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뻔뻔해도 아내는 꿋꿋했다
▲ 위부터 아래로 실다와 엘리엇 스피처 전 주지사. 첫사랑과 재혼한 도나 하노버. 엘리자베스와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제니와 마크 샌퍼드 주지사. 디나 매토스와 짐 맥그리비 주지사. | ||
미국에서는 정치인들의 외도 스캔들이 터지면 꼭 TV에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스캔들 주인공인 정치인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처참하거나 혹은 의연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본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함께 치욕을 겪어야 하는 정치인들의 아내가 바로 그들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고,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의 아내인 실다 월 스피처, 그리고 짐 맥그리비 뉴저지 주지사의 전 부인인 디나 매토스도 그랬다.
이들은 과연 어떤 심정들로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물론 가정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가장 우선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정치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어려운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이런 ‘교과서적인 역할’을 거부하는 정치인 아내들도 늘고 있다. 지난 6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부와의 밀애가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했던 마크 샌퍼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아내인 제니 샌퍼드는 남편의 굴욕적인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에드워즈 역시 남편이 외도 사실을 시인하는 방송에 동반 출연하지 않았다.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의 아내인 실다는 지난해 남편의 콜걸 스캔들로 한바탕 치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기자회견을 하는 남편 곁을 꿋꿋이 지키고 서있었던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이었으며,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할 정도로 의연한 모습을 보여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스피처 부부가 얼마 못 가 갈라설 것이라고 수군댔었다. 하지만 스피처 부부는 지난해 12월 결혼 21주년을 맞아 보란 듯이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공개하면서 이런 소문들을 불식시켰다.
스피처 부부의 한 친구는 “현재 이들 부부는 가족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세 자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쾌활하고 강하게 잘 견뎌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실다는 지난 3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는 살면서 이런저런 도전에 직면하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힘을 발휘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현재 실다는 자신이 설립한 아동자선단체인 ‘칠드런 포 칠드런’에서 일하면서 자선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스피처 전 주지사는 가족 소유의 부동산회사에 근무하면서 부동산 투자가로 변신, 뉴욕의 시티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인 실다는 변호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남편이 뉴욕주 검찰총장에 출마하자 모든 일을 그만두고 내조에 충실해왔다.
지난 2002년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과 이혼했던 도나는 이듬해 고등학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변호사 출신의 에드 오스터와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줄리아니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그녀가 이혼했던 이유는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줄리아니가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주디스 네이선과 외도를 하면서 16년 동안 이어오던 결혼생활을 일방적으로 끝내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도나는 TV 방송에 출연한 줄리아니에게 ‘공개 이혼’을 당하는 치욕을 견뎌야 했다. 몇 시간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결혼생활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결국 680만 달러(약 78억 원)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했다.
줄리아니는 이혼 10개월 만에 네이선과 재혼을 했고, 도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보란 듯이 오스터와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배우이자 영화평론가이기도 한 그녀는 이혼 후에는 두 자녀의 양육에만 집중해왔다.
도나는 아직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하면서 “당시에는 어떠한 화장을 해도 깊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혼 후 용감한 태도를 보이려고 했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이혼하지 않고 남편 곁을 지키고 있는 실다 스피처와 엘리자베스 에드워즈와 같은 여성들이 존경스럽다. 정말 대단히 용감한 여성들이다”고 말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전해 듣고는 절규했다. 욕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고 말았다.”
유방암 투병 중에도 헌신적으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돕던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회고록 <회복>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드워즈가 2006년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에드워즈는 자신의 선거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던 릴리 헌터라는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지만 곧 관계를 청산했다고 밝혔었다.
직접 남편으로부터 이 사실을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출마를 포기할 것을 권유했지만 남편은 출마를 강행했고, 결국 그녀는 묵묵히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와야 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터진 남편의 스캔들 후속 보도와 사생아 출산 등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그녀가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드워즈가 지난해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에 홀로 출연해서 혼외정사 사실을 고백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런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엘리자베스가 과연 남편 곁을 지킬까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외도 사실을 고백하던 날 “이번 일은 우리 둘만의 개인적인 문제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힌 용기 있는 남편이 자랑스럽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세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유방암 투병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5300만 달러(약 610억 원)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한 측근은 “말도 안 된다. 에드워즈 부부는 자신들이 그만한 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코웃음을 쳤다”고 전했다. 또한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측근은 “에드워즈 부부는 현재 이혼할 뜻이 전혀 없다”고도 말했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채플힐에 가구점을 열어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세이빙 그레이스> <회복> 등의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때 월스트리트의 금융인이었던 그녀는 정치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고 남편의 최측근 참모로서 남편의 정치활동을 도왔다. 마크 샌퍼드의 전 대변인은 “제니가 없었다면 샌퍼드는 주지사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남편이 아르헨티나의 여성과 ‘천생연분’ 운운하면서 외도 사실을 밝혔을 때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스캔들이 터진 후 그녀는 네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서 따로 살고 있으며, 현재 자서전 <스테잉 트루>를 집필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책이 꼭 심각한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정치 무대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고해성사’를 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날 옆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그녀는 따로 성명을 발표하면서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결혼생활을 다시 정상화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해 이혼할 뜻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었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한 태도로 일관했던 그녀에에 사람들은 ‘훌륭한 여성’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영웅이다” 혹은 “당장 주지사 선거를 한다면 모든 여성들이 아마 제니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짐 맥그리비 뉴저지 주지사의 아내였던 디나는 남편과 이혼한 후 현재 싱글맘으로 지내는 한편 희귀병인 선천성부신과형성(CAH)을 앓는 아동들을 돕는 ‘케어스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동성애자였던 남편이 커밍아웃을 선언하자 곧바로 이혼했던 그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한 인터뷰에서 “다시 사랑을 하고 싶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다면 다시 사람을 믿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자서전 <사일런트 파트너>에서 그녀는 남편이 기자들 앞에서 커밍아웃을 하던 순간 자신이 재클린 케네디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당시 남편 곁에 서 있었던 그녀는 침착한 태도를 보였으며, 심지어 남편을 향해 미소를 짓고 따뜻하게 껴안아 주는 등 품위를 잃지 않았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