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국회 청문회서 위증하라는 건가”
이번 결과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 전 장관과 김 전 실장은 천국과 지옥 수준으로 희비가 크게 엇갈려 시선이 더욱 모아졌다.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구치소 밖으로 나왔다. 반면 김 전 실장은 이번 재판에서 가장 무거운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돼 구치소에 그대로 남게 됐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수갑을 풀고 법원에서 나오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 전 장관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의 위치에 있으면서 불거진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직권남용과 관련,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 재직시 상관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비서관은 유죄를 받았다. 전임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도 유죄를 받았다. 반면 조 전 장관은 무죄가 나왔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 같은 판결을 두고 “조 전 장관은 투명인간이었나”라며 비판을 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블랙리스트 파일은 김기춘 전 실장, 박준우 전 정무수석, 신동철 전 정무수석, 정관주 문체부 1차관 등이 관련돼 작성됐다. 그런데 지난 5월 4일 공판에서 박 전 수석이 증인으로 나와 조 전 장관에게 정무수석 직을 인수인계하면서 “당시 공무원연금 개혁, 4대악 척결 등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조 전 장관이 ‘이런 일도 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법원은 설명자료를 통해 ‘조윤선 정무수석이 부임한 후 피고인 신동철 비서관이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 결과 등을 개략적으로 보고’했지만 문예기금 지원배제에 관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한 중견 변호사는 “법원 측에서도 개략적인 보고를 받았음은 인정하는 데다 ‘이런 일도 해야 하느냐’는 증언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무죄 판결을 낸 것은 무죄를 처음부터 결정하고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 이 정도 나왔는데 공동정범이 아니라고 인정한 판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단대로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해도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조 전 장관은 법정에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국회 청문회에서도 몰랐다고 했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그래서 국회 위증도 끝까지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회 위증은 유죄로 판단해 조 전 장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은 “법원이 인정한 대로 보더라도 앞뒤가 안 맞는다.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실체를) 몰랐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에 있어선 무죄를 받았다. 그렇다면 조 전 장관으로선 국회에 가서 위증을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특히 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라는 배경을 보면 더욱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비교적 낮은 형량에 대해 법원은 설명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만 피고인들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들로,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좌편향되어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기간에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임. 이는 특정 개인 등의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국가권력을 남용한 다른 국정농단 범행과는 그 성격이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음.’
이 같은 양형 요소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의 법조인은 “이 건은 문화예술계 전체에 피해를 끼쳐 피해자가 아무 죄도 없는 다수의 국민이라는 면에서 다른 국정농단 범행보다 더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특검의 항소가 예정된 만큼 완전히 자유의 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고등법원에서 2라운드가 있을 전망이다.
이번 재판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대다수다. 공소사실에서 노태강 당시 체육국장(현 문체부 차관)의 사직에 관련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유죄가 인정된 데다 박 전 대통령의 공범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최순실 씨의 경우에는 이번 재판에서 공범으로 인정되지 않아 희비가 엇갈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