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장애’ 왕세자비 자꾸 왕실 밖으로
▲ 나루히토 왕세자 가족. 최근 마사코 비는 동서지간인 기코 비의 병원 방문 전에 미술관 관람을 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잦은 외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그중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나루히토 왕세자의 부인인 마사코 비의 입장일 것이다. 그녀는 병을 핑계로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 때문에 가뜩이나 왕실과 마찰을 빚어왔다. 마사코 비는 지난 2003년 말 이후로 정신적 스트레스와 적응장애 등의 이유로 공무를 쉬고 장기간 요양을 했다. 올해 8월에는 마사코 비의 부모가 머물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2주 동안 요양을 하고 돌아왔다. 일본 왕실에서 요양을 위한 “사적인 외국 방문”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그녀가 이번 남아 탄생으로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났을지 오히려 더 큰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녀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
아기가 태어난 지 4일 후인 9월 10일 일왕 부처가 기코 비와 갓난아이가 있는 도쿄의 아이쿠 병원을 방문했다. 바로 전날까지 홋가이도에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다음날 병원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왕세자 일가가 병문안을 갔다. 문제는 이 부분이다.
별다른 공무도 없는 왕세자 부부의 병문안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 실제로 일왕 부처가 병문안을 간 10일에 왕세자 일가는 스모를 관전하고 있었다.
고령인 데다가 건강에 문제가 있음에도 정력적으로 공무를 소화하는 일왕 부처와, 요양에서 돌아온 후에도 공무에 복귀하지 않고 ‘사적 외출’을 즐기고 있는 마사코 왕세자비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스모 관전이라는 공개된 외출 외에도 두 차례 더 ‘비밀리에’ 외출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왕실으 일보다 자신의 사생활을 더 중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게 됐다.
왕세자 일가가 기코 비를 방문한 11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은밀히 미술관에 들러 ‘디즈니 아트전’을 구경한 후 병문안을 간 것. 이에 대해 언론은 “잦은 외출 때문에 비난을 받을 것을 알고 일부러 비밀리에 외출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3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남아를 낳아 왕실에 대한 ‘책임’을 다한 기코 비와 비교하면, 마사코 비가 왕실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최근 아들을 낳은 아키시노 왕자 부부. AP/연합뉴스 | ||
이러한 격차는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왕세자 일가는 공적 활동비인 ‘궁정비(宮廷費)’ 말고도 사적 활동비인 ‘내정비(內廷費)’로 연간 약 3억 2400만 엔(약 26억 2440만 원)을 지급받는다. 그에 비해 아키시노 왕자 일가가 받는 사적 활동비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지급분을 합해도 5490만 엔(약 4억 4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공식석상에서의 자리나 여름휴가 때 머무는 호텔의 등급에 이르기까지 나루히토 왕세자와 아키시노 왕자가 받는 대우의 차이는 확연하다.
오랫동안 형인 나루히토는 침착하고 꼼꼼하며 책임감 강한 성격으로, 동생인 아키시노 왕자는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루히토 왕세자가 지나치게 마사코 비의 편을 들면서 왕세자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아키시노 왕자는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4년 5월 나루히토 왕세자가 유럽 3개국을 방문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왕실에 마사코의 커리어나 인격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다”고 발언해 ‘국제파’인 마사코 비와 보수적인 궁내청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시사했었다. 이에 대해 아키시노 왕자는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원한다고) 자신을 위한 공무(公務)는 만들지 않는다. 공무는 수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형을 꾸짖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왕실 관계자들은 “속 시원하다”며 아키시노 왕자를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늘 이런저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왕세자 일가와 비교할 때, 왕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아키시노 왕자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같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 탄생이라는 경사까지 겹쳤으니 일본 왕실에서 점점 더 아키시노 왕자 일가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남자 아이의 탄생으로 일견 해결된 듯 보이는 일본 왕실 후계자 문제가 향후에도 계속 문제가 될 전망이다. 현행 왕실전범에는 “왕실의 여자는 국왕 및 왕족 이외의 사람과 혼인할 경우 왕족의 신분을 떠나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태어난 남아를 제외한 차세대 왕족들은 사촌을 모두 합해도 모두 여성들뿐이다.
언젠가는 모두 결혼을 한다고 생각할 때 일본 왕실에는 이제 태어난 히사히토 왕자만 남게 된다. 일본 왕실 전체의 존망이 단 한 사람의 어깨에 걸린 셈이다. 일본 정부가 현행의 남아 계승 원칙을 고수할 경우, 이번에 태어난 히사히토 왕자에게는 반드시 남아를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게 된다. 제2의 마사코 비가 또 나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