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인증 앱 깔면 악성코드…OO캐피탈 콜센터에 전화해도 ‘놈’들과 연결
조 씨는 이 씨의 말대로 B 저축은행에서 20% 후반의 고금리로 1700만 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이 씨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기존 고금리 대출을 갚는 ‘대환대출’을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이 씨는 기존보다 10% 정도 낮은 17% 금리를 제안했다. 당연히 조 씨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 씨는 조 씨에게 본인증명이 필요하다며 모바일에서 접속할 주소를 알려줬다. 해당 주소로 접속하자 A 캐피탈 홈페이지와 동일한 화면으로 본인 인증 화면이 나왔고 본인 인증을 하자 A 캐피탈 앱이 설치가 됐다. 여기까지는 조 씨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상담원은 조 씨에게 B 저축은행으로 전화해서 대환대출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라고 했다. 또한 추가 대출금을 받기 위해서는 일부를 납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금액은 550만 원이었다. 조 씨는 B 저축은행 대표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대환대출 의사를 표시했다. B 저축은행 대표전화로 걸어 전화기에 B 저축은행 로고까지 보였다.
악성코드를 이용한 신종 보이스피싱이 출현했다.
조 씨는 B 저축은행 직원과 통화를 해서 다른 곳에서 금리를 낮춰주기 때문에 대환대출을 받고 싶다며 일부를 납부하겠다고 했다. 직원은 엉뚱하게도 개인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조 씨는 왜 개인 계좌번호에 돈을 넣어야 하냐고 묻자 직원은 ‘대환대출은 원래 그렇다. 팀장 계좌로 돈을 넣는다’고 답했다. 조 씨는 당장 돈이 없어 주변에서 돈을 빌렸다. B 저축은행 대표전화로 걸었고 평소 듣던 안내멘트 음성이 나왔기 때문에 큰 의심 없이 돈을 넣었다.
이상한 점은 조 씨는 평소 지갑 없이 삼성페이를 주로 쓰는데 대출 신청 직후부터 갑자기 삼성페이가 먹통이 됐다. 삼성페이에서는 악성코드가 깔려 있다면서 A 캐피탈 앱을 지우라는 메시지가 나와 앱을 지웠다. 조 씨는 “단순한 프로그램 충돌로 생각해 이때도 전혀 의심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승인이 곧 날거라는 상담원의 말과 달리 승인은 나지 않았다. A 캐피탈 상담원은 조 씨에게 ‘승인이 나지 않았다’며 ‘추가로 100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상담원에게 “아까는 난다더니 왜 승인이 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상담원은 “추가 대출 안 받으실 거면 취소해도 된다”고 말했다. 조 씨는 당장 돈이 필요했고, 파격적으로 금리를 낮춰준다는 조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중에 ‘100만 원 있는 게 전부다’라고 호소하니 상담원은 ‘99만 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100만 원도 아니고 99만 원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추가로 돈을 구해 입금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서류 한 장 준 게 없고, 심지어 대출금을 입금할 계좌번호도 묻지 않았는데 대출이 가능한지 의심스러워 질문했고 상담원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몇 시간 뒤에 입금이 된다고 했고 B 저축은행 대표번호로 전화한 만큼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에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없는 번호입니다.” 입금을 약속했던 번호로 조 씨가 전화를 걸자 흘러나온 음성이었다. 보이스피싱이었다. 조 씨는 입금했던 계좌로 지급정지 신청을 했고 경찰서에 신고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돈은 빠져나간 뒤였다.
최근 저축은행권에서는 신종사기 주의보가 내려졌다. 사진은 모아저축은행 홈페이지 경고문 캡처.
기존 보이스피싱은 검찰, 경찰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전화 받은 사람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그 돈을 검찰에 입금하라는 식이었다. 의심 많은 사람이라면 해당기관에 문의해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는 정도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종 보이스피싱은 대담하게도 악성코드를 깔아 대표번호로 전화하더라도 벗어날 수가 없다. 보이스피싱 조직 손 안에서 놀아나는 셈이다.
특히 조 씨는 자신의 대출금과 금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 인증을 하게 됐다. 조 씨는 금융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을 의심한다. 하지만 B 저축은행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례는 없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비슷한 사건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저축은행에서도 조 씨 사례와 거의 똑같은 상황을 묘사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악성코드를 심어 콜센터로 전화해도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전화가 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조 씨는 “나는 이미 돈은 거의 포기한 셈이다. 사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법이 너무 뛰어나 화도 안 나는 상황이다. 다만 나 같은 피해자를 막고 싶은 마음뿐이다”라고 털어놨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