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블랙리스트’ 대표 지시 정황, 악성 루머 유포 의혹도…레진 측 “간담회 결과 기다려 달라”
해외 수익 정산 지연, 지각비 조항 논란에 이어 사측에 비판적인 작가에 대한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진 레진코믹스. 사진=레진코믹스 제공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레진코믹스 내에 ‘작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주간 연재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일부 작가들의 작품이 메인 화면에 뜨지 않고, 그보다 인기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더 많은 프로모션 이벤트를 통해 홍보되고 있었기 때문. 심지어 메인 홍보에서 배제된 작가의 작품은 신작이 연재되더라도 공지가 올라오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고도 한다.
대다수 작가의 작품은 신작 연재나 분기별로 공지, 메인 프로모션, 이벤트 등으로 홍보돼 왔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 할지라도 노출이 되지 않으면 실적을 올리기 어렵다. 프로모션을 전적으로 사측에 맡기고 있는 작가들은 SNS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작품을 홍보할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회사가 홍보해 주지 않으면 작가들은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앞서 레진코믹스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작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프로모션은 사측 고유의 권한이고 인기도와 독자 충성도, 홍보 효과 등을 종합해서 결정한다. 외력이 개입될 여지는 추호도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에게 블랙리스트를 제보한 한 작가는 “작가나 독자들이 요일 별로 어떤 작품이 가장 인기가 높은지 모를 리가 없다. 조회 수는 물론이고 독자들의 반응도 항상 최고를 달리던 작품이 연재 내내 거의 홍보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라며 “그 작품의 작가가 이제까지 레진코믹스의 문제를 앞장서 비판해 왔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납득했다. 의혹으로만 넘겨짚었던 일들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트위터에 레진코믹스의 고료 미지급 건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던 미치 작가가 첫 타깃이었다. 그는 “레진코믹스가 유료결제 작품의 세이브 분량 고료를 안 주다가 작가가 주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원래 주는 게 맞는데 깜빡했다고 고료를 돌려줬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레진코믹스의 프로모션에 미치 작가의 작품은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은송 작가도 비슷한 시기 미치 작가의 레진코믹스 비판 글에 힘을 실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2016년부터 건강검진 등 레진코믹스가 홍보해 왔던 ‘작가주의’가 실상은 허울뿐임을 지적해왔던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은송 작가는 사측에 웹툰 작가의 명절 연휴 휴일 지정 등을 요구해 왔다. 작가에게 최저한의 휴가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도 총대를 메고 앞장서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지난해 5월부터 레진코믹스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트위터에 “서울시 예술인 불공정 피해상담 센터가 있다.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레진코믹스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 장르별 인기작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레진코믹스 캡처
그 직후, 그의 작품 <양극의 소년>이 레진코믹스의 모든 이벤트 프로모션에서 누락됐다는 것이 피해 작가들의 주장이다. 인기 순위가 전연령 탑 10~20위권에 올라갔고, 장르별 순위권에서도 1위를 유지해왔던 작품이었다.
지난해 7월 2부 연재 시작 이후에도 레진코믹스의 메인 홈페이지에서 은송 작가의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들을 담당하고 있는 레진코믹스의 PD도 은송 작가에게만은 배제됐다. “PD를 너무 힘들게 하는 작가라서 아무도 당신을 맡고 싶지 않다고 한다”는 것이 레진코믹스의 입장이었다고 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작가들은 자신이 ‘악성 루머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레진코믹스 사태 공론화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회색 작가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레진코믹스에서 무협만화 <월한강천록>을 연재했던 회색 작가는 초기 레진코믹스가 월 매출 최대 25%가량을 차감하는 지각비 조항을 개설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한 협상에 참석했던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앞서 레진코믹스의 중국 진출 후 정산금 지급 지연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론화에 일조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하는 4년 동안 일요일(연재일) 1위를 거의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레진은 그 일 이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벤트나 광고, 프로모션을 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외 정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계약을 해지하자, 그 직후 작가에 대해 “다른 플랫폼에서 돈을 많이 주고 데려가려고 하는데 정상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방법이 없자 아픈 것을 핑계로 멀쩡한 PD 하나를 잡아 트위터 상에서 누명을 씌워 골로 보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레진코믹스 소속 다른 작가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소문을 들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실제로 ‘문제의 작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관리하라는 대표 차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폭로됐다. 지난해 12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안에 따르면 레진코믹스 한희성 대표가 지난해 5월 내부 회의에서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이벤트에서 미치, 은송 작가의 작품을 노출시키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앞선 미치, 은송 작가들이 트위터에 레진코믹스 문제를 공론화하던 시점과 동일하다.
미치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지목된 이후 어떠한 이벤트(프로모션)에도 해당되지 못해 수익은 반의 반토막이 됐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라며 “제가 목소리를 낸 것은 작가님들이 저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겪으실까 염려돼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회사는 저의 작품을, 저라는 작가를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작가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작가들의 SNS에 레진코믹스에 대한 비판 글이 이어지자, 사측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작가들에게 전체 공지 메일을 보내면서 “개별적으로 체결한 작가님의 계약조건을 제3자 및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거나, 건전히 비판이 아닌 왜곡된 사실과 의견으로 신뢰도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경우(중략) 부득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해 작가들은 이를 “프로모션 전면 배제와 블랙리스트 조치”로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 청원. 3일 기준 마감까지 이틀가량 남은 가운데 7만 7379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미 앞선 문제 제기를 통해 레진코믹스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만큼 이 같은 폭로가 허위 사실이라면 레진코믹스 측은 이미지 회복을 위해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요신문>은 레진코믹스 측으로부터 대표의 작가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직접 지시 전달과 이른바 ‘작가 죽이기’ 사안과 관련해 “완전히 허위 사실”이라는 확답조차 듣지 못했다. 의혹에 대한 모든 답은 간담회 이후 밝히겠다는 것이 레진코믹스의 입장이다.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질의에 대한 답변을 거절하며 “회사 운영과 관련된 내용은 작가 간담회를 통해서 상세히 밝히고자 한다. 앞으로 운영 방향과 이제까지 제기됐던 의혹, 현안 등을 작가님들과 먼저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언론을 통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양일간 이어질 작가 간담회에서조차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은 무기한 연재 중단에 들어갔다. 이미 레진코믹스에 계약으로 묶인 작품에 대해서도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작가들도 피해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피해 작가, 특히 이미 계약이 해지된 작가에 대해 레진코믹스가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간담회 자체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