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쏘는 죽음의 냄새 ‘스멀스멀’
▲ 연이어 발생하는 유화수소 자살 문제로 일본 경찰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가스를 처리하는 경찰과 자살한 여배우 아소 미유키(왼쪽). | ||
자살한 AV 여배우의 이름은 아소 미유키(22). 그녀는 본래 섹시화보 모델로 활동하다가 올해 2월 AV로 데뷔하면서 ‘현역 연예인이 AV에 출연했다’는 점 때문에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그녀는 유명 코미디언들과의 섹스를 폭로하면서까지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 했고, 결국 이로 인해 되레 여론의 반감을 사게 됐다. 섹스 파트너의 실명을 밝히는 등 도를 넘는 그녀의 행동에 팬들은 물론이고 그녀를 몰랐던 사람들조차 “너무 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
이런 여론에 고민하던 그녀는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자살하기 일주일 전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이름으로 “곧 확실하게 자살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어제 통신판매로 유화수소를 주문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을 기대해주세요”라는 내용을 남겼다. 그녀는 일주일 후 자택 욕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아소가 자살하기 직전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았던 친구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현관문에는 ‘유화수소 위험’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친구는 이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급기야 한밤중에 아소의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유화수소 자살’은 2007년 3월 일본 가가와 현의 한 대학생이 이 방법으로 자살한 후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 등에 제조 방법과 효과 등이 알려지면서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시판되는 몇가지 화학 제품을 섞으면 유독성 기체인 유화수소가 생성된다고 한다. 유화수소는 유황과 수소가 결합된 무기화합물로 공기보다 약간 무거우며 달걀이 썩은 듯한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농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0.1%(1000pp)가 넘으면 들이마신 순간 정신을 잃고, 5분 이상 지나면 중추신경 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데다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가장 각광받는(?) 자살 방법으로 떠올랐다. 이후 일본 각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유화수소 자살 사건이 터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화수소가 자살을 하는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치사량이 아니더라도 유화수소에 노출되면 두통과 구토, 의식불명에 빠질 수 있으며 사망하지 않더라도 뇌에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것. 유화수소가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독특한 냄새로 구별할 수 있기는 하지만 농도가 높은 유화수소를 흡입하면 후각이 마비돼 아예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유화수소 냄새를 맡았을 경우 즉시 대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오사카에서 23세의 여성이 자살했을 때 그녀를 구하러 간 어머니마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일이 있었다. 또한 고치 현에서 14세의 여중생이 자살을 했을 때는 같은 아파트의 주민 약 20명이 구토와 목의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앞서 나온 아소 미유키처럼 위험하니 대피하라는 경고문을 붙여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유화수소의 맹독성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에서는 이 물질이 자살뿐만 아니라 범죄나 테러에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4일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사이타마 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주변을 수색한 결과 화단에서 유화수소가 가득 찬 플라스틱 통 세 개를 발견했다.
다행히 피해자는 없었지만 아파트 주민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노린 이 사건에 일본 경찰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후쿠시마 현에서는 유화수소를 사용하여 친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던 40대 남성이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집안에서 ‘자살할 것이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쓰인 쪽지와 함께 집안에서 농약이 가득 든 양동이와 세제가 발견됐다. 그러나 실제로 유화수소를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유화수소 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일본의 드럭스토어협회는 유화수소 제조에 사용되는 제품들의 판매에 좀더 신중을 기하는 등 대책 마련을 결정했다. 이 협회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될 수 없겠지만 자살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기업이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 어디서 무차별 살인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는 유화수소 자살. 일본 정부는 자살 방지 전화 상담소를 개설하고 자살 사이트나 유화수소 제조 사이트 등의 규제를 논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미 자살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일본에서 힘든 삶보다 손쉬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