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업계 매출 대비 인건비 2% 안팎…인건비 비중 높은 의류업계는 20년 전 한국 떠나 동남아로
지난달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11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발표했다. 올해 최저임금인 6470원 대비 16.4% 상승했다. 1988년 IMF 기준 인당 GDP 4813달러 벌던 나라가 2014년 2만 5975달러로 약 5배 성장하는 30년 새 최저임금은 15.8배 올랐다. 1988년 처음 정해진 최저임금은 1군·2군 평균 475원이었다.
대표 섬유업체 경방과 전방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경방과 전방의 반응을 예시로 들며 섬유·의류업계 등 패션업계의 ‘집단탈출’이 우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업계의 반응은 달랐다. 섬유업계는 인건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큰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의류업계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의류제조 부문이 20여 년 앞서 이미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옮겼다고 전했다. 섬유업과 의류업의 각기 다른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한 ‘호도’라고도 했다. 한 패션업계 고위관계자는 “패션산업 자체를 이해 못한 사람들이 벌인 ‘아무 말 대잔치’로 볼 수 있다”고 일렀다.
경방과 전방 등 방적·방직업체로 이뤄진 섬유업은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패션산업 안에서도 가장 적은 편이다. 패션산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실과 원단을 만드는 방적·방직업체가 섬유업을 이룬다. 섬유업체에서 원단을 공급 받아 부자재를 합쳐 옷으로 만드는 게 의류업이다. 소매유통업은 의류 브랜드를 기획하고 디자인한 뒤 나온 옷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경방과 전방을 포함한 주요 섬유업체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은 1.54%로 나타났다. 패션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산업분류 기준상 같은 업계로 분류되는 태광이나 대한방직 등은 인건비 비중이 조사대상에 비해 다소 높았지만 방송과 부동산 등 섬유업 외 사업영역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과 원단 생산 등 방적·방직 부문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 차지하는 주요 섬유업체의 인건비 비율은 2% 안팎이었다. 익명을 원한 한 섬유업계 관계자는 “실이랑 원단 만드는 건 다 기계가 한다. 사람으로 운영되는 업계라기보단 장치산업에 가깝다. 진짜 인건비 때문에 고생하는 곳은 사실 의류업”이라고 했다.
한국 의류업계의 반응 역시 무덤덤했다. 이미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모두 옮겼기 때문이다. 사실 패션산업 가운데 의류업은 인건비 그 자체로 돌아가는 산업이다. 미얀마에서 공장을 돌리는 주요 한국 의류업체에 따르면 최근 기준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은 20%대다. 우리가 흔히 입는 면 셔츠를 예로 들면 셔츠 1장이 공장도 가격 7000원인데 부자재가 1500원, 인건비가 1500원, 원단이 4000원을 차지한다. 현재 미얀마의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약 375원으로 한국의 80년대 중후반 수준이다.
한국 사회에 최저임금이 제도적으로 마련된 1980년대 말부터 임금 상승폭에 따라 의류업은 자연스레 의류제조업과 의류제조관리업으로 나뉘었다. 주요 의류업체는 업력과 쌓여온 명성은 그대로 유지하며 의류제조 생산기지만 최저임금이 저렴한 나라로 옮겨갔다. ‘관리’ 역할만 하는 형태로 의류업계가 체질을 개선한 것. 1990년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공장은 대우그룹의 부산 공장이었을 만큼 한국 수출효자종목은 의류업이었다. 지금 국내 대형 의류제조공장은 전무한 실정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의류생산을 동남아로 돌린 한국 의류업체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대폭 줄어 들었다. 의류제조관리업으로 진화한 한국의 주요 의류업체 인건비 비율은 지난해 기준 매출 대비 3.66%로 나타났다. 한 코스피 상장 의류업체 임원은 “한국에서 의류업에 종사해 온 업체 가운데 국내에서 옷을 생산하는 업체는 이제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고급 의류 빼곤 다 동남아나 중남미에서 생산한다”고 말했다. 실제 의류업으로 분류된 상장사 대부분은 국내에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반론이 거세지자 경방 쪽은 “보도에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자연스레 최저임금 공론화의 방향을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산업으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책 없이 최저임금만 오르면 최저임금 미만으로 노동력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확대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7월 공개한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의 특성 분석과 보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OECD 회원국 26개국 가운데 3번째로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비율이 높았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11.8%가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는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급상승에 따른 효과를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곳을 패션업계가 아니라 서비스업이다. 시설관리자 14만 명, 숙박 및 음식점 종사자 14만 명, 도소매업 종사자 13만 명 순으로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다. 대부분이 단순노무종사자다.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 96만 명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7만 명이 단순노무에 종사하며 최저임금 그늘 밖에 서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최저임금, 외국인 근로자에겐 ‘깜깜이’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은 도쿄 지역 최저임금이 932엔으로 올라가자 최저임금 홍보 전단을 배포했다. 전단은 일본어 외에도 스페인어, 영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등으로 제작됐다. 일본 안에서 근무하는 외국 국적 근로자도 최저임금 상승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의도에서였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도쿄 지역 최저임금 소개 전단. 사진=일본 후생노동성 이에 반해 고용노동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관련 고시를 따로 외국어로 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는 “외국어로 최저임금을 홍보하거나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조차 영문 버전만 있었다. 2018년 최저임금 의결 내용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통계청의 외국인고용조사 결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5월 기준 96만 명으로 나타났다. 한국계 중국인이 44만 명으로 45.9%를 차지했고 베트남인과 중국인이 각각 7만 명이다. 인도네시아인, 우즈베키스탄인, 필리핀인 등은 각각 3만 명으로 파악됐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