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기회를 얻었다.
롯데는 배임·횡령 재판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대신 허수영 롯데그룹 화학BU장이 대표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막판 ‘불법 및 탈법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방미가 무산됐다. 반면 최 회장은 국민의당 등 야당의 비판에도 명단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재계 일각에선 최 회장의 이번 방미를 문재인 정부와 SK의 ‘허니문’을 드러낸 한 예로 꼽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등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최 회장은 이 부회장, 신 회장과 달리 혐의를 벗었다. 검찰은 올 1월까지만 해도 최 회장과 측근인 이 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반면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신동빈 회장은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과 달리 SK 경영진은 수사 초기부터 검찰에 협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3월 1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또 최 회장은 “독대에서 (동생인) 최재원 SK 부회장의 석방을 요구했다”고 밝히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를 가를 중요 진술을 했다. 이는 ‘대통령 말씀자료’를 부인하고 있는 이 부회장, 신 회장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증거다. 앞의 법조계 관계자는 “신 회장을 기소할 수 있던 배경에는 최 회장의 진술이 있었다”며 “대통령과 독대 직후 재단과 관계된 서류를 받았다는 핵심 진술도 이형희 사장이 한 만큼 SK가 등을 돌리면 삼성 이재용의 공소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SK는 의도했든 아니든 새 정권 출범에 일조를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은 5대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정치권이 요구한 ‘경제활성화’ 동참 의지를 밝혔다. 대기업 도움 없이 경제 문제 해결이 힘든 정부로서는 SK의 이 같은 광폭 행보가 당장은 미더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SK의 허니문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현 정부는 ‘재벌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SK는 주요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4대 재벌’에 포함된다. 세부적으로는 지주사 요건 강화, 법인세 인상, 내부 거래 규제 강화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고, 특히 반(反) 대기업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정권과 친분이 부각되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SK㈜를 상대로 한 달 넘은 기간 동안 정밀 회계감리를 벌이고 있다. SK㈜와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감원 회계조사국은 2015년 4월 SK㈜가 SK C&C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회계 처리는 없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SK㈜ 측은 “내부 확인 결과 회계 처리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일반적인 수준의 감리”라고 밝혔지만 감리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업계 안팎에선 여러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새 정권 들어 순항해 온 SK가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정부와의 허니문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