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투쟁 가능성 솔솔…향후 형량에 득일까 실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국정농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구속 연장 이외에도 변호인 총사퇴를 결정할 만큼 재판과정에서 불공정한 사례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재판부는 대체로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했다”면서도 “주 4회 재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또 다른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도 “구속사건은 통상 2주에 1회 정도 재판하고 공소사실이 복잡해도 주 1회 정도다. 아무리 무리를 해도 주 2회를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면서 “주 4회 재판을 하면 변호인들이 반대증거를 수집하거나 반대사실을 입증할 증인들을 만나볼 시간이 없다. 원님재판”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재판 거부 카드를 준비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법원 주변에서는 약 한 달 전부터 구속이 연장될 경우 변호인단이 총사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친박계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어차피 인민재판인데 뭐 하러 고분고분 재판을 받느냐”며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은 다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은 못살게 굴지 말라’고 선언하고 정치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의견이 표출되고 있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한 10월 16일 재판에서 직접 발언을 통해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면서 “모든 책임을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재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측 한 변호인은 “일부 변호사가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녔을 수는 있다”면서 “변호인 총사퇴에 대한 논의는 추가 영장이 발부된 이후에 이뤄졌다. 여러 가지 안을 놓고 변호인단이 논의를 해서 박 전 대통령께 드리고 그 중에 하나를 택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단 총사퇴를 결정하기 전에 박 전 대통령이 친박 단체나 친박계 정치인 등과 논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만기 출소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물론 구속이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보고 드렸지만 (출소를) 기대하셨기 때문에 이런 결과(변호인 총사퇴)가 나온 거 아니겠나. 변호인단도 기대를 했는데 박 전 대통령도 당연히 기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공정재판을 위한 법률지원단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구속 만기를 앞두고 새로 이사한 자택에 자신이 좋아하는 능소화와 배롱나무를 심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출소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지난 4월 삼성동 집을 팔고 내곡동으로 이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사 당시 구속 상태라 새 자택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구속이 연장되고 박 전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힘들어 했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혼자 있으실 때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변호인단이 보기에는 전혀 그런 점이 없었다. 법정에서도 침착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 총사퇴로 형량에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형량은 재판부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입장이다. 다른 변호인이 선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사건을 도중에 맡아 줄 변호사도 없을 것이다. 결국 국선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겠나”라며 “변호를 제대로 못하면 형량이 더 높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은 5년 형을 받으나 10년 형을 받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원래 일반인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재판을 포기하고 향후 사면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1심 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너무 멀리 간 것 아닌가. 항소를 포기하고 사면을 기대할 것인지, 항소를 하고 대법원까지 끝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그런 부분까지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을 거부한 것에 이어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상적인 법리 싸움에서 승산이 보이지 않자 전면적인 정치 투쟁으로 승부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국정 농단 사건 주요 관련자들의 선고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내용의 옥중 메시지를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변호인단 총사퇴에 대해 “전형적인 판 흔들기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도 박 전 대통령은 개헌 카드를 꺼내 판 흔들기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면서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없었다면 정치권이 판 흔들기 전략에 휘말려 탄핵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 총사퇴로 재판부는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을 포기해 형량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재판부가 부담을 느껴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예상보다 형량이 높아져도 항소심이 있기 때문에 상관이 없고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변호인단이 총사퇴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향후 접견에 제한을 받게 된다. 현재 박 전 대통령 옥바라지는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하 변호사가 사임계는 냈지만 앞으로도 일반 접견 형식으로 박 전 대통령과 계속 만날 가능성도 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자신과 접견할 수 있는 사람을 유영하 변호사와 윤전추 전 행정관으로 제한해 놨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