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초 친이 핵심 인사가 친박 실세 정치인에 자료일체 넘겨”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8월 3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알파(α)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재직하고 있던 시기다. 2009년 5월 9개 팀이었던 것이 점차 늘어나 대선이 치러지던 2012년엔 30개 팀이 활동했다. 구성원 대부분이 별도 직업을 가진 예비역 군인·회사원·주부·학생·자영업자 등 보수·친여 성향의 민간인이었다. 국정원은 이들의 인건비로 한 달에 2억 5000만 원에서 3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댓글 작성을 위해 사이버 팀을 운용했다는 사실은 2013년 검찰 수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당시엔 심리전단 사이버팀 4개가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남재준 전 원장도 댓글사건과 관련해 2013년 4월 감찰을 실시했고, 11월 ‘개인 일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드러난 30개 팀이 2013년 발견된 4개 팀에 속하는 소규모 팀인지, 아니면 별도의 26개가 더 존재했던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어찌됐건, 그동안 드러난 것보다는 더 많은 조직과 인원의 댓글부대가 존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댓글부대의 구체적인 역할, 여기에 지급된 예산 내역 등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때 항명 파동 등 홍역을 치러야 했던 검찰도 국정원 TF가 고발하는 대로 전면 재수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원세훈 전 원장 파기환송심에 대한 공소유지를 맡은 공판팀은 8월 8일 관련 자료의 협조를 의뢰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2015년 7월 16일 대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사건을 파기 환송했고, 오는 8월 30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국정원 TF 조사와 검찰 수사 종착지는 댓글부대 실체에 대해 과연 어디까지 보고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박범계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정도의 기간과, 이 정도의 규모와, 이 정도의 기간 조직이 총출동됐다면, MB정부는 정권차원에서 정권 임기 거의 대부분을 여론조작에 몰두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면서 “여기에 MB가 관여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제는 MB 스스로가 여기에 지시하지 않았고 관여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이계 실세였지만 이명박 정권 초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던 정두언 전 의원도 한 라디오에 출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원 전 원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고를 안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전 대통령 이름이 거론되자 친이계는 뒤숭숭한 모습이다. 한 친이계 의원은 몇몇 기자들에게 “정치 보복의 결정판이다. 문 대통령이 지지율에 취했다. 잘 못 건드리면 부메랑을 맞을 것이다. 절대 당하고만은 있지 않겠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친박 진영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2009~2012년에 만들어지고 활동한 댓글부대지만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그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댓글부대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는 의혹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 댓글부대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역할을 했는지, 또 청와대 등 ‘윗선’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 등은 향후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MB 정부 때 벌어진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도 수혜를 입었다. 차라리 2013년 수사 때 확실히 털고 갔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증언들을 접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인수위가 들어선 2013년 1월경 핵심 친이계였던 한 청와대 전직 인사가 친박 실세 정치인에게 관련 내용을 인수인계해줬다는 얘기였다. 그 청와대 인사는 국정원 최고위급 전직 간부로부터 자료 일체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그 청와대 전직 인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만, 또 다른 친이계 실세였던 한 전직 의원은 “국정원 댓글부대 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자체적으로 확인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대부분 자료를 건네줬다고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이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친박 전직 의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선 때 댓글이 문제가 됐기 때문에 MB 정부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정치인에게 파일을 넘겨줬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이 MB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긴 했지만 이 문제는 우리로서도 껄끄러웠기 때문에 잘 넘어간 것 같다. 터지면 정권 초반 국정운영에 치명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는지에 대해서 앞서의 전직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 지시 또는 보고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서도 “(인수인계는) 극비리에 진행됐던 일이다. 댓글부대 자체도 국정원 내에서 소수의 인원만 알고 있던 사안이다. 과연 대통령도 몰랐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도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박근혜 정부는 MB 실세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사정 작업을 벌였다. 원세훈 전 원장은 대표적인 친이계다. 댓글부대가 만약 MB 정권에만 국한된 것이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굳이 감추려 했거나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박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이는 국정원 댓글 사건 과정에서 나타난 박근혜 정권 핵심부의 스탠스를 떠올려보면 납득이 간다. 당시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중도하차한 것은 정권 차원의 ‘찍어내기’라는 게 정설로 통한다.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는 수사 외압 폭로와 항명 파동 후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윤 검사뿐 아니라 수사팀에 참여했던 검사들 대부분이 한직을 맴돌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우리도 (인수인계가 이뤄졌다는 것은) 비슷한 첩보를 입수했었다. 그러나 국정원 압수수색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입증을 하지 못했다. 검찰총장을 날리면서까지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것은 그만큼 박근혜 정부 아킬레스건이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윤석열 사단 댓글수사, MB 넘어 박근혜 겨눌까 8월 10일 발표된 검찰 인사의 특징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친정체제 구축으로 요약된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때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다 좌천된 윤 지검장은 지난해 ‘박영수 특검’에 합류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고 이번 인사에서 ‘윤석열 사단’이 대거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발탁됐다. 윤 지검장 산하 1·2·3차장엔 윤대진·박찬호·한동훈 검사가 임명됐다. 셋 다 내로라하는 특수통으로 윤 지검장과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윤’으로 불리는 윤대진 1차장은 ‘대윤’ 윤 지검장과 특히 가깝다. 3차장이 지휘하는 특수부 4개 부서 중 신자용 특1부장·양석조 특3부장·김창진 특4부장은 윤 지검장과 함께 박영수 특검에 몸담았던 검사들이다. 박영수 특검 라인과 함께 급부상한 윤 지검장 인맥은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이다. 이들 역시 이번 인사에서 대거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했다. 진재선 공안2부장, 김성훈 공공형사수사부장, 이복현 중앙지검 부부장 등이 윤 지검장과 손발을 맞췄던 검사들이다.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변호사는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 근무 중이다. 이처럼 윤 지검장이 자기 사람들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모은 것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여러 설들이 무성하다. 국정원 댓글부대에 화력이 총동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그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대상일 뿐 아니라 윤 지검장으로서도 잊기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금 주요 수사 파트에 포진해 있는 검사들 면면을 살펴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귀띔했다. 국정원 TF 발표 후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란 얘기가 회자됐다. 그러나 검찰 내에서는 ‘윤석열호’가 MB를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종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또 다른 중앙지검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부대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가 왜 그렇게 수사를 막으려 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동욱 전 총장 찍어내기도 마찬가지다. 댓글부대가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면서 “이번엔 윤 지검장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