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대 경험 부족 채울 마지막 퍼즐
지난 3일 입국한 토니 그란데·하비에르 미냐노 코치.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축구대표팀은 어느 순간 선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질타의 대상이 됐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 ‘코칭스태프 인원이 적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신태용 체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표팀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며 경험 많은 외국인 코치 영입 계획도 발표했다. 신태용호에 합류할 코치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토니 그란데,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로 결정됐다.
그란데·미냐노 코치는 커리어 대부분을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에서 보냈다. 특히 지난해까지 스페인 대표팀에서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과 함께 스페인 대표팀의 2012유로·2010월드컵 우승 등에 힘을 보탰다. 그뒤 두 사람은 지난 유로 2016 이후 코칭 스태프직을 내려놨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수석코치를 맡은 그란데 코치는 지난 1월 스페인 언론 <엘 컨피덴셜>과의 인터뷰에서 “축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한다“라며 ”중국과 인도에서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3명의 손주와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약 10개월이 흘러 그는 한국 대표팀 코치직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해 축구협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코치님의 구체적인 설득 과정까지는 모른다. 다시 한 번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기부여로 크게 작용한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대표팀은 외국인 감독 등 코칭스태프 인선 과정에서 국내 거주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이번에 영입된 스페인 코치들은 대표팀 소집 훈련 기간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지낼 계획이다.
커리어 상당 부분을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왼쪽에서 두번째)과 함께한 그란데 코치. 사진=대한축구협회
스페인 현지에서 ‘늙은 여우’로 불리는 그란데 코치는 그만의 준비성과 전략으로 유명하다. 델보스케 감독도 수석코치로서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의 신뢰는 지난 유로 2012 당시 포르투갈과의 4강전 일화에서 알 수 있다.
스페인 현지에서 발행된 대표팀 뒷이야기를 다룬 책에 따르면 델보스케는 승부차기 진행에 앞서 키커 순서를 그란데 코치에게 물었다. 그는 이미 10번 키커까지 순서를 정해놓고 있었다. 델보스케는 이를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그러던 중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순서 변경을 요구했고 델보스케 감독과 그란데 코치는 이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스페인의 승리였고 기세가 오른 그들은 우승컵까지 차지했다. 그란데의 준비성과 선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커리어 후반부에는 이전과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풍부한 메이저대회 경험은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경력만을 따져본다면 기존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다.
두 스페인 코치의 합류 이전까지 수석코치 역할을 해온 전경준 코치는 2008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연령별 대표팀 코치를 주로 맡아왔고 신 감독과 함께 2016년 리우 올림픽, 올해 열린 20세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골키퍼 지도를 맡고 있는 김해운 코치는 2010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도 20세 월드컵에 골키퍼 코치로 참가했다.
‘2002 월드컵 스타’ 김남일·차두리 코치도 신태용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도자 경력 1~2년차로 ‘코칭스태프의 경험부족’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타깃이 됐다. 선수시절에는 해외 리그, 월드컵 등 큰 무대 경험이 많지만 지도자로서 경력은 길지 않다. 차두리 코치는 성인 대표팀 코치 라이선스가 없음에도 전력분석관 자격으로 슈틸리케호에 승선해 뒷말을 낳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은 2005년 호주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09년 친정팀 성남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국내 무대 지도자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선수시절 K리그에서 모든 것을 이뤘던 그는 지도자로도 승승장구했다. K리그 2위에 올랐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는 아시아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한 기록이다. 각급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다수의 대회에서 팀을 이끌어왔지만 전세계 강팀들이 모이는 월드컵은 처음이다.
대표팀 코칭 스태프에 그란데·미냐노 코치는 큰 무대경험이라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스페인 대표팀에서만 유럽선수권대회, 월드컵, 컨페더레이션스컵 등 6개의 큰 대회를 치렀다.
대표팀에 경험이 채워졌다고 해서 낙관적 전망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권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감독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코치가 부임해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생(감독)과 1947년생(수석코치)이라는 연령 차이가 불안요소로 거론되기도 한다. 역할과 권한 면에서 적절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반론도 존재한다. 그란데 코치는 오랜 기간 수석코치로만 활동했다. 1997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하위팀 감독을 맡다가 이후로는 수석코치를 맡아왔다. 또한 델보스케 감독 이외에도 파비오 카펠로, 존 토샥, 거스 히딩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과 두루 손발을 맞췄다.
이들은 보통 자신만의 ‘사단’과 함께 움직이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남아있던 그란데 코치를 기꺼이 껴안았다. 이에 자신의 색깔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감독에 융화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경력이 많다고 해서 월권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표팀 훈련을 함께 지켜보는 코칭스태프. 사진=대한축구협회
대표팀은 새로운 코치와 첫 소집훈련을 시작했고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스페인 코치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선수들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외국인 코치 영입에 대해 “긍정적인 면이 많다”면서 “선수 개인 기량이 확 좋아지거나 전술이 화려하게 바뀌는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유럽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기에 정보력이나 경험 등 큰 대회를 앞두고 시간이 지나며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코치 영입이 팀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했다.
김 해설위원은 함께 영입된 미냐노 피지컬 코치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현대 축구에서 피지컬 코치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그는 “지난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지 않았나”라며 “세계적인 피지컬 코치를 영입한 부분은 협회가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