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삼성 도움으로 재산 형성’ 밝혀…이재용·이서현 남매한테도 악재
지난 1월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7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그룹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산분할을 피하려 편법상속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박영선 의원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이부진 사장이 남편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이다.
박 의원은 “이부진 사장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보유재산은 ‘1조 7046억 원’”이라며 “이 재산을 결혼 뒤 스스로 힘으로 형성했다고 인정하면 임우재 전 고문이 요구한 재산분할에 응해야 했다. 반대로 스스로의 힘이 아닌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그룹의 도움으로 형성했다고 하면 ‘편법상속’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부진 사장은 재산분할을 피하려고 스스로 편법상속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이 입수한 이부진 사장 측 이혼소송 준비서면에 따르면 “이부진 사장은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점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다액의 돈을 증여받아 삼성물산 주식 및 삼성SDS 주식을 취득하도록 했고, 이를 회사에서 실무적인 부분을 관리해 왔다”고 적었다.
이어 “이 사장은 혼인하기 이전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절인 지난 1995년 9월쯤부터 1997년 6월쯤까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수회에 걸쳐 총 167억 1244만 9730원을 증여받아 재산을 형성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부진 사장이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또한 “이 사장은 혼인 전인 1996년 12월 3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자금 16억 1300만 원으로 삼성 에버랜드 주식회사 전환사채(CB)를 인수했고,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 삼성물산 주식 1045만 6450주를 보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박 의원은 “이부진 사장의 재산은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절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증여받아 형성됐고 그 관리는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에서 해왔으며, 특히 1996년 이 회장으로부터 받은 16억 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을 통해 21년 후 현재 1조 5000억 원이 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장과 임 전 고문의 이혼소송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권양희) 역시 이러한 이 사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0일 이부진 사장에게 재산분할로 86억여 원만을 임 전 고문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문제는 이러한 편법상속 의혹이 이부진 사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 이재용·이부진·이서현이 모두 비슷한 시기, 비슷한 방식으로 그룹 승계를 위한 상속 작업을 거쳤다는 것은 과거 삼성 특검과 법정 공판 과정에서 익히 알려져 왔다.
이부진 사장과 두 살 터울인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지난 1991년 삼성전자 공채로 입사했지만, 직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사장 측 준비서면에 나온 1995년 당시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석사를 마치고 막 돌아온 때였다.
이건희 회장은 ‘유학생’ 이재용 부회장에게 60억 8000만 원을 증여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 중 16억 원을 증여세로 납부하고, 남은 44억여 원의 돈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각각 12만여 주, 47만 주 매입했다. 이후 두 계열사는 급격히 성장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2년 만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며 563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다시 미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로 유학길에 올랐고, 그동안 이 돈을 바탕으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제일기획의 전환사채(CB) 등을 우선 배정 받아 인수하며 거액의 차익을 거뒀다. 44억여 원 남짓한 ‘시드머니’를 바탕으로 이 부회장은 연매출 300조 원의 삼성제국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의 CB는 나중에 헐값 발행을 통한 불법 승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삼성SDS BW를 인수하면서 당시 장외시장 실거래가의 8분의 1에 불과한 헐값에 인수했다며 문제가 제기돼 특검 수사까지 이뤄졌다.
최근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을 움직이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등에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기소돼 재판 중에 있다.
따라서 이번 편법상속 논란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 작업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사진=일요신문 DB
이어 그는 “이런 의혹이 이부진 사장 측 변호인의 법원 준비서면을 통해 다시금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라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로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불법 승계’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면 삼성그룹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호텔신라 측은 “이부진 사장의 편법상속 논란은 특검 등을 거쳐 이미 문제가 없음을 여러 차례 소명했다”며 “또한 이번 이혼재판은 이부진 사장 개인적인 일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박영선 의원은 이러한 편법상속을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해 ‘불법이익환수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이익환수법은 50억 원 이상의 횡령·배임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 그 범죄 수익을 소급해 환수한다는 게 주된 골자다. 이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한 차례 발의됐으나 폐기돼, 지난 2월 말 재차 발의됐다.
박 의원은 “불법이익환수법, 일명 ‘이재용법’이 통과되면 이부진 사장이 불법행위로 벌어들인 3000억여 원 재산에 대한 환수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