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 과실 땐 왜 보상 안해줘…지각비 걷어 어디다 썼는지 아리송”
지각비 논란으로 또 다시 SNS를 뜨겁게 달군 레진코믹스. 사진=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의 ‘지각비’ 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이 지펴진 것은 이달 초다. 암 투병 중이지만 힘겹게 연재를 이어나가는 작가 A 씨에게도 꾸준히 지각비가 차감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기에 지각비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까지 연이어 불거지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작가들에 따르면 레진코믹스는 월 4회 이상 지각할 경우 연재 수익의 최대 9%를 차감한다. 정확하게 액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 작품별 매달 총 수익에 따른 것이므로 인기 작가의 경우 지각할 때마다 거액을 뜯기게 되는 구조다. 지각비의 상한선도 없어 월 수익이 억대로 나오는 인기 작가들은 지각비로만 수천만 원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현행 제도도 작가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레진코믹스가 그나마 한 발 물러난 것이다. 애초 사측이 제시한 기준은 지각 1회당 전체 매출의 5%, 매주 지각할 경우 최대 25%의 지각비 차감이었다. 이런 내용을 통보 받은 작가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결국 초창기부터 레진코믹스와 함께했던 몇몇 작가들이 사측과 수차례 면담을 가진 뒤에야 겨우 현재의 월 최대 9%, 월 1회 지각은 지각비 면제 등의 조건으로 개정됐다.
레진코믹스 측은 “연재 일정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해 마련한 조항”이라며 “약속된 날짜에 작품을 주지 않으시는 소수의 작가님으로 인해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판단 하에 지각비를 적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레진코믹스 소속 작가들은 홈페이지 업로드 일 이틀 전까지 작품을 제출해야 한다. 그 이틀 동안 오탈자 교정이나 수정 등 편집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다. 작가는 작품을 제출하고 나서도 이 ‘편집 기간’ 동안 레진코믹스 웹툰 담당 PD들로부터 수정 연락을 받고 편집을 확인해야 한다. 결국 작가들에게 작품 제작을 위해 주어지는 시간이 일주일이 아니라 5일인 셈이다.
편집 등과 관련해 레진코믹스 측은 “레진코믹스 측의 과실로 인한 오류가 있을 경우 개별 사항마다 상호 만족할 만한 합리적인 운영상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레진코믹스 소속 작가 B 씨는 “레진코믹스는 작품에 문제가 있을 때 검수를 하고 이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 적이 거의 없다”라며 “레진코믹스 측의 과실로 인한 오류가 있을 경우 보상을 지급한다는 것도 ‘객관적으로 피해 규모가 산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보상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진코믹스 측의 업로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B 씨가 보상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피해규모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지각비’라는 제도를 만들어 작가들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레진코믹스가 발생시킨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레진코믹스 세무조사 청원’과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중들은 “지각비를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 레진코믹스가 2년 동안 작가들 해외 수익 정산을 지각한 것은 왜 지각비를 내지 않느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더욱이 지각비 시스템은 레진코믹스의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 외에 세부적으로 규정된 바가 없다. 지각 사유나 횟수에 따라 지각비가 감면 또는 부가 취소가 되는 기준도 정확히 정해진 것이 없어 담당 PD와 재무팀의 이야기가 각기 다르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이 없는 지각비 시스템 때문에 이미 마감을 늦추기로 협의한 지각에 대해서도 갑자기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게 작가들의 주장이다.
레진코믹스가 ‘지각비’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정작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는 점도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레진코믹스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정해놓거나 (지각비) 수입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꼬리표를 달아놓지는 않는다”라며 “최종적으로 재무팀에서 지각비를 포함한 수익을 확인하긴 하지만 정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장 웹툰 작가들의 관리를 맡고 있는 PD들조차 지각비의 사용과 관리 등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결국 용도나 목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천만 원 상당의 돈이 레진코믹스 측에 지속적으로 지급돼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는 2018년 2월 1일부로 지각비를 폐지하겠다는 발표에도 비난이 가라앉지 않자, 레진코믹스는 이제까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자리인 ‘레진코믹스 작가 간담회’를 12월 19일 개최한다. 그러나 작가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큰 이슈로 자리 잡고 있는 문제를 논하는 간담회를 전면 비공개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결국 이날 가장 민감한 문제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과정도 결론도 모두 비밀로 하겠다는 게 아닌가”라며 “마지막에 사측의 입맛에 맞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아마 그것만 공개할 것 같다”라며 씁쓸한 모습을 보였다. 작가들은 이날 간담회 진행 상황과는 별개로 레진코믹스의 해외 수익 정산 누락 등과 관련한 세무조사 청원은 지속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2월 15일 현재 청원 인원은 5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