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 치워줄게, 재결합 합시다’ 바른정당 향해 찡끗~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신임 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홍 대표는 보수의 성지이자 박 전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처음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시사했다. 8월 16일 대구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참가한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막아 달라”는 한 시민의 요구에 “정치는 자기가 잘못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아니면 무책임한 것”이라면서 “당의 중지를 모을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석방에 힘써 달라”는 주문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잘못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법정에서 ‘정치적으로 책임을 내가 지겠다. 내 새끼들을 풀어 달라’며 처음부터 정치적 돌파구를 찾았다면 이렇게 참담하게 압박당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며 탈당 검토를 밝히자 친박 의원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도 이러한 상황에 불쾌감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출당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다면 그나마 우리를 지지하던 15%마저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 의원도 “출당에 반대했다가 구설에 오를까 조용히 하고는 있지만 홍 대표 발언에 화를 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대선 때는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더니 이제 와서 버린다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 이유라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홍 대표부터 먼저 당을 나가는 게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절차가 끝난 후 출당 논의를 하자는 입장이다. 친박계인 김태흠 한국당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에서 “이미 당헌·당규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될 때 당원권 정지를 시켰다. 탈당 권유나 출당 등의 징계는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될 경우에 할 수 있게 돼 있으니 지금은 논의 시점이 아니다. 형 확정 이후에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 대표는 “3심 판결 확정까지 기다리자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다 망하고 난 뒤에 같이 망하자는 말과 똑같다”면서 친박계를 정조준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도 8월 23일 “당대표가 토크콘서트에서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언급했고, 혁신위의 입장을 기대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상 홍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홍 대표는 대선 때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출당 논의가 당 안팎에서 나오자 홍 대표는 “선거에 유리하려고 이미 정치적 사체가 된 박 전 대통령을 다시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랬던 홍 대표가 이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밀어붙이고 있다. 친박 진영에서 괘씸해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출당’이 홍 대표 리더십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들린다.
우선 전당대회 승리 후 친정체제 구축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홍 대표가 ‘자기 정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당 입지가 공고하지 못했다. 그래서 친박과 손을 잡았고, 출당에 반대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홍 대표는 전대에 승리하며 빠르게 당을 장악했다. 이제 자유한국당은 ‘친홍(친홍준표)’계가 주류다. 더 이상 친박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홍 대표가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 출당 얘기를 처음 꺼낸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친홍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이제는 박 전 대통령, 그리고 친박과 결별하겠다는 의지다. 이들이 없어도 보수 지지층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살펴봐도 박 전 대통령 존재가 걸림돌만 될 뿐, 당과 홍 대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출당 카드는 내년 지방선거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에 남아 있는 한 외연 확장이 어렵다는 판단을 홍 대표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는 물론 지역 정가에서 자유한국당이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앞서의 친홍계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하지 못하면 홍 대표의 차기 도전에 먹구름이 낀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좋은 후보자를 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홍 대표는 박근혜당이라는 색채를 지워야 인재들이 몰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전제 조건이 박근혜 출당”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것도 ‘박근혜 출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정치 전문가들이 많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연대를 추진할 것으로 점친다. 안 대표가 그리는 정계개편 경우의 수엔 자유한국당은 없다. 만약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손을 잡고 ‘캐스팅보트’ 행사에 나선다면 자유한국당 입지는 좁아든다.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고립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를 사전에 저지하기 위해 홍 대표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특히 다분히 바른정당을 의식한 스탠스로 추정된다. 바른정당 의원들 중에선 박 전 대통령 출당이 전제되면 자유한국당과 합쳐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도 8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소위 친박(친박근혜) 8적이라 불리는 분들의 책임 있는 모습 등이 한국당 혁신 과정에서 진행되면 통합논의는 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원래 우리는 한 뿌리 아니냐. 국민의당보다는 자유한국당과 합당하는 게 진정한 보수통합의 길이라고 본다. 단,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박근혜 때문에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의 또 다른 의원도 “(박근혜 출당은) 홍 대표가 바른정당에게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합당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