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궁동 2인조 ‘현직 경찰 강도 사건’ 현장검증 장면.
1991년 11월 8일 공무원사칭 혐의로 부산 사하경찰서에 임의동행한 엄궁동 2인조는, 사흘 뒤인 11월 11일 부산 중부경찰서로 향한다. 조사 과정에서 특별히 경찰서를 옮길 상황은 없었다. 당시 경찰은 어떤 사유로 이동하는지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같은날 오후 2시, 중부경찰서 소속 한 아무개 순경이 두 남자를 찾아와 갑자기 고함을 쳤다. 영문을 몰라 아무 말도 못하는 이들에게 순경은 “이놈들에게 강도를 당했다”며 “너 나 알지”라고 윽박질렀다. 순경은 1989년 12월 새벽,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 강변도로에 세워 놓은 자신의 차량 안에서 데이트를 하다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두 남자가 검거되기 2년 전,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 발생(1990년) 1년 전의 일이다.
엄궁동 2인조 수사기록을 보면 자백 진술 외에 직접 증거가 단 하나도 없던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과 같이, 앞서의 현직 경찰을 상대로 벌인 강도 사건 역시 별다른 증거가 없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피해를 주장한 순경의 ‘진술’과 두 남자의 ‘자백’을 주요 증거로 특수강도‧감금 혐의를 추가해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앞서의 순경의 진술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된다. 그동안 <일요신문> 취재와 박준영 변호사, 전직 경찰과 현직 프로파일러, 법의학 교수 등의 의견을 토대로 조작의 정황이 광범위하게 드러난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과 비슷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실제 발생하지 않은 사건으로 보인다. 진술이 사실과 다르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트렁크 감금 당해 맨 손으로 탈출했다”
“트렁크에 손이 묶인 채로 갇혔는데 어떻게 탈출 할 수 있었나요.”(검사)
“손목에 힘을 주어 일부러 느슨하게 만들었다가 트렁크에 갇혔을 때 계속 손을 비틀어 풀고 트렁크 시정장치를 손으로 더듬어 찾아 힘껏 쳤습니다. 문이 열려 나오니까 범인들이 순간 바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강도 피해를 주장한 순경)
앞서의 순경이 1991년 12월 검찰수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엄궁동 2인조가 ‘카데이트’를 하던 순경을 밖으로 끌어내 양 손을 묶은 뒤 트렁크에 감금했는데, 갇힌 채로 잠금장치를 손으로 힘껏 쳐서 탈출했다는 취지다.
그런데 엄궁동 2인조 사건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특히 이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당시 생산된 자동차의 트렁크 내부에서 맨 손으로 탈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실제로 앞서의 순경이 1989년 12월 범행 당시 갇혔다고 주장한 차량은 현재는 단종 된 ‘대우 르망’이다. 이 차량에는 최근 생산되는 모든 차량에 의무 설치되는 ‘트렁크 비상탈출장치’가 없다.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트렁크 내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 장치는 2002년 9월 23일 건설교통부(현 국토부)가 “납치 사건의 경우 자동차 트렁크에 피해자를 감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동차 트렁크 비상탈출장치 의무설치를 추진한다”고 밝힌 뒤, 2003년부터 설치 됐다.
26년 전 당시 현직 경찰이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단종된 르망을 찾아 직접 재연실험을 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1980년~90년 대 생산된 차량에서 ‘트렁크 맨 손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르망 등 당시 생산된 차량들은 시동을 걸거나 트렁크를 열기 위해선 열쇠를 꽂아 돌려야 했다”며 “트렁크의 경우 열쇠로 돌리면 락로드라는 장치(사진)가 움직여 잠금이 풀리는 구조다. 내부에서 트렁크를 열려면 락로드 장치에 손가락을 넣어 철로 된 얇은 막대기를 위 아래로 여러 번 조작해 잠금장치를 풀어야한다. 힘껏 치거나 두드려서 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시 차량은 트렁크 자체가 워낙 협소해 성인이 들어가면 몸을 돌리는 것도 쉽지 않고 손이나 발이 힘을 주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 르망 트렁크에 설치된 락로드 장치. 사진=문상현 기자
김 교수의 설명은 락로드 장치를 조작해 실제로 탈출한 사건과 일치한다. 2000년 5월, 당시 인천부평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유 아무개 의경이 근무 중 차량절도범에게 납치돼 트렁크에 2시간 30분 가량 감금된 사건이 발생했다. 유 의경은 탈출 과정 진술에서 “트렁크 열쇠고리 부위를 살펴보니 손가락을 넣을 만한 틈이 보였다. 뭔가 걸리는 것을 ‘잡아당기니’ 트렁크가 열렸다”고 말했다.
# <일요신문> 재연실험 ‘트렁크 탈출 불가능 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4월, 단종 된 르망 총 3대를 찾아 앞서의 순경의 진술을 토대로 재연실험을 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영화‧드라마 촬영 소품 보관 창고에 보관돼 있던 차량들이다. 1989년에 생산된 르망 한 대, 90년에 생산된 르망 두 대로, 촬영 업체가 개인 소유자에게서 인수한 차량들이다. 모두 정상 운행이 가능했다.
기자가 직접 트렁크 내부에 들어가 본 결과, 대부분 앞서의 김 교수의 설명과 일치했다. 기자의 신장은 174cm, 몸무게는 64kg다. 공간이 협소해 머리와 팔, 무릎을 모두 구부려야만 내부에 몸 전체를 눕힐 수 있었고, 트렁크를 닫을 수 있었다. 끈으로 양 손을 느슨하게 묶은 채로 들어갔지만,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힘을 주기 어려웠다.
앞서의 ‘트렁크 비상탈출 장치’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트렁크 외부 잠금장치와 연결된 ‘락로드’ 장치뿐이었다. 묶인 손을 풀고 다시 내부에 들어갔다. 트렁크 내부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손을 더듬거리며 장치를 찾아야했다. 동작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락로드 장치를 주먹과 손바닥 등으로 가능한 힘껏 여러 번 내리쳤다. 그러나 트렁크 잠금장치는 열리지 않았다. 앞서의 순경의 진술대로는 탈출이 불가능했다. 지난 7월 JTBC <스포트라이트> 제작진도 동일한 방식으로 재연실험을 했지만, 탈출에는 실패했다.
26년 전 당시 현직 경찰이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단종된 르망을 찾아 직접 재연실험을 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 진술 거짓 정황 곳곳에서 발견돼
강도 피해를 주장한 순경의 진술의 허점은 또 있다. 수사기록을 보면, 순경은 카데이트를 했던 차량이자 감금당했던 피해차량은 다른 사람의 소유고, 차종은 르망이라고 진술했다. 기록에도 차량의 번호와 차종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박준영 변호사가 차량번호를 토대로 확인한 결과, 차량은 ‘르망’이 아닌 ‘현대 스텔라’였다. 경찰‧검찰의 피해자 진술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운전했던 차량의 종류를 다르게 설명했으며, 수사 경찰과 검사는 차량 번호와 차종까지 기록에 명시하면서도 확인 절차도 거지치 않았다는 얘기다.
엄궁동 2인조 수사기록에는 차량번호와 함께 차종이 ‘르망’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차량번호로 확인한 결과 차종은 ‘현대 스텔라’였다.
앞서의 르망 재연실험을 한 곳에서 1989년, 90년에 생산된 스텔라로 동일하게 트렁크 탈출 재연실험을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앞서의 순경은 지난 4월 8일 박준영 변호사와 만나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여전히 “피해차량은 르망이었고, 맨 손으로 트렁크 잠금장치를 힘껏 두드려 탈출했다”고 말했다.
현대 스텔라. 앞서의 르망과 동일한 방식으로 탈출 재연실험을 해봤지만 실패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또한 앞서의 순경은 강도 피해를 당했지만, 신고나 수사는 하지 않은 정황도 나온다. 엄궁동 2인조 수사기록을 보면, 그는 경찰 진술에서는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법정에서는 “부산 신평파출소 아는 경찰관에게 구두신고를 했고, 엄궁동 2인조가 검거 되면서 수사본부에 직접 메모 형식으로 신고했다”고 증언하면서 말을 바꿨다. 그런데 수사기록에는 ‘신평파출소 아는 경찰관’의 인적사항은 없다. 수사본부에 직접 신고 당시 메모를 건네준 형사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에 수사기록 가운데 작성자, 작성일자, 작성기관이 명시되지 않은 ‘낙동강변로 발생범행분석’을 보면, 앞서의 순경 사건 범행일자도 각각 다르다. 이 문서에는 범행 일자가 ‘1989년 12월 10일’이지만 검찰 공소장에는 ‘1989년 12월 초’로 기재돼 있고, 앞서의 순경의 검찰 진술 기록에는 범행일자가 ‘1989년 12월 5일’로 명시돼 있다.
이러한 ‘짜맞추기식’ 진술은 범행 장소에서도 나온다. 순경은 최초 범행 장소를 ‘을숙도 강변도로’라고 했지만 이후 기록에는 별다른 수정 절차나 진술 번복 없이 ‘신평동 앞 강변도로’로 기재된다. 이 장소는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 인근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순경의 증언은 엄궁동 2인조 사건의 유죄 증거로 사용됐다”며 “위증이 증명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위증에 대한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게 되면,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에 따라 재심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문상현 비즈한국 기자 moon@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