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취하하면 돈 줄게” 도피 중 또 속여
캄보디아 슬롯머신 사기 사건의 주범이 박 씨는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건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5월 피해자 중 한 명인 손 아무개 씨에게 이 아무개 씨(40)가 찾아온다. 평소 약간의 안면이 있던 그는 자신의 누나인 이 아무개 씨(41)와 사실혼 관계인 박 아무개 씨(38)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업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박 씨가 수천억 원대 자산가라 믿을 만하다면서 박 씨의 회사인 제이더블유매칭컴퍼니에 돈을 빌려주면 월 20%를 매달 말일에 지급하는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을 소개한다. 이 회사는 해외 온라인 카지노 사업, 용산에서 전자제품을 덤핑으로 사와 온라인에서 정상판매하는 마진 사업, 부실자산채권을 인수해 돈을 받아내는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한다고 했다.
손 씨와 친구인 최 아무개 씨는 이 이야기에 혹하게 된다. 만약 1억 원을 투자하면 1년 동안 받는 이자수익만 2억 4000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씨가 말한 사업은 다양했다. 처음 손 씨는 5000만 원, 최 씨는 2000만 원가량을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이자는 처음부터 받기 어려웠다. 이 씨는 차일피일 미루거나 연락이 안되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 씨와 최 씨는 1주일이 지나서야 이 씨와 연락이 닿게 된다. 그는 해외 카지노 사업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어 연락이 안됐다며 곧 이자를 준다고 한다. 이자가 처음 들어오고 나서 그는 박 씨와 한 번 만나보라며 자리를 주선한다. 이때 이 씨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월급 받고 20%에 달하는 이자까지 받으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돈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차에 회사에 직접 들어가 보겠다는 생각에 두 명은 회사에 취직까지 하게 된다.
취직하게 된 손 씨와 최 씨는 대표인 박 씨를 만나게 된다. 그는 둘에게 캄보디아 호텔 카지노에 슬롯머신을 빌려주면 저절로 수익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며 또 다른 사업에 투자하라는 제안을 한다. 사업은 구체적으로 ‘슬롯머신 한 대당 660만 원을 투자하면 매달 20%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둘과 이 씨의 누나 등을 데리고 캄보디아에서 직접 보라며 같이 떠나게 된다.
이 여행에는 이 씨의 누나와 아끼는 동생까지 참여하게 된다. 이 씨의 누나는 텐프로 마담 출신이며 아끼는 동생과 유흥 업계 자금을 많이 끌어왔다. 이들은 텐프로 아가씨, 직원 등에게 영업해 돈을 끌어오고 끌어온 돈의 매달 6%를 수익으로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캄보디아 최고급 호텔과 카지노에서 막대한 돈을 쓰면서 즐겼고 돈을 물 쓰듯 쓰는 모습을 보면서 손 씨와 최 씨는 박 씨의 자금력에 확신, 돈을 더 투입하게 된다.
실제로 캄보디아 카지노 공사 현장을 봤고, 강원랜드 등 해외 카지노 사업을 조사해보니 1년 동안 슬롯머신 기계 가격 대비 훨씬 큰 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조사했다. 특히 박 씨가 “둘은 우리 회사 직원이니 100만 원 할인된 560만 원에 한 대씩 팔겠다”는 말에 마음이 동하게 됐다. 손 씨는 슬롯머신 25대 가격을 지불했고 최 씨도 10대 가격을 지불했다.
박 씨가 피해자들에게 제시한 크라우드 펀딩 수수료 표.
이후 8월쯤 박 씨는 둘에게 회사의 급한 거래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회사가 곧 높은 이윤을 쳐서 갚아줄텐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달랬다. 수중에 돈이 없었던 둘에게 한 곳 한 곳 대출을 받으면 대출 기록이 쌓여 대출 금액이 적다며 러시앤캐시, 리드코프, 롯데캐피탈 등 제2, 제3 금융권에서 한 번에 대출 받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이들은 5000만 원, 2000만 원씩을 대출을 받아 회사에 줬다. 이렇게 쌓인 돈이 손 씨는 3억 3000만 원이 넘고, 최 씨도 1억 5000만 원이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12월이 될 때까지 직원으로 일했던 손 씨와 최 씨는 8월쯤 350만 원 월급을 한 번 받은 이외에는 월급도 받지 못했다. 이자도 두 번 이외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손 씨와 최 씨는 회사에 돈 달라는 피해자들이 찾아오면서 사기임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12월이 되자 통장에는 돈이 말랐고 누구에게 줄 돈도 없었다. 박 씨가 캄보디아 출장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 씨와 최 씨는 해외 도피를 확신하고 고소를 하게 된다. 박 씨는 1월에도 한국에 왔다 갔지만 체포영장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현재는 박 씨의 체포영장이 나온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 씨는 수천억대 자산가도 아니었으며 명품 시계, 투견 사업 등으로 사기 전과가 있는 전과자였다. 전과 때문에 회사 대표 명의도 박 씨의 사촌동생 명의를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 둘은 뒤늦게 회사를 정리하다 발견한 장부를 보자 충격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박 씨와 이 씨, 이 씨의 누나가 모두 짜고 자신들과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자료를 찾은 것. 투자는 애초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돈이 입금되자마자 이 씨 누나가 개인적으로 돈을 찾아가는 거래 내역이 몇 번이나 포착됐다. 박 씨, 이 씨, 이 씨 누나 등은 슬롯머신을 구매하고자 온 고객들의 카드를 가지고 성형외과 시술, 카드깡 등 개인적으로 편취한 흔적도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경찰의 안일한 대처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박 씨를 붙잡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 씨와 이 씨 누나의 조사가 강하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이 씨 누나는 계좌 내역만 보더라도 최소 10억 원의 돈을 인출한 흐름이 보이는데도 조사가 한두 번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조사는 적절히 했다. 한 번이나 두 번 필요한 만큼 했다”고 반박했다.
박 씨가 캄보디아로 숨어들었고, 이 씨와 이 씨의 누나는 박 씨가 잡히기 전에는 사건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유흥업종 투자자들은 대부분 돈을 다 받거나 캄보디아에서 관광하며 즐긴 비용이 있기 때문에 피해가 크지 않다고 한다.
진짜 피해자들은 노인들이 대다수고 퇴직금 등 필수 자금을 날린 경우가 많다. 박 씨는 “캄보디아에서 일이 잘 풀리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고소를 한 사람은 돈을 주지 않겠다. 고소를 취하해야 돈을 준다”고 말해 이들에게 고소 취하를 받아내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돈을 주지 않고 기만을 이어가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처음 피해자 중 50~60%가 고소취하를 했지만 또 속았다는 허탈감에 다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손 씨와 최 씨는 회사에서 투자자를 돌려보내다 한 패로 엮여 박 씨, 이 씨, 이 씨 누나 등과 함께 같이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손 씨와 최 씨도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아직도 제3금융권에서 대출받은 돈의 이자만 내기도 벅차다. 손 씨는 “돈을 받는 일은 이미 포기했다. 박 씨, 박 씨의 사촌동생, 이 씨, 이 씨 누나의 처벌만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