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회장 “페이스메이커 작전 인정…메달만 따면 되는 거 아닌가”
전직 빙상협회 지도자 A 씨에 따르면 최근 스피드스케이팅에도 전명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예전 쇼트트랙처럼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발생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순수하게 속도만 측정하는 기록 경기였기 때문에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매스 스타트가 주요 국제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매스 스타트는 각 나라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2~3명이 총 16바퀴를 돌아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순위 경기다. 쇼트트랙 단체전과 비슷하다.
전명규 부회장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뒤 성적 부진 및 파벌 논란 등으로 사퇴한 지 3년 만인 지난 2월 1일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전직 지도자와 국가대표에 따르면 전 부회장은 빙상연맹 안의 거취와 상관 없이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특히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 교수로 재직하며 특정 선수를 학교로 불러 개인훈련을 시키고 감독 및 코치진에게 특정 선수를 밀어줄 수 있도록 물밑에서 지휘해 왔다고 알려졌다. A 씨는 “빙상연맹 모든 관계자가 전 부회장을 무서워한다.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선수들에게 공정한 훈련을 제공할 수 없고 제대로 된 훈련 체계가 자리 잡힐 수 없다”고 했다.
빙상연맹은 최근 특정 선수에게 ‘맞춤식’ 개인 훈련을 제공했다. 지난해 겨울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를 태릉선수촌에 입촌시키며 한 실업팀 소속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B 씨(23)를 훈련장에 부르기 시작했다. B 씨는 전명규 부회장의 한체대 직속 제자였다. 목적은 특정 선수 끌어주기였다. 끌어주기는 한 선수를 앞서 보낸 뒤 뒤에서 끌리는 선수가 체력 안배와 막판 스퍼트를 배울 수 있는 훈련법이다. 한 선수에게만 개인 훈련이 집중됐다.
이런 개인 훈련 특혜는 국제대회까지 계속됐다. 전명규 부회장이 임원으로 복귀한 지 8일 만인 지난 2월 9일 B 씨는 강릉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도 국가대표 선수단과 동행했다. <일요신문>은 B 씨와 국가대표 선수단이 함께 숙소까지 쓴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국가대표 전체에게 골고루 사용돼야 할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이 특정선수 개인 훈련 용도로 사용된 셈이었다. 전세계 선수들이 보는 가운데 이런 끌어주기 훈련이 포착되기도 했다.
스벤 크라머가 소속된 네덜란드의 한 스피드스케이팅팀 소셜 미디어에 오른 B 씨. 강릉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끌어주기는 계속됐다. 사진=네덜란드 빙상팀 제공
전명규 부회장은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백철기 감독이 요청해서 특정 선수 훈련에 도움을 주자고 한 일이다. 대표팀 운영은 지도자가 판단해서 결정할 사안이다. 그게 운영의 묘”라며 “맞춤식 개인 훈련을 받은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1등을 했다. 그럼 훈련이 잘 됐다는 소리다. 그런 훈련 방식을 우린 높이 평가한다. 크게 보면 특정 선수가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에 비해 월등하니까 맞춤 훈련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또한 누구든 빙상연맹에 요청하면 집중 훈련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특정 선수를 도와주거나 훈련시킨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방문한 한체대 빙상장 위에선 밀어주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선수들이 국가대표팀과 따로 떨어져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전 부회장의 배려였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단은 모두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 부회장은 “내가 허락해 선수들이 한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여름 국가대표팀 포함 여부와 전지훈련 참가 여부는 개인의 선택 문제다. 특정 선수들은 여름 국가대표에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따로 훈련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들 한체대 졸업생이다. 한체대 졸업생이 한체대에서 훈련하는 게 왜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국가대표가 전지훈련을 떠난 기간에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하고 있는 특혜 의혹 선수들
하지만 익명을 원한 전직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의 입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지원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 말 꺼내자마자 ‘건방지다’는 반응과 함께 싹이 잘려 버린다.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 받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부 선수 밀어주기는 한두 해 해온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축적돼서 이제는 특혜 받는 선수가 그걸 권리처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선수든 저 정도 지원 받는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문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의지를 평가하지도 않은 채 몇몇 선수만 편애를 받는다는 데 있다. 공정한 경쟁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같은 환경에서 붙으면 누가 이길지 대봐야 아는 법”이라고 했다.
밀어주기는 훈련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에서도 적용됐다. 경기에 앞서 ‘작전’부터 시작됐다. 국가대표 감독과 코치진은 각종 국제 대회 매스 스타트 경기에 앞서 전명규 부회장의 총애를 받는 특정 선수가 1등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작전을 짰다고 전해졌다. 1등을 돕는 선수들은 페이스 메이커로 나서 경기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다른 나라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달린 선수는 뒤에 따라오는 선수보다 공기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체력이 빠르게 방전될 수밖에 없다. 뒤에서 체력을 안배하던 특정 선수는 경기 막판 박차를 가해 결승점에 통과하는 식이다.
문제는 스피드스케이팅 매스 스타트에서 ‘팀 플레이’를 펼치는 작전은 금기시돼 있다는 점이다. 국제빙상연맹(ISU)은 “매스 스타트가 각 나라 당 2명만 출전하도록 제한하는 이유는 팀 플레이 방지 때문(The reason to allow only 2 Skaters in Speed Skating Mass start is to avoid team work)”이라는 공식 답변을 <일요신문>에 보내 왔다.
전명규 부회장은 페이스 메이커 사용은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전 부회장은 “아스타나·알마티와 지난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때 페이스 메이커를 사용해 특정 선수 위주 작전을 짠 건 맞다. 하지만 큰 대회는 모두가 1등 하도록 작전을 짠다”며 “사실 못하는 선수들은 밀어줘도 1등을 할 수 없다. 줘도 못 먹는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된다. 페이스 메이커를 시킨 선수들은 능력이 안 돼서 외국 선수와 경쟁할 실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게 맞냐 저게 맞냐는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니까 우선 메달을 따는 게 중요하다. 대표팀 지도자는 메달을 딸 아이디어만 내면 된다”고 덧붙였다.
빙상연맹은 몇몇 선수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국가대표 선발 방식을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도록 변경했다는 의혹에도 빠졌다. 동계 아시안게임 최초로 매스 스타트가 도입된 건 지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경기에서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는 선발전을 치른 뒤 뽑혔다.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 선발 방식은 조용히 바뀌었다. 선발전은 사라졌고 추천제로 바뀌어 버렸다. 장거리 1위를 우선선발하고 나머지 선수는 장거리 후순위 가운데 연맹의 추천을 받아야만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최근 특혜 의혹에 빠진 선수 가운데 하나는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선수였다. 또 다른 특혜 의혹 선수는 당시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했었다. 규정이 바뀐 뒤 둘은 줄곧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에 전명규 부회장은 “이번 국가대표 선발 규정은 백철기 감독의 요청으로 바뀐 것”이라며 자신의 개입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철기 감독이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맡은 건 2년밖에 되지 않았다.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 선발전이 사라진 건 백철기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인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 이후부터였다. 전 부회장은 이에 대해 “그건 그 전 감독이 요청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전명규 부회장은 “특정 선수를 응원할 순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응원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직 국가대표 선발전도 안 했는데 이런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사람들은 내가 빙상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추측이고 상상일 뿐이다. 각 종목마다 따로 지도자가 있는데 왜 내가 영향력을 미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청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의 짬짜미 의혹 관련 내사를 벌이기도 했다. 전명규 부회장은 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경찰이 조사를 벌였다. 한심한 경찰이다. 경찰 인력이 남아 돌아서 그런 조사를 벌이는 것 아니냐”며 경찰을 맹비난했다.
일각에서는 또 다시 입촌 거부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2005년 4월 10일 일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에 입소하지 않았다. 입촌을 거부한 한 선수는 “헤드 코치가 특정 선수를 편애한다. 편애하는 선수의 메달 획득을 도우려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런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입촌 거부 사태는 큰 파란을 일으켰다.
최근 대표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고 전해졌다. 최근 전명규 부회장과 빙상연맹이 특혜를 제공하며 밀어주고 있는 선수들은 동료 선수들의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밀어주기에 좀 더 적극적일 것을 주문하는 언론 인터뷰도 해 왔다고 드러났다.
빙상연맹은 대한체육회 소속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선수 선발 등의 관련 규정은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을 거쳐 챙기고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지원하는 종목에서 공정하지 못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마련됐거나 문제의 소지가 불거질 부분이 발견되면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훈민 jipchak@ilyo.co.kr
전직 빙상 관계자의 절규 “선택받은 선수 외엔 쓰다 버려져” <일요신문>은 10명에 가까운 전직 빙상 종목 지도자와 전직 국가대표를 반 년에 걸쳐 취재했다. 이들은 한입 모아 “쇼트트랙은 선수 대부분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따로 개입이 발생할 여지가 적어졌다. 쇼트트랙에서 발생했던 파벌 및 편애 문제가 이제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한 전직 국가대표 선수는 “밀어주는 선수만 밀어주고 다른 선수는 쓰다 버리는 꼴”이라며 “같은 국가대표면 최소한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하는데 편애가 너무 심하다 보니 운동 자체를 그만 두고 싶어하는 선수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떡잎부터 잘될 선수를 밀어주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애를 받는 선수가 두각을 보인 건 사실이었다”면서도 “하지만 경기력은 발전시킬수록 올라오는 거고 잠재력을 가진 선수는 훈련량과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데 다 막혀 버렸다”고 했다. 전직 지도자는 “전명규 부회장이 빙상연맹에 없다고 해서 힘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나름대로의 지도 철학을 가지고 선수들 훈련을 시키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며 “가능성을 가진 선수가 참 많은데 날개 한 번 펴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