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추출 불구…수사는 20년째 제자리
존버네이 램지
그러다 검시 결과 아이의 위장에서 발견된 파인애플에 주목했다. 사건 당시 식탁엔 파인애플이 있었는데, 그것을 먹은 듯했다. 경찰의 추리는 다음과 같았다. 세 살 위 오빠 버크가 먹으려 했던 파인애플을 존네버이가 빼앗아 먹었고, 화를 내는 오빠를 피해 지하실 와인 창고로 도망갔다는 것. 이때 쫓아온 오빠가 뭔가로 동생을 내리쳐 즉사했고,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아이의 부모는 목 졸라 죽인 걸로 꾸몄다는 것. 협박 편지는 아이의 엄마가 흘려 쓴 것으로, 필적 감정 결과 알파벳 A의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반면 검사는 외부 침입설을 주장했다. 검찰 측 수사관 루 스미트는 지하실의 부서진 창으로 침입한 범인이 전기 충격기로 아이를 기절시킨 후 지하 창고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램지 가족이 살던 보울더라는 도시엔 사건이 일어나기 전 1개월 동안 100건 이상의 절도 사건이 일어난 우범 지역이었다. 게다가 반경 3km엔 18명의 성 범죄자가 살고 있었다. 수많은 콘테스트를 통해 인형처럼 예쁜 얼굴이 알려지면서 변태적인 소아성애자들을 자극했을 것이며, 그들 중 한 명이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가설이었다.
몇몇 용의자가 등장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 복장으로 각 가정을 방문했던 빌 맥레이놀즈, 과거 가정부였던 린다 호프먼-퓨, 아이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자살한 이웃 남자인 마이클 헬고스…. 하지만 범인은 찾지 못했다. 게리 하워드 올리바라는 용의자가 사건 발생 20년 만인 2016년에 체포되었지만 역시 범인은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1년 만에 용의자는 160명으로 늘어났지만 그럴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 지역 검사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수사의 국면이 열렸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다 사건 발생 7년 만인 2003년 DNA가 화두로 떠올랐다. 2003년, 아이가 입고 있던 속옷에서 누군가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일단 FBI의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엔 없었다. 용의자 160명의 DNA를 모두 추출해 대조했지만 그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DNA가 중요한 단서로 떠오르면서, 가족에 씌워졌던 혐의는 자연스레 벗겨졌다. 이에 램지의 부모는 자신들을 범인처럼 몰고 갔던 수많은 언론사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날렸다. 안타까운 건 엄마인 팻시는 딸을 잃은 후 마음고생 속에서 2006년 50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존버네이 램지 묘지
그렇다면 존버네이 램지의 죽음은, 영원히 미결 사건으로 남을 것인가? 그런데 20년이 지난 2016년, DNA 샘플에 대한 새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램지의 속옷과 내복에 묻은 DNA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이상의 DNA가 섞인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 결과 기존의 DNA 대조는 모두 무의미해졌고 다시 가족에 대한 혐의가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죽은 소녀의 오빠인 버크가 <투데이 쇼>에 출연해 당시 일을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보여,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억측을 낳았고 가족이 죽였다는 이론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2016년 방송된 <존버네이 살인사건: 밝혀진 진실>이라는 TV 다큐멘터리에선 신원을 알 수 없는 어떤 남자가 범인이며 그 근거는 DNA 분석 결과이고, 아이를 성추행한 후에 살해했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아이의 몸을 포함에 그 어떤 곳에서도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1996년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존버네이 램지 사건은 미결 사건이 아니라 아직도 수사 중인 사건이다. 침입자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가족 내에서 일어난 일인가. 진실은 알 수 없다. 한편 최근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램지가 고용한 사립탐정 올리 그레이는 램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한 26세의 이웃 남자 마이클 헬고스가 범인이었다고 주장했다. 2006년에는 아이가 죽은 지 10년이 되었을 때 태국 방콕에서 마약 소지로 체포된 한 남자는 자신이 존버네이의 살인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41세의 초등학교 교사인 존 마크 카는 자신이 마약을 한 후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의 주장과 사건 사이엔 그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