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AB “축구경기시간 90분서 60분으로 단축” 제안…확인결과 유럽 상위권팀 경기는 60분 남짓, 한국-이란전은 45분에 불과 “기량·체력·정신력 차이”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제안한 경기시간 60분 단축안이 시행되면 이제 그라운드에서 침대축구가 근절될 수 있을까요. 사진=MBC 중계화면 캡처
침대축구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조그만 몸싸움에도 부상을 당한 것처럼 과도하게 쓰러져 일어나지 않으며 경기를 지연시키는 비신사적인 플레이 행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침대축구를 일종의 전술이라고 생각, 이를 시전하는 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던 중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지난 6월 ‘플레이 페어(Play Fair)’ 제안서를 통해 파격적인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동안 전·후반 45분씩 90분 동안 진행된 축구 경기를 30분씩 총 60분으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지난 6월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플레이 페어(Play Fair)’ 제안서를 통해 전·후반 45분씩 90분 동안 진행된 축구 경기를 30분씩 총 60분으로 줄이자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사진=플레이 페어 공식 홈페이지 캡처
IFAB 측은 현재 경기 시간은 90분이지만 선수 교체, 터치아웃, 반칙 상황 등을 뺀 실제 경기시간(Actual Playing Time)은 60분 남짓이라는 통계에 따른 판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기존의 시간 체크방식과 차이점을 뒀습니다. 경기시간을 60분으로 줄이는 대신 기존에 그냥 시간이 흘러가던 페널티킥을 차는 과정, 득점 후 다시 킥오프가 이뤄질 때까지의 과정, 부상자가 발생해 치료를 받고 다시 들어갈 때까지 과정, 주심이 경고나 퇴장을 지시한 후 다시 플레이할 때까지의 과정, 교체 후 다시 시작하는 과정, 프리킥 후 심판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 등에서 시간을 멈추자는 것입니다.
이 개정안이 통과돼 실제 축구 룰이 변경된다면, 부상을 핑계로 경기를 지연시키는 침대축구가 근절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황희찬이 이란 선수와 공을 두고 경합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이런 혁신적인 룰 개정안을 두고 논의하기 이전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앞서 IFAB의 설명대로 경기 전체 90분 중 실제 경기시간은 정말 60분 남짓밖에 안 되는 것일까요. 이에 <일요신문i> 기자가 직접 초시계를 들고 실제 경기시간을 체크해봤습니다. (참고로 뒤에 나올 경기들의 실제 플레이타임 오차범위는 ±30초입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경기는 지난 8월 28일(한국시각) 열린 2017-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과 아스널의 맞대결입니다. 리버풀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4대 0 대승을 가져간 경기입니다.
리버풀과 아스널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피르미누가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면서 경기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사진=리버풀 공식 페이스북
전·후반 각각 2골씩 총 4골이나 터지다보니, 골 셀레브레이션에 소요된 시간도 4번이나 있었습니다. 다만 선수의 부상으로 경기를 중단하고 치료를 진행한 상황이 전·후반 각각 1차례씩밖에 없어, 이로 인해 손실된 경기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기자가 체크해본 리버풀-아스널전의 실제 플레이시간은 전반전이 45분 중 33분 45초, 후반전은 27분 15초였습니다. 전·후반 합치면 61분이었던 것입니다. IFAB가 제시한 60분 남짓이라는 통계에 정확히 맞아 들어갔습니다.
이어 다음으로 볼 경기는 지난 8월 27일 열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입니다. 리오넬 메시의 2골에 힘입어 바르샤가 2대 0으로 승리했습니다.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알라베스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호르디 알바와 서로 격려를 하고 있다. 사진=FC바르셀로나 공식 페이스북
전반전은 실제 플레이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친 반칙으로 경기를 중단한 부상 치료가 2번이나 있었고, 그로 인해 양 팀 합쳐 옐로카드가 5장이나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르샤가 페널티킥을 얻어내, 이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메시의 실축으로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전에 31분 54초 동안 실제 경기가 이뤄졌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지속적인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 가져가 스로인이나 골킥, 반칙 등으로 인한 경기시간 소모가 적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후반전에 골이 두 골 터졌습니다. 그럼에도 경기는 전반과 비슷한 양상으로 펼쳐져 실제 플레이타임은 31분 23초를 기록했습니다. 전·후반 합계 실제 플레이타임은 63분 17초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경기시간은 통계와 같이 60분 남짓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독일의 분데스리가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지난 26일 베저슈타디온에서 열린 베르더 브레멘과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2라운드 경기입니다. 이날 뮌헨은 레반도프스키의 연속골에 힘입어 베르더 브레멘을 2대 0으로 격파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의 레반도프스키가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힐킥으로 골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바이에른 뮌헨 공식 페이스북
이날 경기도 앞서 바르셀로나와 알라베스 경기처럼, 원정팀인 뮌헨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며 시종일관 베르더 브레멘을 압박해 경기 지연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에 실제 경기시간은 전반 30분 57초, 후반 30분 53초, 총 61분 50초로 IFAB의 통계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이란의 경기는 실제 경기시간이 얼마나 나왔을까요.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는 골이 터지지 않아 0 대 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드리블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경기 전 우려와는 달리 이란 선수들은 마냥 그라운드에 드러눕는 침대축구를 시전하지 않아 시간 지연이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기가 오래 지연된 순간은 후반 50분 이란의 에자톨라히가 김민재의 머리를 고의적으로 밟는 반칙을 범해 레드카드를 받은 장면이었습니다. 에자톨라히의 퇴장과 김민재의 치료를 위해 경기가 4분 30초간 중단됐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날 경기는 실제 플레이타임이 평소보다 조금 길거라고 예측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체크해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습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한국과 이란의 경기 전반전의 실제 경기시간은 21분 31초에 불과했다.
전반전이 21분 31초, 후반전은 24분 28초였습니다. 전·후반 합쳐 총 45분 59초밖에 되지 않은 것입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경기시간 총 90분 중 절반은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기자가 확인한 경기 중 실제 경기시간이 가장 짧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축구 전문가는 기량의 차이와 체력, 정신력 등을 꼽았습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유럽과 아시아 축구는 기량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패스가 끊어지지 않고 유기적인 연결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팀들의 경기일수록 실제 경기시간은 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준희 위원은 “기량 차이에 더해 고려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은 체력과 의지다. 경기를 쉴 새 없이 소화하려면 강한 체력이 요구된다”며 “또한 경기가 중단됐을 때 빠르게 재개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력, 의지와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경기 도중 선수들이 파울을 얼마나 하느냐도 실제 경기시간을 좌우하는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는 앞서 본 유럽 정상급 클럽팀들의 경기들과 다르게 스로인이나 골킥 상황에서 준비시간을 훨씬 더 길게 가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 아시아 팀들의 경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이란전과 같은날 펼쳐진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도 전반 26분 30초, 후반 22분 17초 등 총 46분 47초로 실제 경기시간이 IFAB의 통계에 크게 밑돌았습니다.
그렇다면 경기시간을 60분으로 단축하는 룰 개정에 대해서는 축구 관계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준희 해설위원은 “경기시간 60분으로 줄이는 개정안 논의는 충분히 일리있다”며 “룰이 바뀐다면 침대축구는 자연히 예방되고, 선수들의 느슨한 플레이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추가시간을 몇 분 줘야 옳았느냐와 같은 논란도 없어지는 장점도 있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러한 룰 개정은 축구의 패러다임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이다. 현재의 많은 축구 전략·전술은 축구가 90분 동안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시간이 60분으로 줄어든다면, 축구 전술가들은 이 시간 안에 가장 유리한 전술이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따라서 보다 신중하게 실제 시험 적용을 거쳐서 논의돼야 한다. 테스트성 이벤트 대회를 통해 장·단점을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6일 자정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분요드코르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 우즈벡과의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공식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한편 한국 대표팀은 오는 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자력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데요.
대표팀이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60분이 넘는 실제 플레이타임을 펼쳐 축구팬들에게 재밌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길 기대해 봅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박스] ‘경기시간 60분 축소’제안한 IFAB는 어떤 기구 축구 종목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경기시간 60분으로 축소’ 제안을 한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어떤 곳일까요. IFAB는 규칙을 제정하고 수정하는 등 축구를 둘러싼 룰을 관장하는 기구입니다. 축구 종가인 연연방 네 국가(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축구협회의 대표와 국제축구연맹(FIFA) 대표 두 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최근 대회들에서 적용되고 있는 비디오 판독 레프리(VAR) 도입과 승부차기 방식(ABBA) 변경 등이 모두 IFAB가 고심 끝에 제안해 테스트를 거친 뒤 FIFA가 승인한 변경들입니다. 지난 7월에는 ‘한국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한국인 최초로 IFAB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