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지침 없어 현장 혼란…창조경제 때 정책과 엇박자
그래픽=이세윤 디자이너
은행권 불만은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발표와 동시에 터졌다. 부동산 시장은 물론 은행창구 등 현장에서도 혼란이 가중된 까닭에서다. 금융당국이 대책 발표 열흘이 지난 8월 13일 뒤늦게 세부지침을 시중은행에 배포했지만 급박하게 발표된 정책인 만큼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은행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은 대책 발표 직후 금융당국이 우왕좌왕하면서부터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일 임시 금융위원회를 열고 “(은행) 각 창구에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 교육, 전산시스템 구축 등 사전준비에 만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지만 혼란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대출규제 적용 시점과 내용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설명도 미흡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별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하루 만에 급히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책 발표 후 한동안 각 지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직원들이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담해야만 했다”며 “고객마다 상담내용이 다른데,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 고객도 많았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새 지침이 최근 내려오면서 혼란은 일부 해결되겠지만, 새 감독규정이 본격 적용되는 시점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금융당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은행권의 불만은 미리 예고됐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익을 공개하면서부터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은행들의 순익은 4조 6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5%(3조 4000억 원) 늘었다.
문제는 ‘수익의 질’이다. 시중은행이 벌어들인 순익의 80%가 가계대출 등 이자수익 확대로 크게 늘어서다. 국내 4대 은행 가운데 1·2위 규모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이자로만 각 2조 5850억 원과 2조 3814억 원을 벌어들였다. 두 은행 모두 지난해 상반기보다 이자로 번 돈이 10% 이상 증가했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증가폭은 낮았지만 2조 원이 넘는 이자이익을 올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7월 26일 취임 직후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이를 크게 질타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혁신 중소기업 같은 생산적 분야보다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구입용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쏠림현상이 매우 심화된 측면이 있다”며 “이대로 두고 보는 게 금융당국의 역할에 맞는지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과 담보대출 위주의 안정적인 영업에 안주하고 있어, 혁신기업이나 신산업 분야에는 자금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최 위원장 비판의 골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이에 대해 은행권 일각에선 “정부가 은행권에만 책임을 전가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앞서와 같은 ‘영업’을 부추긴 것은 사실상 정부가 아니냐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일명 ‘초이노믹스’로 불리던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론을 앞세워 가계대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는 항변도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과 통화량을 확대해 ‘빚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놓고 이에 발을 맞춘 은행을 뒤늦게 비판하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앞선 정부들의 ‘녹색금융’, ‘창조금융’에 이은 또 다른 ‘코드금융’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이번 8·2 부동산 대책으로 자연스럽게 은행 수익의 축은 가계대출에서 중소기업 여신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밝힌 이번 정부의 ‘생산적 금융’에는 은행권이 창업과 일자리 확대를 지원하는 혈맥 구실을 하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특히 일자리 부문에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다.
그동안 은행권은 영업점 통·폐합과 함께 인력을 축소해왔다. 온라인과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인력 충원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적폐 청산’ 앞에 두며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자, 올해 채용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력채용은 점포 전략과 경영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는 사항”이라면서 “은행마다 채용인원을 확대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채용 확대는 은행권의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용인원은 늘렸지만, 대규모 인력감축 과정에서 나온 퇴직자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라는 얘기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채용인원을 400명으로 확정했다. 상반기 채용인원 200명을 더하면 지난해 채용규모보다 2배가량 많다. 동시에 우리은행은 전체 임직원 15분의 1에 해당하는 1000여 명 규모의 희망퇴직 신청도 받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 신청 대상 대부분은 후선업무에 종사하게 된다”며 “신입행원 채용, 본부부서 직원들의 현장 배치 등을 통해 고객접점에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상현 비즈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