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바람떡, 박정희 부녀는 인절미 덕후…“전두환 정권 땐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역대 대통령들이 찾는 떡집으로 알려진 105년 전통 ‘낙원떡집’의 이광순 사장이 낙원떡집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일요신문] 추석엔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떡을 먹는다. 송편, 영양떡, 두텁떡, 바람떡 등 다양한 떡이 내뿜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떡집에 가장 많은 일거리가 쏟아지는 때는 추석이다.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낙원떡집’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떡을 판매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낙원떡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떡집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 고이뽀 씨가 원서동의 상궁 출신 파수댁에게 궁중 떡을 만드는 법을 배워 종로구 낙원시장에서 떡집을 차렸다. 이후 1950년경 고이뽀 씨의 셋째 딸인 김인동 씨(85)가 물려받은 뒤 김인동 씨의 맏딸 이광순 사장(65)이 낙원떡집을 3대째 운영하고 있다.
궁중떡을 만든 손맛 때문일까. 낙원떡집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약 60년간, 청와대 VIP들의 떡을 도맡았다. 9월 20일 <일요신문i>는 이광순 사장을 만나 역대 대통령들과 떡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일 명절을 앞두고 한 손님이 낙원떡집에 진열된 떡들을 살펴보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 생일은 3월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 생일은 12월 20일….”
이광순 사장은 역대 대통령들의 생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떡집 사장 중 습관처럼 대통령들의 생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이 사장은 “청와대라고 말을 잘 안 한다. 이쯤 되면 오겠거니 하는데 기가 막히게 날짜가 되면 생일떡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생일날이 다가오면 청와대에선 으레 사람들이 왔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바람떡’과 ‘인절미’를 좋아했다. 이 사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생일떡을 많이 맡겼다. 똑똑히 기억이 난다. 워낙 옛날 분이라서 상자에 바람떡하고 인절미를 얌전히 정리해서 가져갔다. 이 전 대통령 아들과 며느님이 자주 들렀다”고 회고했다.
바람떡은 멥쌀가루를 쪄서 친 다음 얇게 밀어 소를 넣고 반달모양으로 접어 만든 떡이다. 인절미는 불린 찹쌀을 밥처럼 쪄서 절구에 담고 떡메로 쳐서 모양을 만든 뒤 콩고물을 묻힌 떡이다. 겉이 화려하지 않지만 깔끔하게 먹기 좋다. ‘바람떡’과 ‘인절미’가 이 전 대통령의 ‘떡스타일’이었던 셈이다.
낙원떡집의 이광순 사장이 직접 떡들을 진열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낙원떡집 대표상품인 ‘인절미’를 자주 애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일 때마다 인절미를 해가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쑥인절미를 많이 좋아하셨는데 부녀 지간이라 서로 입맛이 닮았다. 어린이회관 쪽에서 왔는데 항상 같은 사람이 와서 떡을 사갔다.”
그렇다면 신군부 세력이 집권한 시절은 어땠을까. 전두환 정권 당시 추석 명절 때가 되면 청와대는 달동네였던 봉천동 등 저소득층에 떡을 돌리기 위해 1.5t 트럭 5~6대분의 떡을 낙원떡집에 주문을 넣었다.
이 사장은 흥미로운 얘기도 들려줬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엄혹한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고사떡을 많이 주문했단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떡을 가장 많이 주문했다. 세월이 워낙 좋은 때라, 남산하고 이문동 중앙정보부에서 고사를 잘 지냈다. 빨간 시루떡을 엄청 해갔다. 전두환 대통령이 시켰는지, 아랫사람들이 시켰는지 모르겠는데… 청와대에서도 고사를 곧잘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시루떡을 많이 샀다.”
붉은 팥을 넣어 만든 시루떡이 고사떡이다. 귀신이 붉은색을 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80년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중앙정보부 청사는 남산과 이문동에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이 떡을 주문할 때는 양복을 곱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런데 필요한 떡을 말한 뒤에 한마디도 안 하고 서 있었다. 구겨진 돈이 아니고 언제나 빳빳한 돈을 가져오고 새벽에 왔다. 어떤 때는 떡을 만들 때 검시관처럼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지켜서 있다가 가기도 했다.”
105년이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낙원떡집은 서울시에 의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고성준 기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청와대는 점차 일반에게 개방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다녀온 후 서울 시내 통반장을 청와대에 불러 설명회를 했을 당시에도 낙원떡집에서 떡을 맞췄다.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먹었던 떡은 ‘백설기’. 백설기는 말 그대로 멥쌀가루를 하얗게 쪄낸 떡이다. 이광순 사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생일은 9월 4일이다. 그분은 백설기를 너무 좋아하셨다. 대통령 퇴임 후에도 종종 백설기를 찾곤 하셨다”고 회상했다.
민주화의 거목,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어떤 떡을 먹었을까. 두 전직 대통령은 인절미를 즐겼다. 당시 청와대 식단엔 ‘인절미’가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인절미를 좋아하셔서 생일 때마다 상도동으로 가져갔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청와대 들어가시기 전에도 인절미를 주문한 일이 많았다. 떡을 들고 동교동으로 집들이를 갔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일화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약식과 인절미를 좋아했다. 약식은 찹쌀에 대추·밤·잣 등을 섞어 찐 다음 기름과 꿀·간장으로 버무려 만든 떡이다. 이광순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 의원을 했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대통령 되셔서 깜짝 놀랐다. 약식하고 인절미를 즐겨 드셨다”고 전했다.
이 사장은 노 전 대통령 취임식에 관한 비화를 전하며 “대통령 취임식 떡을 많이 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나서 난리가 났다. 쌀을 전부 준비해뒀는데… 떡을 쑤지 못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청와대는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노 전 대통령의 취임식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낙원떡집은 취임식 기념떡을 준비했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청와대가 주문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도 낙원떡집의 단골손님이었다. 이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은 찰시루떡을 좋아하더라. 김윤옥 여사는 영양떡을 즐겨 먹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일, 생일, 결혼기념일 날짜가 같다. 그날이면 청와대에서 떡을 해갔다”고 밝혔다.
이광순 사장이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무늬 상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기념해 맞춘 떡선물 상자다. 고성준 기자
“이런 봉황 무늬는 아무나 못 쓴다더라. 이런 상자를 만들고 싶어도 우리는 못 만든다. 청와대가 미리 상자를 맞춰서 원하는 양을 주문했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꼭 우리집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낙원떡집은 아직 인연이 없다고 한다. 이 사장은 “문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떡을 부탁한 적은 없다. 하지만 경희대 동문회에선 떡을 주문했다. 종류와 상관없이 골고루 떡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정·관계나 재계에도 단골손님은 많다.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에도 낙원떡집에서 ‘백설기’를 주문했다. 이 사장은 “김 전 총리도 단골이다. 생일 때마다 3단 떡 케이크를 맞춘다. 가을쯤에 전화가 오면 배달을 가는데 건강 때문에 설탕이 안 들어간 백설기를 원하신다”고 설명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인절미’와 ‘바람떡’을 찾았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의 생일은 물론 자녀 결혼식 때도 낙원떡집에서 떡을 맞췄다. 이인제 전 의원도 자주 찾아왔다고 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손자도 최근 낙원떡집을 들렀다. 이광순 사장은 “이 회장 손자도 왔었다. 처음엔 몰랐는데…점잖고 말끔하게 생겼었다. 선물용 떡을 사갔다”고 밝혔다.
변중석 여사(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인)는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 갈 때면 낙원떡집에서 떡을 챙겨 갔다. 이광순 사장은 “변중석 여사는 오실 때마다 차에 떡을 가득 실어 전국 사찰을 다니면서 돌렸다. 변 여사는 정말 단골 중의 단골이었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낙원떡집의 산역사 ‘칼과 돈통’…“외할머니의 칼인데 여전히 잘 들어” 칼로 떡을 써는 이광순 사장. 고성준 기자 낙원떡집은 1912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광순 사장의 외할머니 고이뽀 씨가 일제강점기 당시 창덕궁에 있던 궁인들에게 궁중떡 만드는 법을 배워 낙원동에서 떡을 팔기 시작한 것이 낙원떡집의 시작이다. 해방 이후 김인동 씨가 떡집을 물려받았지만 곧바로 한국전쟁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김 씨는 충남까지 내려간 피난길에서도 틈틈이 떡을 만들어 팔았다. 휴전 이후 다시 낙원동에 올라온 김 씨는 ‘낙원떡집’이란 간판을 달고 떡집 경영에 다시 나섰다. 전쟁 이후 낙원동에는 갈 곳 없는 서민들이 밀려들면서 설기·절편과 같은 기본 떡이 잘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 김 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김 씨의 딸 이광순 사장이 그때부터 낙원떡집을 잇고 있다. 이광순 사장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누가 시집을 가든 장가를 가든 주문이 없는 날이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1시까지 떡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했다. 50년 역사를 지닌 칼(아래) 정갈하게 썰린 떡. 고성준 기자 21일 오후 3시경 기자가 찾은 낙원떡집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이광순 사장은 가게 뒤쪽 싱크대 가서 귀한(?) 물건을 보여줬다. 불에 달군 쇠를 대장장이가 망치로 내려칠 때 생기는 검은 문양이 칼날을 따라 남아있는 칼이다. 이광순 사장은 “1950년대에 외할머니가 이름 있는 대장장이한테 부탁해 만든 칼인데 여전히 잘 든다”며 칼을 쥔 채 도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광순 사장이 도마 위에서 왼손으로 기다란 떡을 잡고 칼로 떡을 썰었다. 수십 년 된 칼이었지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칼날에 떡이 댕강댕강 잘려 나갔다. 이제는 아들 김승모 씨가 이 칼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이광순 사장은 “서울대 나온 아들이 떡집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처음에는 말렸지만 낙원떡집의 명성을 이어나가겠다는 아들의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돈통 사진. 고성준 기자 낙원떡집 입구 오른쪽 구석엔 낡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앞에 달린 자물쇠 표면엔 거무튀튀한 얼룩이 가득했다. 낙원떡집 점원들은 손님들이 지불한 지폐를 곧게 펴서 돈통에 넣었다. 이광순 사장은 “외할머니 때부터 쓰던 돈통이다. 정말 오래됐는데 여전히 쓰고 있다”고 밝혔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