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트럼프도 반한 실력에 역사적 대기록까지…이정은, 4관왕 쓸어담고 ‘6’ 꼬리표 떼고
US오픈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박성현. 연합뉴스
[일요신문] 시즌 마지막 대회를 마치며 한국과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가 마무리됐다. 올해도 한국 여자골프는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며 세계 골프 강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LPGA)에서는 박성현, 한국 여자프로골프투어(KLPGA)에서는 이정은이 유감없이 자신의 이름을 빛내며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지난 시즌까지 한국 여자프로골프투어 아이돌이자 여제로 군림했던 박성현은 올해 미국으로 진출했다. 그는 첫해에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39년 만의 기록이다. 박성현이 자리를 비운 국내에서는 이정은이 새로운 여제에 등극했다. 지난해 ‘우승 없는 신인왕’에 올랐던 그는 올해 4월 첫 우승으로 물꼬를 트더니 전관왕을 달성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데뷔 첫 해 3관왕, 39년 만의 기록
박성현의 미국무대 진출은 과정부터 남달랐다. 그는 Q스쿨을 거치지 않았고, LPGA 투어 우승기록도 없었다. 간간이 대회에 출전해 상위권에 오르며 누적 상금만으로 시드를 획득했다.
시즌 첫 대회부터 3위를 기록한 신인 박성현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5월 말 열린 볼빅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감을 찾았다. 6월 내내 10위권대에 오르며 숨을 고른 그는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자신의 첫 L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의 라운딩을 지켜보며 칭찬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승을 맛본 박성현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첫 우승 이후 치른 9개 대회에서 ‘톱10’ 6회를 기록했다. 캐내디언 퍼시픽 오픈에서는 우승컵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시기 박성현은 신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는 선두자리를 렉시 톰슨에게 내주며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기록은 23개 대회에 참가해 우승 2회, 톱10 11회. 최고의 신인에게 주어지는 신인왕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그는 신인왕 외에도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3관왕에 오르게 됐다.
박성현의 3관왕에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의 결과에 따라 올해의 선수상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박성현은 3라운드 부진의 여파로 공동 6위를 차지했다. 반면 올해의 선수상 경쟁자인 렉시 톰슨은 호조를 보이며 우승경쟁을 벌였다. 그는 우승을 다투는 마지막 홀에서 50cm 퍼팅을 놓쳐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올해의 선수상은 박성현과 유소연의 공동수상으로 돌아갔다.
박성현과 이정은은 지난해 KLPGA 시상식에서 고진영과 함께 나란히 선 바 있다. 왼쪽부터 박성현, 고진영, 이정은. 연합뉴스
박성현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관왕 소감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해낸 건지 아직 잘 실감이 안난다”면서 “올해의 선수상은 나중에 결정이 나서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다. 그래도 역시 수상은 기분이 좋다. 뿌듯하고 만족스런 한 해였다”고 말했다. 다만 “마지막 대회가 좀 아쉽기는 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사실 쉬고 싶어서 대회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또 막상 시즌이 끝나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무한 느낌이 든다. 아쉬운 순간들이 떠오른다”면서 “올시즌은 처음이라 많이 즐기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더 재미있게 시즌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성현 KLPGA 빈자리 채운 이정은
국내에선 단연 이정은이 돋보였다. 이정은은 시즌 초반까지는 이름 뒤에 ‘6’이 붙었다. KLPGA에 등록된 동명이인이 많아 이들과 구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언론에서도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땐 꼭 6이 따라왔다.
하지만 시즌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그의 이름 뒤 6이 떨어졌다. 이제는 이정은이라 하면 다른 이가 아닌 그를 떠올린다. 이정은이 올해 KLPGA 대상, 상금왕, 다승왕, 최소 평균타수 등 모든 상을 휩쓸었기 떄문이다.
이정은은 박성현이 미국에 진출하며 자리를 비운 KLPGA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신인왕을 거머쥐었지만 우승컵은 들지 못했었다. 자칫 부담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시즌 초반 이른 시기에 첫 우승에 성공하며 부담감도 털어냈다.
우승을 맛본 이정은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지난 6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우승으로 2년 시드권을 확보하니 더 공격적이고 자신감 있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시즌이 끝난 현재에도 이정은은 첫 우승이 이번 시즌 활약에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2일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 우승이 아니었다면 시드 확보를 하려 안정적으로만 하려고 했을 것 같다”면서 “우승으로 시드를 확보해 놓으니 2승, 3승을 위해 공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 시즌 전관왕, 우승 4회를 거둔 성적에 대해 “계획보다 성적이 좋아서 만족한다. 시즌 전에는 상금랭킹 10위 이내에 드는 게 목표였다”며 웃었다. 이정은은 올해 유일하게 상금으로 10억 이상을 벌어들이며 상금왕을 거머쥐었다.
이정은은 현재 KLPGA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미국 진출은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해 US오픈에 참가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생애 처음 미국 땅을 밟으며 ‘경험하는 자리’라고 말했던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미국 진출 계획은 없다. 그는 “내년 일정에 따라 종종 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면서 “이번 시즌 KLPGA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아쉽게 놓친 대회도 많다. 잘 준비해서 내년에 더 좋은 성적 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프로골프투어 출신 골프교습가 장훈석 프로는 올 시즌을 돌아보며 “박성현은 전성기 박인비 보다도 팬들에게 더 큰 환호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특유의 파워풀한 퍼포먼스가 주효한 것 같다. 다만 롱런을 위해서는 체력적인 보강이 중요해 보인다. 정신력이 워낙 좋은 선수이기에 내년 성적이 더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이정은에 대해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면서 “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다가도 사라진 선수가 많다. 주변에서도 관리를 하겠지만 본인이 더 노력해서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