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인사들 금융권 공공기관 대거 입성, 내로남불 지적 확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1일 마포구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신임 사장으로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내정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김 사장 내정자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시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KAI는 오는 10월 25일 이사회를 열고 김 사장 내정자의 선임을 확정할 예정이다.
김 사장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감독원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돌고 돌아 자신의 전공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무기업체 사장직을 꿰찼다. KAI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방산비리 혐의로 전방위 수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인식 부사장이 지난 9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KAI가 불량헬기를 만들고 고등훈련기 T-50 납품가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방산비리 수사와 관련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분식회계로 수사 방향을 돌렸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측근을 사장에 앉히기 위해 기획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김조원 사장 내정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KAI 노조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해봤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류재선 KAI 노조위원장은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수사가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한 건도 혐의를 못 잡았다. 좀 기획된 수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가 논란을 겪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신임 소장에는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사촌동생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다. 강 회장의 사촌동생인 강 아무개 예비역 공군 대령은 사이버 전문가로 ADD에 몸담고 있는 내부 인사지만 국방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공모일정을 두 차례나 연기하고 응시자격 기준을 예비역 장성급에서 영관급으로 낮추면서 뒷말이 나온다. 사실상 강 전 대령을 염두에 두고 짜맞추기 공모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9월 11일 취임한 장해랑 EBS 사장도 낙하산 논란을 겪었다. 장 신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정연주 KBS 사장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다. 장 신임 사장과 최종 후보 3인에 올랐던 안연길 국회사무처 방송국장은 노무현 캠프에서 후보연설준비단장과 참여정부 국내언론 행정관, 춘추관장 등을 지냈다.
EBS직능단체협의회는 지난 8월 성명을 내고 “이젠 낙하산은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EBS는 교육 공영방송사이기에 진보건 보수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것이 뻔한 편향된 인사는 절대 안 된다”면서 “EBS 사장직이 또다시 정권의 전리품이 된다면 역사의 진보는 없다”고 주장했다.
KDB산업은행 회장에는 이동걸 동국대 초빙교수가 낙점됐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대표적인 국책은행이다. 이 신임회장은 정권 초기부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의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재정정책자문을 맡았고 문재인 대선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했다.
이 교수가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업은행지부는 성명을 통해 “이 교수가 산업은행 회장 후보자로 내정됐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낙하산 보은인사”라며 “보수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문재인 정부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비판에도 이 신임회장은 지난 9월 11일 취임했다.
민간 금융사인 BNK금융그룹도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9월 친문인사로 분류되는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특히 회장 선임 과정에서 여권 관계자가 ‘BNK금융그룹 최고경영자로 친여당 금융전문가를 발탁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김 신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으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경제고문을 지낸 바 있다. 청와대는 민간 금융사 인사개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측은 문건을 비롯해 후보 선정 연기 등 회장 선임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 선임과정에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라인과 문재인 캠프 라인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등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한국거래소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다. 청와대 측은 당연히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한국거래소 역시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이례적으로 추가 공모가 실시된 것에 이어 유력 후보였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이 갑자기 지원을 철회했다. 이후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거래소 내부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문재인 정부가 지역 안배 차원에서 부산 출신인 정 사장을 대항마로 내세웠다는 말이 무성하다.
차기 이사장은 면접을 거쳐 10월 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동기 노조위원장은 “갑자기 유력 후보가 자진 사퇴하고 뒤늦게 공모에 응시한 후보가 최종후보자에 포함됐다. 낙하산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먼저 이사장이 선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 투쟁을 하겠지만 이사장이 선임되어도 인정할 수 없다. 사퇴 투쟁으로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은 10월 17일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에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내정해 놓고도 국정감사를 피하려고 임명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임 백기승 원장은 지난 9월 11일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당초 후임자가 곧바로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한 달 넘게 공석상태다.
김 의원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KISA가 후보자를 3배수로 이미 압축해놨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언론에서도 문재인 대선 캠프 방송특보였던 김석환 씨를 KISA 원장으로 내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이미 선정 절차가 마무리 단계인데 임명을 미룬 것은 국감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신임 원장에 정보보안 전문가들이 대거 지원했는데 관련 이력이 전무한 김 씨가 내정된 것이 사실이라면 ‘낙하산 인사’라고 주장했다.
또 한동안 공석으로 있던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연이어 신임 대표 공모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내정자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문재인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더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 새 정부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인사들을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냐”면서도 “일부 비전문가가 임명돼 낙하산 논란이 있지만 이전 정권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