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상대 소송전 이례적…“이쪽 판에선 일상” 이번에 판 뒤집히나
최근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한 ‘김기덕 감독 여배우 폭행·강요 사건’과 관련한 한 영화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 <일요신문>과 만난 연극·영화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제라도 공론화됐으니 다행”이라면서도 ‘거물’을 상대로 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정훈 기자
김 감독의 사건은 최근 보도되면서 알려졌지만, 실상은 2013년 3월 발생해 올 1월 처음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때부터 업계 측의 진상조사와 검찰 고소가 진행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의 ‘어머니’ 역으로 캐스팅됐던 배우 A 씨가 촬영 중 김 감독으로부터 폭행과 계획되지 않은 베드신을 강요당했다며 영화인 신문고에 알리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A 씨는 2013년 3월 2일 김 감독에 의해 캐스팅이 확정됐고, 같은 달 9일부터 10일까지 전체 출연 분량의 70% 촬영을 완료했다. 영화 촬영을 짧은 시간에 속행으로 끝내는 김 감독의 성격에 따라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이 ‘연기지도’를 명목으로 A 씨의 뺨을 내리쳤고, 당초 받았던 시나리오에 없던 선정적인 연기를 강요했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뫼비우스>에서 A 씨는 남편의 외도에 분노해 아들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다. 이 장면에서 A 씨는 실제 성기와 흡사하게 제작한 모형을 이용해 촬영하기로 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촬영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배우의 성기를 직접 잡으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A 씨가 주저하자 김 감독은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를 폭행하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한 혐의로 피소됐다.
A 씨 사건 보도 직후 김기덕필름 측은 마치 사건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1월부터 A 씨, 영화인 신문고를 통해 사건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이와 관련한 해명문을 서면으로 보내는가 하면 김기덕필름 측 관계자가 김 감독을 대리해 참고인으로 진술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정확한 해명문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언론 보도 이후 김 감독 측이 밝힌 “(A 씨의) 뺨을 때린 것은 연기지도와 연출을 위함이었고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베드신은 시나리오 상에 있는 장면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는 것과 동일한 내용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은 “왜 김 감독이 고소를 당했나”가 아닌, “왜 A 씨는 4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고소를 했나”였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2013년에 김 감독 측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4년 뒤인 지금 고소를 했다는 것에 “꿍꿍이가 있지 않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 씨의 변호인단 가운데 한 명인 이명숙 변호사 겸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4년 동안 피해자가 (사건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련 단체나 기관들과 많은 상담을 했고, 변호사들도 만났다. 그런데 한 변호사가 ‘내가 (그 업계를) 잘 아는데, 고소하지 마라. 고소해 봐야 도움이 별로 안 될 것’이라고 말렸다고 했다”라며 “여러 군데에 문을 두드려도 부정적인 이야기만 돌아왔기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계 관계자 B 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업계 사람들의 반응이 “반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피해 배우 A 씨에 대해 ‘왜 이제 와서 난리냐’는 사람들도 있고, 김 감독에 대해서는 ‘터질 줄 알았다, 오히려 늦게 터진 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전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우리들도 다 참는데 왜 모난 돌처럼 구느냐’는 생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쪽(연극·영화계)은 연출과 감독이 절대적인 갑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참는 것이 당연한 것, 더 나아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일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C 씨는 “연극판, 영화판에 발 들이민 사람들 가운데 모욕적인 발언이나 폭행, 성 관련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며 “이쪽 사람들은 지금 하는 일을 접고 다른 분야의 일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어쨌든 이 판에서 뼈를 묻어야 되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이것 때문에 내 진로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게 된다”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연극·영화계, 특히 영화계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SNS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계 성폭력 문제’ 공론화에 있어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피해 사실들이 SNS를 통해 공개되긴 했지만 대부분 익명으로 증언하는 데 그쳤고, 여성단체나 연극·영화계 전문 미디어가 기획으로 다룬 보도 외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문학계나 기타 예술계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이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리고,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대상이 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영화 <뫼비우스> 포스터
연극·영화계 관계자들은 “이 바닥이 정말 좁다. 폭로하려면 이 바닥에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다들 가해자인 누군가를 정확히 지목해 폭로하지 못하고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소극적인 태도를 해명했다.
이번 사건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대 지지를 받고 공론화된 것에 대해서는 “사건이 충격적이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김기덕’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선 관계자 B 씨는 “김기덕이 아니라 그냥 독립영화 감독 아무개 씨의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됐겠나”라며 “사실 사건 자체는 이 쪽 판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일상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단순하고, 원래부터도 알음알음 다 알려진 이야기라서 종사자들 가운데는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더욱 크게 공론화돼 현장에서 관행처럼 묵인된 배우나 제작진들에 대한 폭행, 모욕, 성 문제 등이 자정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김 감독의 사건이 기소 의견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우려도 따른다. 상대는 여배우 한 명이고 김 감독 측은 본인은 물론, 촬영 현장에 있던 김기덕필름 관계자들이 증언할 건데 이들이 과연 여배우 측이 주장하는 사실 그대로를 진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뫼비우스>를 촬영한 김기덕필름 관계자들은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SNS에서 “촬영 현장에는 (A 씨가 언급한) 문제가 없었다” “우리 귀에는 안 들린 폭언이 A 씨에게만 들렸나, 우리 스태프들은 폭행 방조자인가”라며 김 감독을 옹호해 앞으로의 진실공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7년 8월 3일 <폭행 혐의 피소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도대체 무슨 영화길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9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