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행’ 에스컬레이터 ‘하행’으로 시범 전환 계획 ‘논란’... ‘여론 수렴 절차’ 전무...노인단체, 서울교통공사 등 반대 목소리 ‘솔솔’
박원순 서울시장 썸네일
최근 에스컬레이터가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서울시가 노약자, 중장년층, 구두를 신은 여성을 위해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운행하는 곳을 하행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계획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신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크고 낙상 위험이 있다는 점이 이번 정책의 취지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론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 정책에 따른 시범 사업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벌써부터 서울시 정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체감상 계단을 오를 때 더욱 힘이 들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시 측은 “시범사업이다.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남녀갈등의 조짐도 보입니다. 노인단체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엇갈리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박 시장이 계획을 수립하면서 최소한 ‘여론’ 수렴 절차는 충분히 거친 것일까요? <일요신문i>가 ‘지하철 상행 에스컬레이터 방향 전환’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추적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
이번 정책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일요신문i> 취재 결과, 서울시 문화본부 디자인기획팀은 최근 ‘유니버셜 디자인 적용 확산을 위한 일방향 에스컬레이터 운행개선 추진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울시 교통안전본부 관계자는 “디자인기획팀에서 공문을 받았습니다. 일반인, 노인, 구두신은 여성, 무릎이 안 좋은 중년층, 어린이는 계단을 내려갈 때 조금 더 힘이 들어요.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두 대 이상 설치된 역의 에스컬레이터 중 하나를 시범적으로 하행으로 바꿔보자는 뜻입니다”고 밝혔습니다.
11월 16일 증산역에서 시민들이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사진이 보이시나요? 지하철역 출구엔 보통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57개 지하철역에 이같은 에스컬레이터는 141대가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의 일환으로 출구에 상행에스컬레이터만 두 대 이상이 설치된 망원역(6호선), 증산역(6호선), 우장산역(5호선), 수락산역(7호선)을 시범역사로 선정했습니다. 출구가 좁기 때문에 이들 4개 역의 일부 출구는 계단 옆에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상태입니다. 이곳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뜻입니다.
서울시 디자인기획팀 관계자 역시 “검토 단계입니다. 4개 역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할 계획은 맞아요.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있는 역을 전부를 일괄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라며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불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현재 서울시 지하철역의 90% 정도가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상태입니다. 이중 일부의 방향을 전환해 하행을 선호하는 분들을 위한 선택가능성을 주겠다는 뜻입니다”이라고 밝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본지기자와 무릎 엑스레이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은 ‘의학적 이유’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디자인팀에서 국립재활원에 자문을 의뢰했습니다. ‘노인, 여성, 어린이는 물론 중년층도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연골 마모가 발생하고 십자인대가 손상될 위험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계단을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무릎에 무리가 가고 부상의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물리치료사는 “계단을 오른발로 먼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무릎은 구부러진 상태에서 펴집니다. 하지만 내려갈 때는 디딤발 역할을 하는 왼발의 무릎 각도가 서서히 좁아집니다. 오른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때까지 근육이 계속 수축하기 때문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대한노인회 홈페이지 캡처 사진.
하지만! 노인단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서울시의 ‘이상’과 노인들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부분입니다. 민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은 “오히려 내려가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무릎이 아픈 일반인이나 노약자들은 지하철역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됩니다. 이동권 보장이 충분히 된 상황입니다. 하행으로 바꾸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의 거의 모든 지하철역에는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습니다.
전국 최대의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 입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노인회 서울시 연합회 관계자는 “올라갈 때는 천천히 오르니까 무릎 부담이 적습니다. 내려갈 때는 잘 안 됩니다. 불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은 다르죠. 올라갈 때가 많이 힘이 듭니다. 노년층에게 설문을 해보면 이번 계획에 찬성하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역사마다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엘레베이터가 별도로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역마다 혼잡도를 고려한다면 운행이 역부족일 수박에 없습니다.
누리꾼들도 냉담한 반응을 드러냈습니다. 한 누리꾼은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에스컬레이터가 한 대 밖에 없는데 현행 상행을 하행으로 바꾼다니…오르막을 올라가기 힘들다는 훨씬 많습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누리꾼 역시 “도대체 어느 XX 같은 공무원의 아이디어인가요. 제발,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상식에 맞는 정책을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꼬집었습니다.
뽐뿌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 캡처 사진
이번 계획은 ‘구두신은 여성’을 위한 배려도 담겨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운동역학 전문가들이 조사를 했습니다. 여성은 키가 작거나 힐을 신는 경우 계단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높아져 무릎을 굽히는 각도가 커지고 가해지는 압력이 큽니다”고 전했습니다.
재활치료사들에 따르면 높은 굽의 구두나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는 계단을 오를 경우보다 관절에 상당히 무리가 간다고 합니다.
하이힐 신은 여성 사진.
하지만 ‘남녀갈등’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우리가 왜 여자들을 위해서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나”라는 여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번 정책이 오로지 여성을 위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탓입니다.
서울시 문화본부 디자인기획팀 관계자는 “단언컨대, 구두신은 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여성을 포함해 무릎이 불편한 노약자, 중장년층, 어린이를 위한 계획입니다. 모든 역사를 전부 바꾸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국립재활원에 자문을 받은 결과 상행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것은 확실히 운동역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젊은층 의견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김 아무개 씨(여․28) 씨는 “선심성 행정 같아요. 내려갈 때 어려움이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쉬엄쉬엄 내려가면 됩니다. 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란 소리인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아무개 씨(여․32)는 “X청한 정책이에요. 힐을 신으면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갈 때가 조심스러운 것은 맞습니다. 관절에 더 무리가 갑니다. 하지만 가끔 올라가는 게 힘든 상황이 더 많습니다. 차라리 상행 에스컬레이터에 하행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하는 것이 형평에 맞습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용 아무개 씨(여․31)은 “지금 상태를 만족하는 사람이 많으면, 발전이 없어요. 시범 운영이라면 일단 찬성합니다. 돈이나 노력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원래 내려갈 때가 무릎에 더 무리가 가요”고 설명했습니다. 정 아무개 씨(30)도 “지하철역 이용자 특성 고려해서 조정하는 것인데 너무 과하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라고 보탰습니다.
망원역 이미지 캡처
그렇다면, 서울시가 시범역사로 검토중인 망원역(6호선)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16일 역에서 만난 김 아무개 씨(여․75)는 “아주 바람직합니다. 꼭 필요해요. 내려갈 때는 무릎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가만히 서있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바쁠 때는 내려갈 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싶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망원역은 출구가 두 곳뿐입니다. 1번과 2번 출구에 상행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지역입니다. 김 아무개 씨(여․25)는 “여기는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역 자체가 계단이 높고 경사가 가파른 경우를 많이 봤어요. 과일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못 찾아서 서성이는 어르신들도 많이 봤습니다. 하행 에스컬레이터가 필요합니다”고 전했습니다.
증산역 이미지 캡처
하지만 증산역(6호선)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증산역은 지하철 승강장 양쪽에 상하행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됐지만 4개의 출구 중 2곳에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장소입니다.
김 아무개 씨(여․65)는 “상행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것이 편합니다. 왜 바꾸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구두 신은 여성이 불편을 느낀다면, 신지 않아야 합니다. 그 정도는 감수하고 자신이 있으니까 뾰족 구두를 신고 나오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한 아무개 씨(75)는 “졸속 정책입니다. 노인들도 올라갈 때 부담이 커요. 아예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됩니다. 차라리 상행에스컬레이터의 방향을 바꾸지 말고 하행을 동시에 설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라고 전했습니다.
서울시 지하철 1호선~8호선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 측은 이번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울시 정책이라면 적극 협조하겠지만 의문입니다. 교통약자를 위해서는 이동선이 이미 확보된 상황입니다. 지하철을 많이 안 이용해본 연구관이 추리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하행 에스컬레이터로 방향을 전환해달라는 민원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그런 민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상하행 에스컬레이터가 동시에 설치된 역사가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은 바꾸면 상당한 반발이 들어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든 게 현실입니다. 세부사항이 없이 우리들한테 시행해보자고 제안을 하니…”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이번 계획을 실행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박원순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유니버셜 디자인’ 정책 때문입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신체의 다양함, 언어능력, 감각능력, 인지능력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어린이,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 등 시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업입니다.
서울시 유니버셜 디자인 정책 통합 가이드라인 캡처.
서울시가 유니버셜 디자인 정책의 통합 가이드라인에 따라, 에스컬레이터에도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도 “유니버셜 디자인을 추진하면서 연령, 국적, 성별과 관계없이 이용자 전부를 고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수가 편하다는 이유로 고려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 번 시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박 시장은 수많은 시민들과 노인단체, 심지어 교통공사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요?
취재 결과, 서울시는 이번 계획을 수립하면서 의학적인 자문에 방점을 찍었을 뿐,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듯합니다. 서울로7017 슈즈트리 논란에 이어 박 시장이 또 다시 헛발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살짝 걱정이 됩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