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행선지표지판, 영문 표기 없어 외국인관광객 불만…서울시 “공간적 제약에 한글과 영문 다 담기 힘들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시내버스 안팎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지판에 한글밖에 적혀있지 않아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일본인 히로 씨는 지난 9월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에 관광을 왔습니다. 자유일정으로 온 히로 씨는 인사동, 홍대, 강남 등 평소 가보고 싶었던 서울의 명소들을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교통편은 서울의 풍광을 구경할 수 있는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할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이 첫 방문인 히로 씨는 한글을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인사동에서 강남으로 이동을 위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히로 씨. 저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OOO번’ 가장 먼저 버스 정면 상단에 노선번호가 보이네요. 그 옆에 한글로 뭐라 적혀있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 지도 검색을 통해 타야할 버스 몇 개를 확인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어오는 번호의 버스가 강남으로 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히로 씨는 버스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시판을 보고 강남으로 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시내버스 안팎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지판에 한글밖에 적혀있지 않아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버스가 히로 씨 앞에 정차했습니다. 히로 씨는 버스 측면 앞문 옆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지판을 봤습니다. 그런데 표지판에는 온통 한글뿐이었습니다. 영문으로 된 안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확신이 없었던 히로 씨는 망설이다 결국 버스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시 스마트폰을 켜 지도에서 버스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아까 보낸 버스는 강남에 가는 버스였네요. 행선지표지판의 한글을 읽지 못한 히로 씨는 결국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시내버스 안팎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지판에 한글밖에 적혀있지 않아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히로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의 시내버스 안팎에 붙어있는 행선지표지판에 한글밖에 적혀있지 않아 이용하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실제 서울 내에서 운행되고 있는 시내버스를 확인해봤습니다. 버스 정면 유리창 상단과 측면의 앞문 옆에 버스의 행선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영문은 찾아볼 수 없이 모두 한글입니다.
일부 버스는 정면 상단 표지판이 LED로 되어있어, 일정 시간마다 한글이 영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4개 정도의 주요 정류장이 뜨는 한글과 달리 영문의 경우 출발지와 회차지 두 군데만 나와 중간에 어디서 정차하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몇몇 버스는 정면 상단 표지판 바로 밑에 띠지처럼 영문과 중문으로 6~7개 주요 정류소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너무 작아 읽기가 쉽지 않다. 사진=민웅기 기자
또한 몇몇 버스는 정면 상단 표지판 바로 밑에 띠지처럼 영문과 중문으로 6~7개 주요 정류소를 소개한 행선지표지판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너무 작아 읽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서울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면서 겪는 이러한 불편함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 관광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행선지표시판에 영문이 없어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다는 지적사항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에 따라 담당 부서에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불만사항이 계속 접수되고 있음에도 왜 빨리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요. 우선 행선지표지판에 한글과 영문을 반드시 병행 표기해야 한다는 법이나 규정은 따로 없어,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합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운행관리팀 관계자는 “행선지 표지판 개선사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공간적 제약에 따른 한계가 있다. 측면 행선지표지판 종이 공간이 부족해 영문까지 다 담기는 힘들다. 영문 표기를 넣으려면 한글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현재의 한글도 작다는 의견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 담을 수는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그럼에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샘플도 만들어보고 있다”며 “주요 관광지를 우선적으로 영문 병행 표기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시 측은 행선지표지판에 한글과 영문을 병행 표기하기에는 공간적 제약에 따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관광 인프라 구축과, 경쟁력 강화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최근 몇 년간 ‘올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 수치로도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한국이 1420만 명,일본은 1342만 명으로, 한국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는 한국 1323만 명, 일본 1974만 명으로 압도적인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엔 한국이 1724만 명, 일본은 2404만 명으로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외국인들이 다시 찾는 재방문율에서도 차이는 두드러졌습니다. 일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4~6월 일본을 방문했던 외국인 관광객들 중 일본을 찾은 횟수가 두 번째 이상인 이들의 비율은 62%로 2년 전보다 4%포인트 올랐습니다. 반면 한국의 2016년 재방문율은 40%를 밑도는 38.6%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도 버스 행선지표지판에 영문을 함께 적어놓은 지자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전광역시입니다. 대전시는 지난 7월 시내버스 내·외부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버스 외부의 행선지표지판에 한글과 영문을 병행 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시는 지난 7월 시내버스 외부 행선지표지판에 한글과 영문을 병행표기하기 시작했다. 사진=대전시 제공
대전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행선지표지판 표기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면서 “관광객, 유학생 등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버스 노선 안내에 영어로 안내가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 이에 행전지표지판에 한글 외에 영문을 추가로 넣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 및 지자체들도 외국인 관광객 방문 활성화를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찾아오고 싶도록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