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널래스카섬 600여 마리 서식…마을 한복판 어디 든 둥지 틀어
[일요신문]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독수리는 특히 위풍당당한 풍채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새다. 날카로운 눈매와 넓게 펼친 날개를 보면 과연 ‘하늘의 제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지만 생전에 이 흰머리독수리를 두 눈으로 직접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식지가 워낙 한정돼 있기 때문이며, 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웬만해선 보기 힘든 흰머리독수리를 마치 비둘기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알래스카주 어널래스카섬이다.
어널래스카섬의 인구는 약 4700명. 하지만 이 마을 주민과 함께 살고 있는 흰머리독수리의 개체수는 무려 600여 마리다. 때문에 이 섬에서는 어딜 가나 흰머리독수리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조와 함께 지낸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는 독수리들의 습성 때문에 걸핏하면 공격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수리들의 둥지 근처를 지나갈 때면 더욱 그렇다. 독수리들의 둥지는 보통 나무 꼭대기에 있지만 문제는 어널래스카섬에는 나무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때문에 흰머리독수리들은 마을 한복판이나 사람이 만든 구조물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수리 둥지 근처를 지나가다 변을 당하곤 한다.
그렇다면 왜 이 섬에는 이렇게 흰머리독수리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걸까. 바로 먹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널래스카섬이 전 세계 최대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더치하버 인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선이 항구에 정박하면 흰머리독수리들은 어부들이 쫓아내기도 전에 물고기들을 낚아채간다. 또한 흰머리독수리들은 인근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면서 먹을 만한 것들을 모조리 찾아가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