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운명 놓고 주판 튕기는 정부 기관들
두 회사의 합병설은 2014년부터 불거졌지만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성동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공식적인 협상에 들어간 적은 없다. 당시 산업은행은 합병 의지가 있었지만 STX조선의 부실 규모가 성동조선보다 크다고 판단한 수출입은행이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동조선 채권단 관계자는 “합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었다”며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부 논의 정도는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회사끼리 합병해봤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4년이 지난 현재는 STX조선 채권단마저 합병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회생법원이 STX조선 회생절차 조기종결을 선언한 이후 경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STX조선 채권단 관계자는 “STX조선은 1500억 원 수준의 유동성을 갖고 있고 현재 수주 물량을 건조할 능력도 된다”며 “STX조선의 상황이 성동조선보다 더 나빴을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자본잠식 상태인 성동조선과 비교하면 기분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현재 합병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작업장 전경. 연합뉴스
두 회사 채권단은 모두 합병 논의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입장이 변수다. 정부는 부실 조선사 청산보다 회생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지난해 12월 8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원가절감 등 자구계획 이행을 가속화하고 선박 발주와 고용을 지원할 것”이라며 “2018년 초 주요 정책과제 및 프로젝트를 포함한 ‘조선산업 혁신성장 추진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해 “전문가들은 2~3년 후 조선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정부는 LNG연료선 중심으로 일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말해 조선업 지원 의지를 보였다.
금융권에서는 조선사 문제에 대한 주도권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STX조선과 성동조선에 대해 산업적인 측면의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라며 “앞으로 조선소와 관련한 구조조정 문제는 산업부가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논리는 지역사회의 경제를 모두 감안해서 보기 때문에 (국책은행의) 금융논리보다 포괄적인 개념의 정책논리”라며 “산업부는 기본적으로 산업편이기에 조선사를 청산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산업부가 합병을 주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사가 망가져갈 때부터 정부가 중견조선사 합병을 원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성동조선의 우수한 설비능력과 STX조선의 수주물량이 합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산업부는 합병에 대한 공식 의견을 자제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두 회사의 합병설은) 산업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고 업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면서도 “컨설팅, 실사 등을 통해 산업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회사의 합병 결정권은 채권단에 있다. 앞의 산업부 관계자도 “최종 결정은 채권단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정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인 국책은행은 정부 정책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라며 “산업 전반이나 지역 경제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 금융논리로만 결정하기 어렵다는 정부 입장이 있어서 채권단 마음대로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6월 STX조선해양 노조원들이 산업은행 앞에서 STX조선해양 회생을 요구하는 모습.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또 하나의 변수는 노동자들이다. 합병이 이뤄지면 중복 사업부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노동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병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관계자는 “(합병이) 조선소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논의해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일자리를 잃었기에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책을 갖고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삼정KPMG를 컨설팅업체로 선정하고 STX조선과 성동조선에 대한 실사를 시작했다. 금융권에서는 통상적으로 컨설팅에 걸리는 기간이 2개월인 점을 감안해 2월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합병설 역시 2월 이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유상증자에 실적악화…조선 빅3의 운명은 ‘조선 빅3’라고 불리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세 회사가 최근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24일 대우조선해양은 81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12월 6일에는 삼성중공업이 1조 5000억 원 규모, 20일 후인 26일에는 현대중공업이 1조 2875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지난해 6월 7928억 원, 8월에는 7991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매출을 10조 364억 원(2016년 39조 3173억 원), 삼성중공업은 7조 9000억 원(2016년 10조 4142억 원)으로 전망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사들은) 실적 부진의 이유로 수주 당시 대비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환율악화,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을 제시한다”며 “단순히 한 업체의 이슈가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수주 환경이 녹록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장의 의견은 다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주량이 늘고 있지만 배를 건조할 자금이 부족해 시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올해는 업계 전반적으로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수주 목표치를 달성했지만 배를 만드는 데는 1~2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19년이 돼야 실적으로 반영된다. 수주가 본격 실적으로 반영되기 전인 올해가 조선사들의 최대 고비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최진명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주 소식이 멈추지 않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2018년은 조선업 보릿고개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