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때 “애 취급 말라우…난 대장 동지야”
▲ 김정우 사진은 후지모토 겐지 씨가 2001년 3월 31일 원산초대소에서 김정운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 ||
<주간문춘>에 따르면 김정운의 이름을 들먹이며 ‘소란을 떨고 있는’ 것은 북한을 제외한 해외 언론뿐이라고 한다. 정작 북한 내에서는 정운이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운의 과거 또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의 아들이며 형인 정철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 유학했다는 정도의 정보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김정일의 사랑과 지옥>의 저자이며 국제정세 분석가인 엘리엇 시마에 따르면 “김정일 일가의 규칙 중 얼굴을 공공에 드러내거나 김정일의 허락 없이 인쇄물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다. 이 때문에 외국에 드나들 때는 가명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에 나타난 정철이 일본의 후지TV에 찍힌 적이 있었다. 이에 김정일이 격노하여 정철의 스케줄 담당자를 숙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언론에서 공개된 정운의 어린 시절 사진의 출처가 바로 13년 동안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다. 문제의 사진은 2001년 3월 31일 원산초대소에서 정운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후지모토는 “원산초대소에서 밤늦게 정운과 술자리를 갖게 됐다. 그 자리에 네 권의 앨범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앨범을 슬쩍 들여다보자 세 달 전에 열린 정운의 18세 생일 파티 때 후지모토와 정운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있었다. 후지모토가 그 사진을 갖고 싶다고 하자 정운은 대신 어렸을 적의 사진을 주며 “이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아버지에게도 비밀이다”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이것이 그때까지 세계 각국의 정보부도 손에 넣지 못한 정운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진 경위다.
사진 외에도 후지모토만이 알고 있는 정운에 대한 정보가 또 있다. 바로 그가 북한에서 썼던 일기장이다. 그가 10년 이상 북한에 있으면서 일기를 썼는데 우연히 들통이 나면서 모두 몰수당했다. 이번에 <주간문춘>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일기장은 2001년부터 몰래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안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정운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후지모토가 정운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연회에 모인 당의 최고 간부들에게 “아들들을 소개하겠다”고 말하자 연회장이 술렁였다. 그때까지 최고 간부들조차도 정철과 정운의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복 차림의 어린 정철, 정운 형제가 나타났다. 이때 정철의 나이가 아홉 살, 정운의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길게 늘어선 간부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던 정운은 후지모토의 차례가 되자 그를 노려보며 손을 내밀려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를 하도록 타이르고 나서야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첫 만남은 어색하게 끝났지만 그 후 후지모토가 이들 형제의 놀이 상대가 되면서 점점 친해졌다.
당시 주위에서는 정철을 ‘대대장 동지’ 정운을 ‘소대장 동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운이 12세가 되던 해 고영희의 여동생, 즉 이모가 자신을 “소대장 동지”라고 부르자 정운은 “아직도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인가!”라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 후 정운의 호칭은 ‘대장 동지’로 바뀌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독재자의 기질(?)이 엿보이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형 정철과는 달리 정운은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하루는 정운이 사촌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정철의 훈수로 게임에 지자 정운은 게임판을 정철에 얼굴에 던져버렸다. 정철은 깜짝 놀랐지만 정운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정운과 둘만 통하는 암호도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3월 18일의 일기를 보면 “아침 8시 반에 바깥에 나가자 왕자님(정운)이 러닝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V하러 가자’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V란 담배를 가리키는 둘만의 암호였다고. 아직 10대였던 정운은 후지모토를 자신의 벤츠에 태운 후 산 밑의 주차장으로 가서 차 안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비밀이었다. 후지모토가 음식 재료를 사러 유럽에 갈 때마다 ‘이브생로랑’ 담배를 열 보루씩 사왔다고 한다.
정운이 힘든 일을 겪을 때도 후지모토는 곁에서 이를 지켜봤다. 2001년 2월 16일의 일기에는 “왕자님의 상태가 이상했다. 무리하게 술을 마시고 울고 있다. 어머님(고영희)의 일 때문인가?”라는 내용이 있다. 이날은 김정일 위원장의 58번째 생일파티가 있는 날이었지만 연회장에 고영희의 모습은 없고 당시 비서이자 애인이었던 ‘김옥’이 앉아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유방암을 앓았던 고영희는 파리에서 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 김정일 위원장과 김옥이 연회장을 떠나자 정운은 술을 들이키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3년 후 고영희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과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막내아들인 정운을 가장 사랑했다는 김정일 위원장. 두 사람은 친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애인에게 빼앗긴 채 이복형제와 경쟁하며 자라는 등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성격으로 자랐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이 난무했지만 김정일 일가를 가까이서 지켜본 후지모토만은 처음부터 정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지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정운의 실체에 대한 그의 이야기 또한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거칠고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어렸을 적부터 두각을 드러냈다는 삼남 정운이 이어받은 독재국가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