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입원에도 별다른 조치 없어…또 다른 집단에 괴롭힘 당하다 ‘극단적 선택’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위치한 서곡중학교 전경.
지난 8월 27일 오후 3시 59분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위치한 서곡중학교 3학년 고 박 아무개 양(15)은 자신이 살던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급생과 두루 친했던 박 양은 일부 여학생의 질투와 시기의 표적이 돼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6월 단순히 남학생과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벌어진 지속적 집단 따돌림이 시작이었다.
지난해 10월 이 학교 학생 A 양(15)은 박 양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유로 소셜미디어에 은연 중 박 양을 가리키는 이른바 ‘저격 글’을 남겼다. A 양 친구 B 양(15)이 “한두 명도 아니고 (남자를) 끼고 산다”는 식의 댓글을 남기자 30명 가까운 동급생들도 이에 동조했다. 사이버 학교폭력은 실제 생활로도 이어졌다. 한 학생은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돼 A 양과 B 양이 박 양을 교실로 혼자 오도록 해 함께 모인 동급생 6~7명과 박 양을 둘러싸고 집단 폭언을 가했다”고 밝혔다. “여우 같다”고 시작된 비아냥은 “걸레 X 지나간다” “몸 대주고 다닌다” 등등의 언어폭력이 됐다.
박 양은 지난해 처음 당한 동급생의 언어폭력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지난해 12월쯤부터 벽을 팔과 다리 등으로 심하게 치는 등 자해도 했다. 서곡중 한 교사는 박 양의 자해가 심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난 3월 8일 박 양의 부모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사태 파악에 힘썼던 부모는 한 달이 지난 4월 13일에야 자신의 딸이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는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되레 박 양 부모의 학교폭력 제보에 한 발 물러섰다. 학생주임은 박 양의 부친에게 “가해학생을 지목해 달라”며 진상 파악을 학부모에게 넘기거나 “한 가해학생이 달갑지 않다고 반응해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곡중 복도에 붙어 있는 학교폭력예방 포스터.
박 양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달라고 학교에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악소문과 보복을 두려워한 딸도 있고 징벌보다는 가해학생 교화가 먼저란 생각에 학교 관계자와 학교전담경찰관을 만나 대책 회의를 가졌다. 사과의 자리를 만드는 정도로 마무리하자고 의견이 모였다.
지난 4월 25일 학교에서 열린 사과의 자리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일부 가해학생은 삐딱한 자세와 노려보는 눈빛을 띠는가 하면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B 양은 “씨X 난 사과 안 해!”라며 욕하고 소리쳤다. 한 가해학생의 엄마는 박 양에게 주려고 가지고 온 꽃다발을 거절당하자 울며 무릎 꿇고 사과를 한 뒤 교실 밖 복도에서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다.
이날 벌어진 사태로 박 양은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왼쪽 손목을 그으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학교는 병원으로 옮겨진 박 양과 가족에게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원만히 합의했다”는 합의서를 가지고 왔다. 박 양의 부친이 “원만한 합의가 없었다. 서명할 수 없다”고 말하자 학교 관계자는 “교육청에 제출할 거라 내용 수정이 힘들다”고 답변한 뒤 일부 수정해서 박 양 부친에게 서명을 받고 전라북도교육청에 학교폭력 사건 자체 종결을 보고했다.
박 양은 3주쯤 입원한 뒤 퇴원해 등교했지만 학교는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던 박 양과 가해학생을 분리하지 않았다. 학교의 이런 미온적 대처에 또 다른 집단이 박 양을 괴롭히고 나섰다. 언어폭력은 실제 폭행으로 치달았다. 지난 6월 21일 박 양의 동급생 C 양(15)은 하루 전 자신의 옛 남자친구와 박 양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유로 박 양을 폭행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쯤 학교 인근 한 학원 뒤에서 C 양은 자신의 친구 2명과 함께 박 양을 앞에 두고 “걸레 짓 좀 하지 마라. 이 악물어라”라고 말한 뒤 심하게 밀치고 뺨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두 번 때렸다.
방학 때 박 양의 상태는 조금 진정됐다. 하지만 2학기가 시작되자 박 양은 학교 가기를 두려워했다. 2학기 개학 날 등교하자마자 조퇴했던 박 양은 특히 월요일을 어려워했다. 개학 뒤에도 집단 따돌림과 폭언은 박 양을 떠날 줄 몰랐다. 끊이지 않는 학교폭력과 학교의 방관에 박 양은 결국 일요일 오후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가해학생들은 박 양이 세상을 등졌는데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학 동급생은 “가해학생 일부가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슬리퍼를 신은 뒤 박 양의 장례식장에 가 수다를 떨다 노래방을 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학폭위가 열리던 날 가해학생들이 ‘난 죄가 없는데 박 양 때문에 밖에 나가면 계란 맞게 생겼다’며 삼삼오오 웃는 낯으로 수다를 떨었다”고 전했다.
박 양과 같은 성당에 다니던 학 가해학생의 부모는 박 양 사망 뒤 성당 신부를 거쳐 사과 의사를 보냈다. 박 양의 부모는 이를 거절했다. 사망 전 충분한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사과도 안 했던 탓이었다. 박 양 부친은 “이 학부모는 가해학생 처분 감경 등을 목적으로 행정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과 의사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사과 의사를 보냈다는 점이 참작되면 행정 심판 결과가 가해학생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 심판은 최소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가해학생들은 졸업을 4개월 앞뒀다.
학교 역시 박 양의 죽음 뒤 구설수에 휘말렸다. 유가족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 박 양 발인을 마치고 학교를 마지막으로 도는 과정에서 일부 교사들은 운동장 주변 나무 그늘 아래서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주임은 박 양 사망 직후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익명의 글이 인터넷이 올라오자 학생들에게 수업 도중 박 양 사망 관련 글을 모두 삭제하고 앞으로도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복수의 이 학교 학생 증언도 나왔다.
이와 관련 서곡중학교 교장은 “지난 4월 학교폭력을 파악하자마자 바로 도교육청에 보고 하는 등 학교폭력 매뉴얼대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며 “발인 뒤 운구 행렬이 학교에 방문했을 때 외부에서 사람들도 많이 왔었다. 일부 교사가 그늘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유언비어다. 유언비어 때문에 매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교육청 관계자 역시 “매뉴얼대로 처리해서 따로 감사나 진상 조사 계획은 아직 없다”고 했다.
지난 9월 15일 전주 서곡중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뒤에 실신해 옮겨지는 피해학생의 모친.
학교는 박 양 사망 뒤 19일 뒤인 지난달 15일 학폭위를 열고 가해학생으로 추려진 7명 가운데 1명에게 강제전학 처분을 내렸다. 학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14일 이내에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6명은 교내봉사 10시간, 출석정지 5일 등을 처분 받았다. 강제전학과 교내봉사를 받은 학생 3명은 “양형이 과하다”며 전라북도교육청에 재심과 행정심판 등을 신청했다. 박 양의 부모 역시 “죄질에 비해 양형이 가볍다”며 전라북도청에 학폭위 재심을 청구했다. 오는 25일 전북도청은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열고 가해학생 처분을 다시 한번 판단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학교 무관심에…‘은따’들도 “죽고 싶다” 보이지 않는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의 바른 인식과 빠른 대처가 요원하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서곡중 사건처럼 증거가 없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으나 피해학생은 죽음까지 결심하는 까닭이다. 충남 논산의 한 사립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 군(18)은 지난해부터 계속된 학교폭력 피해를 학교에 알리고 두 번에 걸친 학폭위를 거쳤다. 지난 7월 27일과 8월 10일 두 번 열린 학폭위는 A 군이 입은 피해를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 군은 이 결과에 낙심한 나머지 최근 잇따른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전했다. A 군에 따르면 A 군의 동급생 일부는 지난해 9월부터 A 군이 지나가기만 하면 동급생들은 허공에 대고 “죽여 버리고 싶다. 저 새X X나 띠껍다”고 외쳤다. 아침에 공부하는 A 군에게 동급생들은 “저 새X는 무슨 아침부터 공부를 하냐. X나 싫다”고 말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냐” “저 새X 하품할 때 표정 X같이 생겼어” 등의 표현으로 은연 중에 피해학생을 놀렸다. 직접적인 폭력이 없어서 입증도 힘들다. 가해학생들은 피해학생이 지나갈 때 책상 위로 책을 세게 내리치거나 자기 필통을 책상 위로 던지는 정도의 행동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자서전을 읽고 있는 피해학생에게 가해학생들이 ”자기가 뭔데 정치에 관한 책을 읽어?”라며 트집을 잡는 식이었다. 압박은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남지 않았다. 이럴 땐 교사가 진상을 파악하고 정확한 훈육을 가해야 한다는 게 학교폭력 전문가의 의견이다. 익명을 원한 한 학교폭력 전문 경찰은 “최근 학교폭력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보이지 않게 피해학생을 압박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를 인지하는 즉시 증거가 없더라도 교사는 관련된 학생들을 불러 진상을 확실하게 알아 본 뒤 정황이 발견되면 따끔하게 훈육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A 군의 담임은 지난 3월 중순 A 군의 부친 요청에 따라 충남 논산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강 아무개 경장과 함께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동급생 3명의 부모와 만났다. 담임은 당시 “험담, 비방, 따돌림, 모욕감을 주는 말 등 지금 일어난 일이 학교폭력”이라고 말했지만 별다른 훈육은 없었다. 이내 합의서를 이끌어내 자체 종결 사안으로 처리했다. 일시적으로 멈췄던 학교폭력은 얼마 안 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증거는 여전히 없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의 학부모가 A 군의 부친에게 지난 3월 “마음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어쨌든 죄송하다”고 한 사과와 학교폭력이라고 주장하던 담임의 판단은 학폭위에서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했다. 한편 A 군의 담임은 “우리 반에서 일어난 일이라 말하기 애매하다. 합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 다 고3이라 할 일도 많아서 답변하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