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도사’냐 ‘탄소사냥꾼’이냐
▲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환경 문제 강연에 나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 ||
현재 고어의 직업은 환경운동가 외에도 투자가, 작가, 강연 전문가, 케이블 방송국 대표, 기업체 고문 등 여러 가지다. 사정이 이러니 수입원 또한 여러 곳인 것은 당연한 일.
지난 2007년 미 경제전문지 <패스트 컴퍼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고어의 자산은 최소 1억 달러(약 1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을 떠날 당시만 해도 버지니아주 저택과 테네시주 농장을 포함해 200만 달러(약 23억 원)도 채 되지 않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늘어난 셈이다.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주된 수입원은 강연료, 인세, 스톡옵션 그리고 기업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 등이다.
전 세계를 돌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고어는 연간 150회의 강연을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수원에서 열린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받는 강연료다. 현재 그는 회당 17만 5000달러(약 2억 원) 혹은 시간당 10만 달러(약 1억 1000만 원)를 받으면서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액 연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밖에도 고어는 정계를 떠난 직후였던 지난 2001년, 당시만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였던 ‘구글’의 고문을 맡은 데 이어 2003년에는 ‘애플’의 이사진에 참여하는 등 사업가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고어가 두 회사로부터 받은 스톡옵션의 가치는 현재 각각 3000만 달러(약 350억 원) 및 600만 달러(약 70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것처럼 고어의 자산을 빠른 속도로 증식시켜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투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벤처투자기업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PCB)’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 회사로부터 매달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과거 아마존, 구글 등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얻은 바 있는 실리콘밸리의 최대 규모 투자회사로 현재 태양에너지 및 대체에너지를 비롯한 환경관련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근래 들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어의 연봉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얼마 전 발표한 투자계획, 즉 ‘실버 스프링 네트워크’사에 7500만 달러(약 88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실버 스프링 네트워크’사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소규모 기업으로 차세대 전기효율화 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 그리드’ 관련업체다.
이때까지만 해도 KPCB의 투자계획은 사람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34억 달러(약 4조 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자 이 투자 계획은 곧 논란에 휩싸였다. 이 가운데 5억 6000만 달러(약 6600억 원)가 오바마 정부에 의해 스마트 그리드 사업체로 지정된 ‘실버 스프링 네트워크’사에 투자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사업에 투자했던 고어는 가만히 앉아서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게 됐다.
사정이 이렇자 일부에서는 고어를 가리켜 ‘탄소 장사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런 비난은 고어가 투자하는 환경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높아질 때마다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고어가 환경기업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테네시주 공화당 의원인 마샤 블랙번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고어는 자신이 의회에 압력을 넣고 있는 에너지 및 기후변화 정책들을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는가 하면, 제임스 인호페 오클라호마 공화당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마크 모라노는 “고어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장된 표현과 지나친 걱정으로 논쟁을 왜곡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비난에 대해 고어는 어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이 벌어들이고 있는 수입 가운데 막대한 부분을 친환경 에너지 및 기술 개발 회사에 투자하는 한편, 자선단체나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은 로비스트가 아니며, 의회나 정부에 자신의 투자에 이득을 가져다 주는 어떠한 요구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게 뭐가 잘못됐는가?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투자 활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계속해 온 나의 활동 가운데 하나다. 시민의 한 명으로서 지금까지 동일한 정책들을 지지해왔다. 친환경 기술 개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나의 가치와 신념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가 지난 30년 동안 친환경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유가 그저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어는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의 자산이나 수입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때문에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 그의 순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다. 분명한 것은 지난 8년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환경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한 후 내쉬빌과 버지니아에 각각 수백만 달러의 새 저택을 구입했는가 하면, 2007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고급 콘도 한 채를 매입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캘리포니아주의 친환경관련업체에 투자하는 ‘캐프리콘 인베스트먼트’의 헤지펀드에 3500만 달러(약 41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막대한 자산가라는 점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