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프로야구의 ‘팜(farm)’ 도미니카...가난한 아이들의 유일한 탈출구...하지만 그곳엔 어두운 그림자가...
야구강국 도미니카 야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2013년 WBC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북중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도미니카를 아십니까. 도미니카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먹을거리로 삼는 작고 가난한 나랍니다. 우리들에겐 너무나도 멀고 낮선 나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도미니카하면 꼭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입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LA에인절스), 호세 바티스타(토론토 블루제이스), 앤드리안 벨트레(텍사스 레인저스)는 물론 어빈 산타나(미네소타 트윈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리그를 주름 잡는 투수들도 다 도미니카 출신입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등록 선수 중 미국 선수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역대 500명을 훌쩍 넘는 도미니카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MLB를 대표하는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LA에인절스)가 지난 6월 자신의 MLB통산 600호 홈런을 팬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 그는 도미니카 출신의 대표적 메이저리거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KBO)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도미니카 출신들이 많습니다. 핵터 노에시(기아 타이거즈), 헨리 소사(LG트위스), 윌린 로사리오, 알렉시 오간도(이하 한화 이글스) 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하나 같이 KBO를 씹어 먹고 있는 선수들이죠.
이 뿐만 아닙니다. 국가대항전에서도 도미니카의 힘은 유효합니다.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도미니카 야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2013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현재 도미니카는 역대 WBC 참가국들 중 대회 통산 최고 승률(18승 6패․승률 75%)을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KBO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헥터 노에시(기아 타이거즈)는 현재 리그에 즐비한 도미니카 출신 리거 중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진=연합뉴스
그 만큼 도미니카의 야구는 강합니다. 인구가 고작 1000만 명 남짓한 이 가난하고 작은 나라는 어떻게 야구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미니카에서 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입니다. 도미니카 야구의 힘은 자국민들의 열렬한 성원과 지지에서 비롯됩니다. 전 세계에서 ‘야구’의 인기가 ‘축구’보다 높은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도미니카 현지 교민들이 한국에서 열렸던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을 정도입니다.
도미니카에서 야구가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여기에는 조금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도미니카 역시 정치가 불안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라파엘 트루히요(1891~1961)라는 악명 높은 독재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습니다. 트루히요는 재임 기간 중 반발하는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심지어 가신들의 여식에게 까지 손을 대는 기행을 벌여왔습니다.
도미니카 야구는 독재자 라파엘 루트히요(1891~1961)가 남긴 슬픈 정치적 유산이기도 하다.
1922년부터 근간을 이뤄오던 도미니카 프로리그는 트루히요 재직시절인 1952년 지금과 같은 ‘LIDOM’이란 이름의 프로미엄 윈터리그로 거듭났습니다. 윈터리그란 보통 메이저리그 비시즌 기간 동안 진행되는 카리브 북중미 국가들의 프로리그를 의미합니다. 대개 후보급 메이저리거들이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해 출전하는 리그기도 합니다.
도미니카의 LIDOM은 자국 최고 프로 스포츠입니다. 총 6개 구단이 참여하는 이 리그는 약 3개월간 각 50경기 남짓한 짧은 리그를 치르지만 도미니카 국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리그 우승이라도 한다면,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동네 전체가 떠들썩하다고 합니다.
리그 수준은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리그(NPB)의 중간 즈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높습니다. 막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합류를 앞둘 정도의 실력자들이 리그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 리그는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 등 전세계 프로야구 리그 스카우터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엔 음주운전 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강정호 선수 역시 LIDOM의 한 구단에 입단해 실전 감각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전엔 승부조작 혐의로 KBO를 떠난 박현준 선수가 입단을 시도하기도 했고, 메이저리거 최지만 선수가 윈터리그 참가 경력이 있기도 합니다.
음주운전으로 자숙중인 강정호(피츠버그)는 이번 도미니카 윈터시즌에 참가한다.
도미니카의 야구는 한 독재자에 의해 일궈진 토양 위에서 성장했지만, 그 의도가 어찌됐건 간에 현재 자국민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미니카의 야구가 결코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살펴봤듯 도미니카는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세계 프로야구의 ‘팜(farm)’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축구로 따지면, 브라질 혹은 아프리카의 위치와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도미니카 아이들에게 ‘야구’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들에게 야구는 ‘빵’이다.
도미니카 국민들은 가난합니다. 많은 브라질 빈민가와 아프리카 아이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 축구공을 차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미니카의 많은 가난한 아이들도 그렇게 야구를 대합니다. 아무런 밑천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야구’라는 수단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미니카 마을 곳곳에는 글러브와 배트 대신 맨손과 적당한 막대기를 들고 야구를 하는 어린아이들을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야구’는 한 마디로 ‘눈물 젖은 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도미니카의 윈터리그는 자국 내 최고의 프로리그이고, 선수들의 실력 역시 출중하지만 그 대우 수준은 아주 열악하기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해외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야구를 즐기는 도미니카 아이들.
이 때문에 안타까운 일도 많이 벌어집니다. 도미니카와 해외를 오가는 많은 브로커들이 도미니카의 10대 유망주들을 노립니다. 이 유망주들은 오로지 해외진출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에게 돈을 바치곤 합니다. 나쁜 브로커들은 유망주들이 바친 돈만을 챙기고 도망가거나, 아니면 미국 땅 한 가운데 버리고 달아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꿈과 돈 모두를 잃은 도미니카 10대 청소년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겠죠. 유럽에서 실패한 아프리카 축구 유망주들과 매우 흡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도미니카 야구 유망주들의 문제는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에 버려진 유망주들 중에서는 방황을 하다 지역 갱단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마약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숫자가 적지 않은 터라 미국 사회 안에서도 골칫거리로 전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에 대한 브로커와 스카우터들의 반인권적 행태와 대우 역시 점차 문제 한 단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결국 도미니카 정부의 의지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미 도미니카에서 야구는 하나의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망주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은 물론 해외에서 성공한 선수들로 부터 들어오는 수입 역시 상당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 성공한 메이저리거들은 자국 정치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도미니카 정부 입장에서 이 야구 산업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