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첩보 기반 대기업 횡령·배임 수사…“수사권 조정 앞둔 경찰의 전격전”
어제(7일) 오후 갑작스레 알려진 대한항공 압수수색을 놓고 법조계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가장 이례적인 것은 압수수색의 주체가 경찰이었다는 점. 통상 대기업 사건은 경찰이 아니라 검찰의 전문 영역으로 분류되어 왔고, 특히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찾아낸 혐의 역시 검찰에 특화됐다고 하는 배임과 횡령이기 때문이다.
주요 대기업을 수사 대상으로 훑고 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었던 경찰이 대한항공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칼날을 꺼내든 셈인데, 일각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수사 능력 과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일 경찰이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 강서구 대항항공 본사. 사진=연합뉴스
비교적 적은 13명의 수사관을 대한항공 본사 등에 보내 압수수색을 실시한 경찰.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대한항공이 인테리어 업체에 인천 영종도 호텔 공사를 주면서 공사비를 부풀려 돌려받은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평창동 개인자택 공사비용을 댄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호텔과 자택공사 계약서, 세무·회계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지난 5월 25일, 조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를 담당한 업체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당시 인테리어 회사에서 조 회장의 인테리어 공사 계약서를 보관하고 있었던 만큼 관련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인테리어 업체는 2007년부터 지난 2014년까지, 자택 개보수 공사비용을 계열사로부터 100억 원가량의 수표를 결제받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향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자체적으로도 진상파악에 나서겠다”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는 대한항공의 혐의만큼이나, 경찰이 이번 사건에 착수하게 된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경찰이 대기업 총수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폭행(성폭력 사건 포함)이나 음주와 같은 적발이나 피해자 고발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사건은 다르다. 지난 5월 중순 시민단체의 제보를 통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자금 대납 여부 의혹을 알게 된 경찰은, 내사를 벌여오다가 어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선택했다. 고발이 아니라 첩보를 통해 받은 단서로 수사를 벌여가는, 전형적인 검찰 특수수사 사건 흐름인 것.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 주도 사건이지만,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지휘하는 검찰이 절대 모를 수 없다”며 “현재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두 공석이 상황에서 경찰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대한항공이라는 수사 대상을 선택한 것 같고 이를 뺏어와 진행할 수 없는 위기의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실제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법무부와 검찰은 후보자들의 청문회 통과가 가장 큰 과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수사 능력 면에서 검찰에 절대 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경찰의 ‘승부수’라는 게 법조계 내 중론이다.
특히 검찰이 먼저 갑질 횡포 테마로 사건을 치고 나간 것에 대한 받아치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앞서 ‘갑질 논란’으로 정우현 전 미스터피자 회장을 구속하는데 성공했는데, 비슷한 갑질 논란(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아온 대한항공을 수사 대상으로 선택했기 때문.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또 다른 기업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수사권 조정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느냐”며 “경찰 입장에서는 검찰이 인사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도 충분히 대기업 총수 비리 사건을 잘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고, 그 맥락에서 가장 적합한 수사 대상을 고른 것이 대한항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 청문회를 통과하고 나면, 인사와 함께 수사권 조정이 거론될 텐데 경찰은 그 전에 어떻게든 사건을 마무리 하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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