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용(롯데마트) 도성환(홈플러스) 홍완선(국민연금)…대구고 출신 ‘이너서클’ 코너 몰려 추락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 의원은 박근혜 정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성준 기자
최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나란히 권력의 최정점에 자리했다. ‘청와대 안주인은 김기춘, 바깥주인은 최경환’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경제부총리 시절 만들어진 신조어 ‘초이노믹스’는 최 의원의 막강한 위세를 대변했다. 대구고를 중심으로 연세대가 뭉친 소위 ‘최경환 인맥’은 정·관계는 물론 재계와 금융권까지 영토를 넓혔다.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마지막 남은 ‘퍼즐’이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모금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최 의원과 평소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안종범이 학자로서 자존심이 굉장히 센데 BH(청와대) 지시만큼은 잘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서 BH는 일반적인 의미로 박근혜·최순실이지만 다른 ‘권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안 전 수석은 지난 14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징역 6년을 구형받고,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보다 앞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개입해 삼성 측에 특혜를 제공한 의혹을 받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대구고 출신인 홍 전 본부장은 최 의원과 모교 동문회에서 활발히 교류했으며, ‘최경환 인맥’의 핵심으로 꼽힌다. 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 의원의 연세대 경제학과 1년 후배로 국민연금 이사장 내정 때부터 ‘최경환 인맥’이란 평가를 받았다. 문 전 장관은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공교롭게도 대구고 출신 동문회 주요 인사 가운데는 유독 삼성 전·현직 임원이 많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삼성 주요 계열사 임원을 지낸 이낙토 동우트레이딩 대표, 한용외 전 삼성전자 사장, 이수철 전 삼성물산 부사장, 최상진 전 에버랜드 전무, 변재봉 전 삼성종합기술원 상무를 비롯해 현성철 삼성카드 부사장, 김동환 삼성라이온즈 대표가 모두 대구고 출신이다.
또 삼성 오너의 차명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된 김인 삼성SDS 고문, 삼성중공업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CJ그룹 창조경제추진단장을 지낸 김춘학 CJ건설 대표, 한독경제인회 회장으로 최순실 일가와 커넥션 의혹이 일었던 양해경 전 삼성전자 사장도 모두 대구고를 나왔다. 이 중 양해경 전 사장은 안종범 전 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에 이름이 메모돼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최 의원의 아들은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대구고 동문이 운영하는 삼성전자 하청업체 K 사는 박근혜 정부 초기 주가가 1만 원대에 불과했지만 최 의원이 경제부총리가 된 2015년 4만 원 가까이 치솟았다. 현재는 다시 1만 원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최 의원과 삼성, 대구고를 연결 짓는 수상한 정황은 또 있다. 박영수 특검팀이 지난 4월 법정에서 공개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은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과 통화에서 이욱 전 감사원 공직감찰본부장의 감사원 사무총장 임명을 반대한다. 당시 삼성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따른 감사원 감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감사원 사무총장은 각종 감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해 감사원장보다 실권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이 전 본부장은 사무총장에 임명되지 못했고, 그 자리는 최 의원의 대구고 동기 이완수 전 서울고검 검사가 꿰찼다. 이 전 검사는 옛 삼성 특검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변호를 맡았고, 대구고 동문회 내 고시합격자 모임인 ‘고시 달구회’ 회장을 역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완수 사무총장 시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감사 개입이 무척 노골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고 김광재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고시 달구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2014년 이른바 ‘철피아’ 사건에 연루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철피아 사건을 조사한 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무마 청탁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철도업계 관계자와 정치권의 설명을 종합하면 고 김광재 전 이사장은 평소 최 의원과 친분을 주변에 말했지만 실제 수사가 진행됐을 당시 최 의원이 고인을 비호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고인이 사망하면서 철피아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재계 일각에선 롯데그룹 수사 당시 숨을 거둔 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사인’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최 의원은 고인과 고향(경북 경산) 선후배 사이며,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당시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과 대구고 동문회를 통해 오랜 기간 교류했다. 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도 대구고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롯데와 최 의원 간 유착설이 제기된 배경이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면서 소진세 위원장은 그룹 내 영향력을 다소 잃었다. 최 의원과 친분이 도리어 인사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노 전 대표는 일찌감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8월 2심에서 금고 3년을 선고받았다. 신동빈 회장은 면세점 특허 획득 로비 혐의로 기소돼 지난 14일 징역 4년을 구형받고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최 의원과 유착설이 있던 정·재계 인사들은 상당수가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최 의원과 관련한 인연을 입에 담진 않는다. 대구 출신 재계 관계자는 “최 의원을 위시한 대구고 동문이 굉장히 끈끈하다”며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 당시 직간접적인 이득을 봤고, 대구고가 이전까지 월등한 명문고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최 의원에게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금융권에선 이른바 ‘대구고 프리미엄’이 임원 인사의 화두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KB금융그룹은 대구고 출신을 요직에 중용하면서 여러 뒷말을 낳았다. 최근 부행장에서 행장으로 승진한 허인 KB은행장, 김윤태 KB데이타시스템 대표,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 등이 모두 대구고 출신이다. 또 KB금융이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을 인수하면서 사외이사로 영입한 심재호 전 삼성생명 전무도 대구고를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KB손해보험 인수전 당시 KB금융과 경합했던 인수 후보가 롯데였다. 즉 최 의원과 유착 의혹을 받는 회사 두 곳이 나란히 KB손해보험 인수전에 참여한 것이다.
이 밖에 금융권에선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과 구동현 산은캐피탈 대표, 권재완 전 공무원연금 자금운용본부장이 ‘최경환 인맥’으로 분류된다. 4대 금융사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임원 인사 때 대구고 출신을 우대하려는 분위기는 분명히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물론 최 의원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외부 인사에 개입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 의원의 한 측근은 “근거 없는 마타도어”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최 의원의 존재가 재계와 금융권 인사에 변수로 작용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사장으로 승진한 조갑호 LG 부사장, 신상문 LG 디스플레이 부사장, 김 아무개 LG디스플레이 전무 등도 모두 대구고 출신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