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관은 내진설계 없어도 재질상 안전…필로티 구조 가스 시설은 문제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서울에서 지진 나면 다 죽는다’는 괴담이 퍼지고 있다. 괴담은 구체적으로 서울에서 지진이 나면 지하에 매장돼 있는 다량의 가스관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인명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지난 21일 국내 가스관은 내진설계가 안 돼 있어 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더 커져만 가고 있다.
가스관 폭발 위험을 이야기하는 카톡 대화 캡처.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수치상 불균형이 훨씬 심각하다. 수도권은 2004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됐기 때문이다. 서울은 전체 7459㎞ 가스관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은 1868㎞에 불과해 내진 설계가 도입되지 않은 배관이 5591㎞에 이른다. 경기도는 전체 9873㎞ 중 내진 설계가 도입된 배관이 3268㎞으로 도입되지 않은 배관이 6605㎞나 된다. 인천은 전체 2221㎞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배관이 896㎞다. 1325㎞는 내진설계가 돼있지 않은 것.
이처럼 수치상으로만 보면 내진설계가 도입되지 않은 배관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 등 도심 인구 밀집 지역의 경우 그 상황이 더 심각해 보인다. 좁은 면적에서 10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의 경우가 도시가스가 가장 빨리 공급된 만큼 내진설계 비율이 25%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요신문>의 팩트체크 결과 내진설계에 관해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먼저 내진설계가 국내에 도입된 계기는 고베 대지진이 기원이다. 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6.9 규모의 강진으로 6434명 사망, 3명 실종, 4만 3792명 부상에 재산피해가 당시 가치 100조 원에 이르는 심각한 재난이었다. 당시 고베 대지진에서는 가스관이 폭발해 곳곳에 불이 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에도 내진설계가 도입된다. 당시 국내에는 내진설계는커녕 제대로 된 기준조차 없었기 때문에 관련 규정과 기준을 만들고 도입하는 데 몇 년씩 걸리게 됐다. 그 결과 2000년 1월 1일부터 가스 시설에 내진설계가 도입됐고, 4년이 지난 2004년부터 가스 배관에도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이렇게만 보면 내진설계가 도입 안 된 가스관이 심각해 보이지만 사실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내진설계가 도입됐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진설계 이전과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국내 가스관이 일본보다 훨씬 늦게 도입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내보다 수십 년 먼저 도시가스가 도입됐기 때문에 가스관 재질이 비교적 낮은 기술인 주철관으로 된 경우가 많다. 현재를 놓고 봤을 때도 주철관의 비율이 60%가량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가스관은 훨씬 늦게 도입됐기 때문에 주철관은 없고 성능이 좋은 PLP나 PE로만 구성돼 있다. 지진이 심각한 일본에서조차 PLP 배관이나 PE 배관의 사고사례가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한다. 사고 사례는 주철관에 대한 사례만 있다. 주철관은 재질도 문제지만 연결할 때 쓰는 나사 접합방법도 PLP나 PE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이유로 2002년 지진공학회를 통해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국내 가스관을 내진성능평가를 통해 점검했을 떄 이미 내진 1등급 판정을 받았다. 내진 1등급은 1000년에 한 번 나올 가능성이 있는 규모 6.3에도 붕괴되지 않는 설계를 목표로 한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내진 TF팀 관계자는 “국내는 PLP와 PE 배관만 쓰기 때문에 이미 1등급이며 내진설계 적용은 했지만 적용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내진 TF팀은 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후 내진 관련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신설된 조직이다.
오히려 지진 선진국이라는 일본이 2030년까지 현재 60%를 차지하고 있는 주철관 비율을 낮추고 PLP 혹은 PE의 비율을 60% 이상으로 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조차 약 15년 후를 목표로 세울 만큼 수만 ㎞에 이르는 가스관을 교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도시가스가 비교적 늦게 도입된 게 오히려 호재가 된 셈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가스시설이다. 설계 방식 등 총체적으로 점검할 사항이 많다.
반면 오히려 2000년도에 내진 기준이 도입된 가스시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항 지진 직후 ‘필로티 구조’로 지은 건물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필로티 구조는 주변에 있는 빌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차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1층을 비우고 벽면 없이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방식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저장 시설 중 필로티 방식 혹은 또 다른 위험이 있는 방식으로 지어진 게 있는지, 어느 정도 규모의 내진설계가 돼 있는지를 전수 조사할 계획이다. 다만 가스시설마다, 담고 있는 가스의 종류에 따라 내진설계가 달리돼 생각보다 오래 걸릴 전망이다. 약 5년 이후에나 그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장 걱정이 많은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아 보인다.
한국가스안전공사 TF 관계자는 “조연성, 불연성보다는 가연성, 독성가스를 담고 있는 시설 위주로 한국가스안전공사가 2022년까지 조사할 계획”이라며 “가스관도 내진설계 적용 유무나 내진설계 1등급보다는 국민들이 알기 쉽게 전체 가스관이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에 버틸 수 있는지를 내년까지 발표할 목표로 예산을 수립했다. 또한 국내 가스관도 30년에 가까울 정도로 오래된 만큼 성능저하 등 노후화로 인한 영향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잘 휘는 만큼 뚝 부러짐 없어’ 경주·포항 강진에도 가스관 끄떡없는 이유 2016년 관측 이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2016년 9월 12일 5.1, 5.8 규모의 지진이 경상북도 경주에서 발생했다.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지진도 최근 경주 인근인 경상북도 포항에서 일어났다. 경상북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큰 지진이 일어났지만 경상북도의 가스관은 별 탈 없이 무사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경상북도의 가스관은 전체 2410km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내진 기준이 적용된 이후에 설치된 배관이 1409km, 적용 이전 설치된 배관이 1001km다. 다만 이 같은 통계는 최소 규모가 도, 혹은 광역시 규모로 나오기 때문에 경주시, 포항시의 가스관 상황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용 이전과 이후는 큰 차이가 없다. 즉 우리나라의 가스관은 적용 이전이나 이후 모두 PLP, PE 재질의 관으로 돼있기 때문에 내진 설계 적용이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이것이 경주와 포항의 가스관이 무사한 가장 큰 이유다. 두 번째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스관의 내진 성능이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가스공사에서 2002년 지진공학회를 통해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국내 가스관을 내진성능평가 통해 점검했을 때 지진구역 1구역, 지반의 종류 S2등급으로 가장 가혹한 조건에서 내진등급 1등급을 받기 위한 실험을 했다. 이때 배관이 잘 움직여줘야 실제 지진이 났을 때 땅과 같이 움직여줘야 부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때 가로방향 5cm 이상 기준으로 56.58cm를 기록했다. 세로방향도 2.5cm 기준으로 96.5cm를 기록했다. 생각보다 가스관의 유연성이 큰 셈이다. 한국가스공사 내진 TF팀 관계자는 “가스관의 지진 안전도는 일본이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현] |
혹시라도 가스관에 문제 땐? ‘모니터링 통해 밸브 원격 차단’ 가스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떨까.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진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일본의 경우에도 지진이 발생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가스관이 잠기진 않는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류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별다른 지진도 아닌데 공급관이 차단돼 더 큰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진 경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가 지진이 발생하면 원격으로 가스관을 잠근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동으로 가스관을 컨트롤하지 않고 원격으로 조절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진계측기를 통해서 지진 값이 오면 도시가스 상황실로 자료가 전달된다. 상황실에 있는 상황근무자가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밸브를 원격으로 차단시킨다. 그렇다면 혹시 별다른 지진이 아니었음에도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가스관에 균열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될까. 한국가스안전공사 내진 TF 관계자는 “균열이 생기면 당연히 파악이 된다. 원격검지기가 중간중간 설치돼 있어 바로 알 수 있다”고 답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