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야구 좋아해 김 여사가 구치소 면회 때 야구 기사 챙겨갔다더라”
지난 10월 25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일요신문]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배우 전소민, 가수 겸 배우 수지, 배우 유연석….
5차전으로 막을 내린 이번 시즌 한국시리즈 시구자의 면면이다. 그 중에서도 1차전에 깜짝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시구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야구팬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지난 봄 대선 당시 ‘투표 참여 리그 2017’을 열어 “투표 인증샷 1위를 한 연고지에서 시구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이벤트에서 KIA 팬들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시구가 처음부터 예정된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 시구는 과거부터 특급 보안 사항 중 하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시구를 계획했지만 정보 누설로 취소된 일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는 당초 ‘야구 대통령’으로 통하는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극비리에 문 대통령으로 시구자가 변경됐다. 시구 현장에서도 처음에 김 회장이 마운드에 올랐다가 뒤이어 등장하는 문 대통령에 공을 넘겼다.
문 대통령의 시구에는 김성한 전 KIA 감독도 함께했다. 김 전 감독은 김 회장과 함께 문 대통령의 시구 코칭을 담당했고, 경기도 함께 관람했다. <일요신문>은 김 전 감독으로부터 문 대통령의 시구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재인 대통령-김응용 회장-김성한 전 감독은 지난 4월 대선 정국때 유세 현장에서 손을 맞잡은 바 있다.
지난 4월 대선 후보 유세 현장. 김성한 전 감독, 문재인 대통령, 김응용 회장(왼쪽부터). 연합뉴스
김 전 감독은 문 대통령이 야구라는 종목 자체를 좋아하는 오래된 야구팬임을 소개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야구를 좋아하시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며 “과거 선수 기록도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더라. 고 최동원 선수를 특히나 좋아하시는 것 같았고 제가 타자지만 투수로서도 10승을 기록했던 것도 이야기하셨다”고 전했다. 이날 시구 직전 인사를 나눈 최수원 심판이 고 최동원 선수의 동생임을 설명해준 이도 김성한 전 감독이었다.
문 대통령의 ‘야구 사랑’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정숙 여사와 연애하던 시절, 문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김 여사가 야구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고교 야구 기사를 챙겨간 일화가 알려져 있다. 김 전 감독도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데모 하시고 구치소 계실 때인 것 같은데 1976년도경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야구계 거장’ 2인과 함께한 시구 연습도 수월하게 해냈다. 김 전 감독은 “간단한 시구지만 몸을 충분히 풀어야 한다고 조언해드렸다”며 “몸이 풀린 뒤에는 제구도 꽤 정확했고 잘 던지시더라. 바닥이 평평하니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전은 연습처럼 녹록지 않았다. ‘제구가 정확했다’는 김 전 감독의 설명과 달리 공은 타자 몸쪽으로 쏠렸고, 원바운드 이후 포수 미트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김 전 감독은 “경사가 있는 마운드에서는 경험이 없으면 당황하기가 쉽다. 대통령도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계 화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김응용 회장이 조금 앞으로 설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홈플레이트로부터 18.44m 떨어진 마운드를 활용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셨다”며 “다른 사람들도 조금 앞에서 던질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기왕이면 좋은 모습으로 던지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전 감독은 “마운드가 경사가 있어 양 발을 딛는 높이가 다르다보니 공이 원바운드로 들어갔다. 대통령도 약간은 머쓱해하시는 표정을 지으셨다”며 웃었다.
문 대통령은 시구 이후에도 경기장에 남아 한국시리즈를 지켜봤다. 김 전 감독은 이때도 대통령 내외와 함께했다. 그는 “경기중에는 정말 편안하게 여느 팬처럼 야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경기에 집중해서 야구 이야기만 하시더라. 좋은 장면이 나오면 ‘저 선수 수비를 참 잘한다’며 칭찬하시기도 했다”라고 했다. 이어 “나도 해설을 하듯 ‘두산 투수 니퍼트가 KIA 헥터보다 시속이 빠르다’ 등 이것 저것 설명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