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총성은 ‘북한 쿠데타’ 서곡일 수도
▲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 ||
<주간포스트>는 우선 6자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객 피격 사건이 일어난 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북한 측에게는 매년 1000만 달러(약 100억 원)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자금줄이다. 더구나 사건 당시는 7월 10일부터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과정과 그 보상이 될 경제적 지원 등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 정부 입장에서 외교적으로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모험을 강행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토대로 일본의 북한 전문가인 야마무라 아키요시 씨는 이번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김정일의 의향과 상관없이 군부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한 ‘확신범적인 폭주’일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관광객이 길을 잘못 들어 펜스를 넘어간 사건은 전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감한 타이밍에 과잉 대응을 한 데에는 김정일과 군부의 사이가 틀어지고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측 6자회담 관계자의 증언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김정일이 군부보다 외교를 중시하게 됐다. 그 증거로 이전이라면 군부 OB들의 간섭을 받았을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 담당대사가 직접 김정일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북미 관계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김정일과 북한 외교부의 의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복동생 김평일 대사. | ||
북한 군부가 ‘김정일 타도’를 꾀하고 있다는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도 포착된다. 간사이 대학의 이영화 교수는 “올해 들어 여러 정보원으로부터 주 폴란드 대사인 김평일이 북한으로 귀국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평일은 김일성 주석과 두 번째 아내 김성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김정일의 이복동생이다. 김정일보다 열두 살 어리지만 두뇌가 명석한 인재로 김평일을 후계자로 추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되면서 이복동생들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외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김평일 또한 헝가리, 핀란드 등을 전전하다가 1998년부터 폴란드 대사로 지내왔다. 그런 김평일이 갑자기 북한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것은 북한에 돌아갔을 때 신변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일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북한 군부가 김정일에 대항할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김평일을 불러들인 것이라는 일본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야마무라 씨는 “실제 군 경험이 전혀 없는 김정일과 비교할 때 김평일은 군사대학을 나오고 인민군보위국에 입대하여 군 비밀경찰이나 군사대학 등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혀왔다”고 덧붙였다.
‘김평일 귀국설’이 나돈 것과 비슷한 시기에 북한 내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바로 지방 군항도시의 크고 작은 ‘봉기’들이다. 와세다 대학 아시아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초 청진과 중국 국경 지역인 나진에서는 소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과거에도 몇 차례 폭동이 일어난 적은 있었다. 다만 예전의 폭동이 외국의 원조품을 평양의 당 간부들이 독점해서 지방까지 배급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면 최근의 폭동은 군부가 가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정황들로 비추어볼 때 김정일과 군부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가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김정일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군부가 모종의 안전장치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