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국 진출 이후 3년간 정산 전무…“옆구리 찔러야 그제서야 지갑 열어”
‘독자 대거 탈퇴 사태’ 등 숱한 사건사고와 위기를 넘어온 레진코믹스에게 이번 세무조사 청원은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사진=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는 2014년 10월 중국 진출의 첫 문을 열었다. 텐센트의 ‘큐큐닷컴’, 시나닷컴의 ‘시나웨이’, 산다게임즈의 ‘유이치’ 등 중국 내 만화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에 레진코믹스의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방식이었다. 한 달 만에 113만 명의 독자를 확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한국 웹툰의 중국 진출 청사진을 보이는가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중국 내에서 웹툰을 실제로 구매해 구독하는 독자의 수가 현저히 적었던 탓이다. 또한 이미 자국 작가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한국 웹툰이 유의미한 수익을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한국에서는 월 1000만 원 이상의 유료 수익을 내던 톱 작가들도 중국에서는 월 10만 원도 되지 않는 수익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정이 알려진 것도 중국 첫 진출로부터 3년 뒤인 최근이다. 레진코믹스는 2015년 일본과 미국 내 서비스 진출에 대해서는 약력으로 밝히고 있지만 중국 진출은 거의 알린 바 없다. 2014년 사업 초반에만 언론 보도로 몇 건 나왔을 뿐, 레진코믹스가 중국에서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어느 정도의 수익을 거뒀는지에 대한 상세한 확인은 어렵다. 이런 와중에 결국 한 작가의 폭로가 터져나오면서 레진코믹스 측이 애초에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해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작가 A 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저는 레진코믹스에 2년 만에 돈을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공개했다. 그는 레진코믹스의 중국 진출 초기였던 2014년부터 중국 포털 사이트에 작품을 연재해 왔다. 그러나 수익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 답변을 요구하자 레진코믹스는 “에이전시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에이전시 측이 입금을 한 번(첫 수익 정산)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미정산 내역이 더 있는지 파악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 에이전시는 중국 현지에서 레진코믹스와 중국 포털 사이트 간 연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작가들에 따르면 계약 상 레진코믹스는 해외 수익과 관련해서 6개월에 한 번 작가에게 고지하고 분기별로 고료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A 씨는 2015년 7월, 중국 진출 첫 수익 정산(2014년 11월~2015년 5월) 분을 지급받은 이래로 레진코믹스로부터 단 한 번도 수익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 수익 정산 문제가 대두되자 레진코믹스는 지난 9월 부랴부랴 밀린 수익을 정산하고 해명문을 내놨다. 해명문에 따르면 레진코믹스의 중국 수익 정산이 늦어졌던 이유는 “에이전시를 끼고 비독점방식으로 중국 내 여러 플랫폼에 연재해 플랫폼 별로 정산내역 확인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같은 작품이어도 국내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익인 탓에 최종 정산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을 거치고 나서야 작가들에게 배분해야 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산이 어려웠던 이유는 “2015년 7월 1차 정산이 이뤄진 뒤 에이전시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에이전시 측이 정산 내역을 보내는 과정에서 누락 자료가 발생했는가 하면 정해진 제출 일자보다 늦게 자료가 넘어오기도 해 미처 면밀한 확인이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레진코믹스의 해명문을 읽으면 언뜻 보기에 ‘해외 수익 정산 문제는 에이전시의 늑장 정산 탓’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해당 에이전시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2014년부터 올해까지 레진코믹스와 계약을 유지한 기간 동안 모든 월별 정산 내역을 레진코믹스 측에 넘겼다. 만일 한 번이라도 누락됐다면 당연히 레진코믹스 측에서 항의를 했을 것이나 그런 항의조차도 받은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2014년 진출 이후 중국 내에서 레진코믹스가 내는 수익이 국내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는 사실은 레진코믹스가 밝힌 바와 같았다.
그러나 수익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레진코믹스는 이와 같은 사정을 작가들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까지 전혀 살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단순히 레진코믹스 측의 해명대로 ‘시스템의 미비’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등 사소한 사안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
레진코믹스는 2013년 6월 총 55억 원 상당이 지원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 웹툰 미디어 지원에서 코믹플러스 및 툰부리·타파스틱(컨소시엄) 등과 함께 선정됐던 바 있다. 중국 진출을 앞뒀던 이듬해 4월에는 엔씨소프트로부터 5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사업을 위한 거금을 지원 받고도 국내를 제외한 해외 사업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청원하는 글.
실제 <일요신문> 취재 결과, 레진코믹스는 2015년 일본 진출 이후로도 정산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마저도 작가들이 직접 확인 후 회사를 찾아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인원이 부족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는 답변만을 받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또 다른 피해 작가는 “레진코믹스에 해외 사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팀이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문제를 발견해 얘기하면 그제야 ‘지금 알았다’라며 보완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레진코믹스 해외 수익 정산 문제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작가 A 씨 이후로 현재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작가들, 계약이 해지된 전 작가들 등이 한 목소리로 ‘투명한 정산’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난 7일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대중들의 비판에 기름을 부었다. 레진코믹스는 8일 이에 대한 해명글을 올렸으나 정작 정산과 관련해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됐던 사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답변으로만 일관해 빈축을 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