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터적 성장론’ 변양균 라인서 ‘소득주도 성장론’ 장하성 라인으로 실권 이동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8월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소득주도성장론의 마침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찍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장 실장은 과거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전력이 있음에도 이번 정부의 실세로 급부상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제이(J)노믹스’의 J가 실제로는 ‘장하성’을 일컫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금융권에서는 장 실장과 관련 있는 인사들이 요직에 오르고 있다. 장 실장과 같은 고려대 출신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경기고 동문인 최흥식 금융감독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모두 ‘장하성 사단’으로 분류된다. 최근엔 한국거래소 이사장 공모에 장 실장과 인연이 있는 인사가 입후보해 ‘뒷말’을 낳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장 실장이 실세로 꼽히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금융권에선 장 실장의 천거로 입각한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장하성 사단’으로 불린다. 고려대 출신인 최 차관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책심의관을 지낸 직업 공무원이다. 장 실장과 함께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 운동을 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청와대에 합류한 홍장표 경제수석과 함께 이른바 ‘서경(서울대 경제학과) 라인’의 중심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된 경제 관료 가운데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은 무려 11명이다. 이동걸 회장(64)과 홍장표 수석(57)을 제외하면 나머지 9명은 80~84학번으로 비교적 젊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상조 위원장을 필두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 성윤모 특허청장,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등이 동갑 또는 한 살 터울이고,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이호승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 황덕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비슷한 또래다. 한 대학 단일 학과에서 이 정도로 많은 관료가 배출된 사례는 드물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기존 관습 또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를 배분하지 않는다”며 “지연이나 학연보다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별도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 초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사장)은 정부 인사에 힘을 미치는 막후 실세로 꼽혔다. 사진 포털 프로필.
강원·충청은 3명에 불과하지만 강원 출신인 최종구 위원장이 요직을 맡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충북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김 부총리는 장 실장과 함께 지난 5월 가장 먼저 청와대의 선택을 받은 경제 컨트롤타워다. 공식적으로 김 부총리를 천거한 인물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지만 청와대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수립에 영향을 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배후로 보고 있다. 관가에 따르면 변 전 실장은 J노믹스의 전신인 ‘비전 2030’의 설계자로 당시 구체적인 실무를 맡았던 이가 바로 김 부총리다.
별도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 초기 변 전 실장은 정부 인사에 힘을 미치는 막후 실세로 꼽혔다. 김 부총리를 비롯해 장관급인 홍남기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안살림을 챙기는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모두 ‘변양균 사단’으로 분류됐다. 이들은 참여정부 당시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낼 때 지근거리에서 호흡을 맞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김 부총리와 함께 기재부를 이끄는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김용진 2차관 모두 기획예산처에서 두각을 나타낸 ‘변양균 사단’으로 불린다. 마찬가지 이유로 참여정부 때 기획예산처 차관을 역임한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 수석도 ‘변양균 인맥’으로 통한다.
변 전 실장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홍남기 실장과 한양대 선후배 사이며, 변 전 실장과도 출신지가 경남으로 같다. PK 출신 경제 라인업에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포진해 있는데 이들은 공교롭게도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한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하려다 뭇매를 맞았다. 최근에는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사퇴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9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술유용 근절행위 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변양균 전 실장은 현 청와대 주류가 주창하는 소득주도성장론과 달리 이른바 ‘슘페터적 성장론’을 제시한다.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함을 전제로 자본가와 노동자에게 모두 국경을 넘는 자유를 주자는 철학이 핵심이다. 변 전 실장이 최근 출간한 <경제철학의 전환>에는 이 같은 성장 철학이 나타나 있다. 변 전 실장은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민간영역에서 일종의 ‘공급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애플이 개발한 아이폰은 세계적인 ‘공급 혁신’을 일으켰고, 전에 없던 산업 생태계를 조성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첫 머리에 4차 산업혁명과 창업국가가 언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당장은 ‘장하성 사단’이 국민적인 호응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로 ‘변양균 사단’이 기회를 얻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양대 사단과 교차 공통분모가 있는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등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로선 장 실장과 공조하고 있지만 세부 각론에서 이견이 생긴다면 언제든 토의를 통해 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특히 김 수석은 참여정부 출신으로 지난 18대 대선 직후 만들어진 정책자문그룹 ‘심천회’에서 활동하며 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 핵심 과제인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총괄하는 김 수석은 정치인이자 친문 대표주자로 꼽히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또 김 수석과 이용섭 부위원장, 김현철 보좌관은 모두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인 ‘비상경제대책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단에 이름을 올린 이동걸 교수(현 산은 회장)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선택을 받았다. 향후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경제 관료를 수혈한다면 비상경제대책단이 인재풀로 활용될 수 있다. 반드시 ‘장하성 사단’, ‘변양균 사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재계에선 벌써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5년짜리”라는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재벌 위주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사람 중심의 경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다른 건 몰라도 몇몇 인사에서 실책이 나온 것이 아쉽다”라며 “특정 집단에 권력을 몰아주면 (참여정부 때처럼)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다른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 개혁은 외부 요인 탓에 미완에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은 다르다”며 “5년이 아닌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청와대 주요 경제라인 명단 이름, 직책, 나이, 출신, 대학순 1. 이용섭,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67, 전남 함평, 전남대 무역 2.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64, 광주, 고려대 경영 3.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57, 대구, 서울대 경제 4.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 61, 경북 상주, 국제대 법학 5.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55, 경북 영덕, 서울대 도시공학 6.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과좐, 55 경북 김천, 서울대 경영 7.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49, 경남 산청, 포항공대 물리 8. 이호승,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 52, 전남 광양, 서울대 경제 9. 황덕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52, 서울, 서울대 경제 10.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60, 충북 음성 국제대 법학 11.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53 전남 해남, 서울대 경제 12.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 56, 경기 이천, 성균관 교육 13. 최종구, 금융위원장, 60, 강원 강릉, 고려대 무역 14.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55, 전남 무안, 서울대 경제 15.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55, 경북 구미, 서울대 경제 16.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56, 서울, 서울대 경영 / 박근혜 정부 때 임명 17.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66, 부산, 부산대 수학 18.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54, 부산, 서울대 조선 19. 김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 54, 서울, 서울대 사법 20.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53, 경남 마산, 한양대 무기재료공학 21.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55, 서울, 서울대 경제 22.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55, 전북 정읍, 연세대 정외 23.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 55, 경남 밀양, 서울대 건축학 24. 맹성규, 국토교통부 2차관, 55, 인천 부평, 고려대 행정 25. 한승희, 국세청장, 56, 경기 화성, 서울대 경제 26. 김영문, 관세청장, 53, 경남 울산, 서울대 공법 27. 성윤모, 특허청장, 54, 대전, 서울대 경제 28.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58, 전북 전주, 고려대 경영 / 장관은 공석 29.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65, 인천, 연세대 경영 30.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64, 경북 안동, 서울대 경제 31.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56, 전북 군산, 서울대 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