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위대 FC’ 전국 일반인 도전자와 풋살 대결해 승리시 100만원 기부
지구방위대 FC. 사진=슛포러브 제공
[일요신문]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김병지, 최진철, 이천수가 힘을 모았습니다.
‘축구로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기부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페이스북 ‘슛포러브(Shoot for Love)’ 페이지에서는 지난 6일 3인의 레전드가 동시에 등장하며 관심을 끌었습니다.
슛포러브는 김병지, 최진철, 이천수를 포함해 여자축구 청소년대표 출신 프로게이머 이유라, 슛포러브 팀의 바밤바가 팀을 이룬 ‘지구방위대 FC’의 결성을 발표했습니다.
팀 결성을 알리는 페이지에서는 “지구방위대 FC는 대한민국 축구열기를 되살리기 위해 전국을 돌며 펼칠 예정”이라며 “저희가 승리할 때마다 소아암 환아 치료비로 100만 원이 기부되고 저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팀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팀 결성만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천, 천안, 광주, 부산, 제주까지 경기 일정이 잡혔습니다.
며칠 뒤에는 홍보 영상도 나왔습니다. ‘멤버 5명이 아직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의 한국 축구를 되살리려 나선다’는 내용으로 익살스럽게 촬영된 영상은 25일 현재 약 1만 3000개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요신문i>에서는 지구방위대 FC의 첫번째 격전지를 방문해 전설들의 축구실력을 확인하고 그들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구방위대 FC 공격수 이천수. 사진=슛포러브 제공
지난 7월 16일 서울 송파구 가랑고등학교 앞에는 지구방위대의 얼굴이 래핑된 버스가 들어섰습니다. 그들이 선언한 대로 소아암 환아 치료비를 놓고 승부를 펼칠 도전자를 상대하러 온 것입니다. 지구방위대 멤버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김현욱 전 아나운서가 캐스터 겸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는 “좋은 취지로 하는 일이라 기꺼이 참가했다. 앞으로도 스케줄만 허락한다면 지방까지 따라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날 이벤트에 참가한 김현욱 아나운서
이날 지구방위대에 도전장을 내민 팀은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서강대 축구동아리 ‘FC EINS’, 가락고 발모아&뇌성장애인 연합팀’입니다. 선수 은퇴 이후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서는 지구방위대만큼이나 도전자들도 긴장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김병지, 최진철과 홈리스월드컵 대표팀.
홈리스월드컵 대표팀은 오는 8월 29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홈리스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팀입니다. 이들은 4인제 축구 경기를 기본 규칙으로 하는 홈리스월드컵을 준비중입니다. 4대4 풋살로 진행되는 이번 경기에 지구방위대 멤버보다 더 익숙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되는 첫 경기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습니다. 지구방위대는 처음 손발을 맞춘 탓에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경험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홈리스월드컵 대표팀을 잘 제어하며 2-1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지구방위대 FC 대기실.
경기를 마친 후 대기실 분위기는 뒤숭숭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선수들의 몸이 마음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날 따라 유난히 덥고 습한 날씨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4대4 풋살의 운영방식도 선수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 상대는 남녀 혼성팀이었기에 지구방위대가 4-1로 여유있게 잡아냈습니다. 발모아&뇌성마비 연합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 현장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가락고등학교 발모아&뇌성마비 장애 연합팀과 지구방위대 FC
첫 경기에서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선수가 부족했던 지구방위대는 슛포러브 김동준 대표까지 투입하며 체력을 안배를 노렸지만 이제 막 첫번째 경기를 치르는 서강대 학생들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FC EINS 학생들은 왕성한 체력으로 지구방위대를 괴롭혔습니다.
학생들은 경기 종료 직전 기어코 결승골을 넣으며 지구방위대에 첫 패배를 안겼습니다. 결과는 3-4로 마무리됐습니다. 경기 후 학생들은 “팀원이 주로 20대 중반인데 우리는 김병지·최진철·이천수 선수 경기를 보고 축구를 알기 시작했다”며 “만나는 것 만으로도 영광인데 같이 경기를 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조금전까지 선수들을 무섭게 밀어붙이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지구방위대 FC
<일요신문i>는 경기를 마치고 지구방위대의 소감을 직접 들어 봤습니다.
지구방위대 FC 유일 여자선수 이유라. 사진=슛포러브 제공
이유라 선수는 지구방위대 유일한 여자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청소년 국가대표 경험이 있는 그는 “생각보다 참가자분들 실력이 너무 좋아서 놀랐다. 부끄럽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보강해야겠다”면서 “체력·실력적으로 준비를 해서 다음엔 더 좋은 모습 보여야겠다. 이겨야 좋은 일로 연결이 되기에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역 시절엔 최종 수비수였지만 이날만큼은 공수를 넘나들었던 최진철 선수는 “굉장히 힘들다. 그동안 이렇게 뛸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나이도 많이 먹어서…”라며 말 끝을 흐렸습니다. 전승을 기대 했지만 1패를 안은데 대해선 “다음부터는 지지않고 더 많은 금액 기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최진철 선수는 예고 영상에서 “10년간 공을 안찼다”는 말로 웃음을 안겼는데요,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을까요?
“2009년 정도까지 강원 FC에서 세 번째 코치였기 때문에 훈련과 선수들과 함께 뛰곤 했었다. 그 이후로는 거의 운동을 안했다고 보면 된다. 감독·코치라는 직업이 입만 살아있으면 되는거 아닌가(웃음). 아, 부지런한 감독님들은 따로 운동을 하시기도 한다. 앞으로 지구방위대는 물론 내 건강을 위해서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
김병지 선수는 이날 경기에 대해 “축구를 좋아하고 함께 경기하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분들하고 했기에 나도 즐거웠다”며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서 놀랐다. 동호인들이 11대11 경기도 많이 하지만 요즘은 풋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그런 부분에 맞춰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골키퍼를 맡았음에도 중앙선까지 넘어서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김병지 선수는 은퇴 이후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해설중에 “선수생활 26년간 술·담배는 참았지만 드리블은 참지못했다”는 말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날 플레이에 대해서는 “즐거움을 주려고 했던 플레이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더라”며 웃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소아암 환우들을 돕는 의미도 있지만 축구 열기를 되살리겠다는 지구방위대의 의지도 담겨 있습니다. 김병지 선수는 “경기장을 찾는 것이 선수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 팬들의 관심을 가져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사람들이 축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천수 선수는 지구방위대의 활동에 대해 “승패를 떠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도 하면서 축구에 더 흥미를 갖자는 의미가 있다. 형들 모시고 돌아다니면서 하는 축구 홍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승패를 떠난다고 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는 특유의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천수 선수는 “한때 승부를 위해 뛰었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걸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며 웃었는데요. 이어 그는 “내가 최선을 다해줘야 사람들이 좋아하실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나만의 매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날을 위해 며칠 운동을 했다는 최진철 선수와 달리 이천수 선수는 따로 준비는 안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형들은 나이가 좀 있으니까…”라면서도 “너무 자만했다. 준비가 좀 필요하다. 그리고 준비하는 모습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천수 선수는 유난히 슛포러브 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체육관에서 멀리 있는 농구골대에 공을 차넣은 영상은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 리우올림픽에는 슛포러브 팀과 함께 현지에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로 이 친구들이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 내가 꽂혔다”면서 “은퇴하면서 선수시절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면 내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많은걸 내려 놨다. 활동하면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아지니 더 신나서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천수 선수는 슛포러브와의 캠페인 외에도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자주 내비치는 스타인데요. 앞으로 그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지금은 다양하게 활동하지만 축구라는 본분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가장 잘하는게 축구다. 전략을 짜고 하는 일들은 내가 평생 해왔던 일이다.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나중엔 지도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지도자의 길로 가기 위해 여러가지 사회생활을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도자의 꿈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지구방위대 FC와 이날 행사에 참가한 도전자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