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관리비용 요구 때도 서로 입 맞춰”
가수 문희옥(48)이 공갈 협박 혐의로 피소된 것은 지난 1일의 일이다. 고소인인 A 씨(여·24)는 이날 서울남부지검에 문희옥을 협박 및 사기 등 혐의로, 문희옥 소속사의 대표 김 아무개 씨(64)를 강제추행 및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문희옥의 소속사와 5년 전속 계약을 맺고 트로트계 입성을 앞둔 신인이었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난 6월 24일 소속사 대표 김 씨의 개인 차량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문희옥의 매니저이기도 한 김 씨는 A 씨의 데뷔 이후 활동을 총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자신의 앞날을 쥐고 있는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트로트 가수 문희옥이 후배 여가수가 소속사 대표에게 성추행 당한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도록 강요해 논란이 되고 있다. 문희옥 페이스북 캡처.
믿었던 대표에게 추행을 당한 A 씨는 사건 이후 2개월여 동안 정신과 문을 두드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수면장애와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혼자 속으로만 앓던 이야기를 사건 이튿날 선배인 문희옥에게 꺼내놓는 데만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문희옥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도리어 피해자인 후배의 입막음에만 급급했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A 씨 측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문희옥과의 통화 내용 녹취록에서 문희옥은 “너희 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너 하나만 보고 있는데 이걸 알려서 네 아빠는 무슨 재미로 일을 하고, 사람들은 신인가수 XX(피해자 A 씨)를 어떻게 보겠냐”라며 가족들의 이야기로 A 씨를 회유하는 듯한 말을 한다. A 씨는 이미 대외적으로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가족들도 A 씨의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A 씨의 신고를 막는 데에 가장 먼저 가족이 거론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른 통화에서 문희옥은 신고 의사를 굽히지 않는 A 씨에 대해 감정이 상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난 모르겠고, 이제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네 입에서 ‘얘기 안 할게요’ ‘입 다물게요’ 이 얘기 듣지 않는 이상 난 너랑 할 얘기가 없어” “사장님은 형 살고 나오면 되지만 너는 식구들 타격이 더 커. 너는 가수 이름 하나 못 대. (중략) 현미 언니도 엄청 일이 커져, 너 도와주려고 했다가 현미 언니도 크게 다친단 말이야. 그게 좋아?”라며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희옥이 내세운 ‘현미 언니’는 가수 주현미를 말한다. 사건의 피해자 A 씨는 어려서부터 주현미의 팬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열성 팬이었고, 이 때문에 주현미도 A 씨를 딸처럼 아꼈다고 했다. A 씨가 트로트 가수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조언을 구했을 때도 주현미는 자신의 일처럼 백방을 뛰어 A 씨의 활동 발판을 마련했다.
주현미가 신인 가수인 A 씨의 소속사를 고민할 무렵 문희옥이 접근했다. 당시 주현미와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문희옥은 “우리 소속사로 오면 가수가 노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주현미는 문희옥과 소속사의 대표 김 씨를 믿고 A 씨를 소개했다. 이후 사건이 발생하고 A 씨로부터 사실을 전해들은 주현미가 크게 분개해 문희옥과의 사이도 틀어졌다는 후문이다.
A 씨 측은 문희옥이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덮어놓고 공론화를 막으려 한 점에 의혹을 제기했다. A 씨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희옥과 소속사 대표 김 씨는 단순히 소속사 대표와 가수를 넘어 매우 특별한 관계로 비춰졌다. 이와 관련한 확증도 있지만 아직 보류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A 씨 측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이유는 김 씨의 사기 혐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A 씨의 아버지는 김 씨에 대해 “신인인 딸을 케어해 주는 조건으로 김 씨가 6개월마다 홍보비 6000만 원, 매니저 급여와 음반 지급비, 방송 출연 비용 등 약 1억 6000여 만 원을 요구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가운데 방송 출연 비용이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 쓰였다는 것이다.
소속 가수임에도 소속사가 일절 투자하지 않고 가수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 것에 대해 의심도 품었지만, 계약서를 작성할 때나 비용 문제 등이 거론될 때마다 문희옥이 함께했다. 이 때문에 그를 믿고 “딸을 위한다”는 마음에서 지불해 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문희옥도 대표 김 씨의 사기 행위를 인지한 상태에서 그를 보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문희옥에 대해서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는 것.
문희옥은 녹취록에서 후배 여가수 A 씨의 가족과 가수 주현미를 언급하며 “(성추행 사실을 밝히면)이들이 다칠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A 방송 화면 캡처.
문희옥의 소속사는 대표와 문희옥을 동급으로 보는, 문희옥 ‘1인 기획사’처럼 알려져 있다. 다른 가수들이 단기간 몸을 담긴 했으나 주력으로 내세우는 가수가 문희옥뿐이기 때문이다. 대표인 김 씨는 문희옥의 매니지먼트를 전면적으로 담당하다가 현재는 김 씨의 아들이 문희옥과 피해자 A 씨 등의 활동을 보조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기독교 신자로 유명한 문희옥과 ‘영적 동역자’로 불릴 정도로 믿음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옥이 불교신자였던 김 씨를 단식까지 불사하며 기독교로 이끈 이야기는 그의 주된 간증 레퍼토리로도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사건이 보도된 뒤 트로트 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의 중심이 된 문희옥은 물론, 소속사 대표 김 씨도 업계에서 익히 잘 알려진 유명 인사였기 때문이다. 종교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만큼 별 다른 추문에 휩싸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 분(김 씨)이 트로트 분야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런 류의 풍문조차 없었다”라며 “사건 이야기를 듣고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그 분이 어쩌다 그랬나’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딱히 나쁜 소문이 없던 사람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사건이 보도되자 문희옥은 지난 2일 공식 입장을 내고 “가요계 선배로서 아끼고 사랑한 후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한 저의 조언들이 서툴렀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협박, 사기와 같은 범죄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고 이 사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향후 수사 절차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희옥은 피해자 A 씨에게도 사죄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A 씨 측은 “절대로 고소 취하는 없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대해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문희옥이 자신의 지위와 그에 따른 영향력이 A 씨에게 미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침묵을 요구함에 따라 A 씨가 신고를 망설이도록 한 점 등을 보면 충분히 협박의 고의가 인정될 것”이라며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라고 덮기에는 문희옥이 A 씨에 대해 바라는 바(고소를 하지 않는 것)가 너무 명백하다”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