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지방선거 승리 이끌면 ‘2기 내각’ 승선할 수도…홍준표 광역단체장 6곳은 이겨야 책임론 면해
무술년 한 해 정치일정은 숨 가쁘다. 신년 초 야권발 정계개편과 개헌론을 시작으로, 오는 6월 지방선거와 재보선,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 중·후반기 여야 대표 선수교체 등이 예정돼 있다. 주도권을 잡는 쪽은 꽃가마를 타고 ‘포스트 경쟁’에 뛰어들지만, 패배의 멍에를 쓴 쪽은 ‘정치적 절름발이’가 불가피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홍준표 자유한국당·안철수 국민의당·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4인의 생존 열차의 기적소리는 울렸다.
홍준표 추미애 대표.
혈투의 장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사는 단연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다. 추 대표의 지난 1년 반가량의 성적표는 A다. 추 대표는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계열 역사상 대구·경북(TK) 출신 첫 여성 당수에 올랐다. 탄핵정국을 거쳐 지난해 5·9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끌었다. 현재 당 지지도는 50% 안팎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추미애 호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이후 최고의 지지도인 정당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가 여야 대표 4인 가운데 운신의 폭이 가장 넓은 것은 이 같은 정치적 환경과 무관치 않다. 당장 추 대표는 ‘차기 서울시장 도전’과 ‘지방선거 진두지휘’의 갈림길에 섰다. 직접 선수로 뛸 수도, 총감독을 맡을 수도 있다.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변수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10년 혁명을 이루겠다”며 3선 도전 의지를 밝혔다. 그간 추 대표는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해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다는 책무에 충실할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다만 박 시장이 3선 도전으로 턴하면서 추 대표가 당권 장악으로 포지션을 이동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추 대표가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승리를 이끈다면, 정부 2기 내각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지점은 당·청 운명공동체론이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다. 수도권(서울 광진을) 5선인 추 대표는 헌정 사상 첫 지역구 여성 5선이라는 타이틀도 지닌 만큼, 상징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여성 장관 30%’에도 부합한다. 추 대표의 임기는 오는 8월 말까지다.
추 대표가 그간 내각과는 연이 적었다는 점도 입각설에 힘을 싣는다. 추 대표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 원내 진입한 직후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개혁추진위원회,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미·일 특사 등을 지낸 바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참여정부 때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후임으로 거론됐으나,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이해찬 민주당 의원 등 당 주류가 반대, 결국 무산됐다. 열린우리당 분당 당시 추 대표가 구민주계와 손잡고 민주당에 남은 일종의 괘씸죄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은 친문(친문재인)계와 함께 당 주류다. 추 대표가 이낙연 국무총리에 이어 행정부 수반 2인자에 오른다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이어 ‘여성 2호’로 기록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당시 실세였던 정동영 전 장관 등도 당 의장 이후 내각에 참여한 바 있다. 이 경우 이후 추 대표의 선택지는 ‘차기 대선’과 ‘첫 여성 국회의장’으로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악재도 있다. 고공행진 지지도의 딜레마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해서다. 만에 하나 민주당의 지방선거 결과가 기대치보다 낮을 경우 책임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여당의 아킬레스건인 공천 룰을 둘러싼 계파 갈등도 잠복한 위험요소다. 이르면 오는 2월 중 베일을 벗을 청와대발 독자 개헌론도 복병이다. 추 대표가 예상밖 브레이크에 걸린다면, 당 장악력을 급속히 잃을 수도 있다. 추 대표의 힘은 독자적이 아닌 친문계의 전폭적 지원으로 완성된 미완의 장악력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앞서 홍 대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트로이카 3인방’(서울 홍정욱 전 의원·부산 장제국 동서대 총장·경남 안대희 전 대법관)의 영입은 일단 불발됐다. 한국당은 “전략의 실패”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홍 대표가 인재영입을 진두지휘한다고 공언한 터라 적잖은 상처를 입은 모양새다. 한국당은 이들 중 일부를 재타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 운명을 가를 지방선거 커트라인은 17개 광역자체단체장 중 ‘6곳 승리’다. 영남 5곳(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과 수도권 1곳(인천) 등이다. 복당 요구를 받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이상 바른정당 소속) 등까지 합치면, 의외로 선전할 수도 있다. 홍 대표는 1월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광역선거가 잘못되면 6월에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광역자치단체장은 홍 대표가 직접 책임지고, 기초자치단체장은 해당 당협위원장 등에게 선거 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홍 대표가 주도하는 인재영입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당 지지도는 20% 턱걸이에도 못 미친다.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응답하지 않는 보수 유권자)를 깨울 카드도 마땅치 않다. 영남 5곳 중 1∼2곳을 잃고 수도권에서 전패할 경우 대표직 사퇴도 불가피하다. 한 분석가도 “수도권 빅3(서울·경기·인천) 중 2곳(경기·인천)이 보수인데, 제1야당이 전패한다는 것은 이후 선거에서 외연 확장 가능성을 봉쇄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서울 송파을 재보선 출격을 압박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홍 대표는 “정치인생의 마지막은 대구”라며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신청 의사를 밝혔다.
통합신당 열차를 탄 안철수·유승민 대표는 ‘안갯속’이다. 안 대표는 2016년 탈당에 이어 바른정당과 통합 승부수를 띄웠지만, 개인적 영향력은 바닥을 향해 가는 모양새다. 신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대표가 안 대표보다 우위를 점한 게 대표적이다.
1월 1일 공개된 여론조사 가운데 유 대표가 포함된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12월 29~30일·95% 신뢰수준에 ±3.4%포인트)와 ‘한국일보·한국리서치(12월26~29일·95% 신뢰수준에 ±3.5%포인·이상 1월 1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유 대표는 11.1%와 12.2%로, 박 시장(32.1%·25.7%)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안 대표는 각각 7.2%, 4.3%로 4∼5위에 그쳤다.
안 대표는 통합신당이 만들어지면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서울시장 포함 ‘험지 출마’ 등 장렬전사론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 운명의 커트라인은 ‘전국정당화 및 제2당’이다. 하지만 통합신당 시너지효과가 단기간에 그치거나, 이후 호남파의 집단 분당과 공천 룰 갈등 등에 휩싸일 경우 영향력이 급속히 꺼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호남과 수도권 전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경우 정치적 재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출마에 선을 긋지만,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수도권이냐, 영남이냐’를 강요받을 것으로 보인다. 안·유 조합은 호남과 2030세대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다만 ‘중도보수와 중도개혁’을 둘러싼 노선 투쟁에 따라 양쪽 다 집토끼를 놓칠 수도 있다. 보수 세대교체를 꿈꾸는 유 대표의 대구·경북(TK) 고집이 외연 확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1월 1일 당사에서 가진 신년하례식에서 “개혁보수의 길, 정체성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외연을 확대하자”고 말했다. 중도개혁통합에 방점을 찍은 국민의당 통합파와의 시너지효과는 여전히 물음표다.
윤지상 언론인